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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마이데이터 '제2의 초고속인터넷' 되려면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04 19:21

수정 2025.12.04 19:21

정부 주도 모델로 성과 크지만
비효율적 일대일 연계구조 문제
사업자 부담 큰 데이터 유통비용
신용정보원에 중계허브 맡기면
서비스 품질 높이고 비용 줄어
제2의 초고속인터넷 혁명 기대
손병두 토스인사이트 대표
손병두 토스인사이트 대표
이젠 내 은행·카드·보험 내역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소비패턴 분석을 통해 맞춤형 자산관리와 대출까지 받는다. 지난 2022년 시작한 마이데이터는 불과 시행 3년 만에 누적 가입자수 1억6531만명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다. '내 데이터는 내가 주인'이라는 원칙이 현실로 구현되면서 금융과 데이터가 결합된 새로운 시장이 열렸다. 한국의 마이데이터는 정부 주도 모델로서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순식간에 덩치를 키운 마이데이터 사업이 흔들리고 있다.

69개 마이데이터 사업자 중 7개가 허가를 자진 반납했다. 약 10%의 이탈률이다. 얼마 전 만난 핀테크 업체 관계자는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사업을 시작했지만 수익모델은 없고 전송료, 인건비로 인한 적자가 심해 결국 허가를 반납했다"고 했다. 이는 단순한 경쟁 탈락이 아니다. 수익모델을 정립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 한계의 중심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과도한 과금체계, 또 하나는 비효율적 연계 구조다. 먼저 과금 문제부터 보자. 2023년에는 283억원, 2024년에는 328억원이 데이터 유통비용으로 징수됐다. 대형 금융회사는 이를 흡수할 여력이 있지만, 중소형 사업자에게는 치명적인 고정비로 작용한다. 특정 사업자의 호출량이 급증할 경우 다른 사업자도 이를 분담해야 하는 불합리가 존재한다.

여기에 더해 비효율적인 일대일 연계 구조가 문제를 키운다. 지금은 마이데이터 사업자가 각 정보보유기관(은행, 카드사, 보험사 등)과 개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N개의 사업자가 M개의 기관과 연결하려면 총 N×M개의 데이터 전송 통로를 구축해야 한다. 이 방식은 중복된 데이터 호출과 관리비용, 네트워크 트래픽을 양산한다. 데이터 한 건을 전송하는 데에도 여러 사업자가 반복해서 비용을 내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데이터 주권의 실현"이라는 큰 이상은 사업자 생태계의 붕괴로 끝날 수 있다.

이 두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은 "데이터 중계허브"다. 허브가 도입되면 각 사업자는 허브와 한 번만 연결하면 된다. 정보보유기관도 마찬가지다. 전체 연결 수는 N×M에서 N+M으로 단순화된다. 구조가 단순해지는 만큼 시스템 구축비용과 운영비용이 크게 줄고, 중복 트래픽도 사라진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허브를 통해 과금체계도 합리적으로 재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처럼 사업자별·기관별로 제각각 부과하는 대신, 허브 단위에서 전송량·호출빈도·처리비용 등을 표준화한 통합 과금체계를 마련하면 된다. 동일한 데이터가 여러 경로로 반복 호출될 필요가 없으므로 총비용 자체가 감소하고, 사업자 간의 비용 격차도 완화된다. 과금의 투명성이 높아지고, 예측 가능한 비용 구조가 정착된다면 중소형 사업자에게도 숨통이 트인다.

이미 싱가포르는 이런 구조를 실현하고 있다. '금융 데이터 교환소(SGFinDex)'가 금융기관과 핀테크 기업을 연결하는 중계허브로 작동하고 있다. 개인은 정부 인증을 통해 자신의 데이터를 한곳에서 관리하고, 사업자는 동일한 표준을 이용해 효율적으로 데이터를 교환한다. 서비스 품질은 높아지고 비용은 낮아졌다.

한국도 충분히 이 모델을 도입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공공 마이데이터 인프라를 운영해온 신용정보원 같은 중립적 기관이 존재한다. 이 기관이 금융 데이터의 중계허브 역할을 맡는다면, 데이터 전달의 신뢰성과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꼭 신용정보원이 아니더라도 민간과 공공이 함께 참여하는 개방형 데이터 허브 체계를 구축할 수도 있다. 핵심은 연계 효율화와 과금 합리화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이다.

마이데이터는 분명 한국 디지털 금융의 큰 자산이다. 세계 어디에도 이렇게 빠르게 전 분야 마이데이터 사업을 시작한 나라는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비효율적·고비용 구조가 지속된다면, 지금까지 이룬 성과는 모래성처럼 무너질지 모른다. 데이터 주권은 국민이 얻는 권리이지만, 그 권리를 실현하게 하는 주체는 사업자다. 사업자가 지속가능해야 제도도 지속될 수 있고, 데이터 주권이 공허한 구호가 아닌 살아있는 제도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1990년대 말 정부 주도로 초고속인터넷 보급을 추진해 IT 강국 자리에 오른 저력이 있다. 세계 각국이 부러워하는 마이데이터도 아직 늦지 않았다.
마이데이터가 제2의 초고속인터넷 혁명이 될지, 거대한 대국민 실험으로 끝날지는 이제 당국 손에 달렸다.

손병두 토스인사이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