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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 단한번도 없이 모든걸 장악" 다카이치의 인간력, 日장기집권 '아베의 길' 갈까

서혜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06 09:23

수정 2025.12.06 10:57

'지지율 70%' 다카이치, 파벌정치 일본에서 견고한 성 쌓아
유신회와 연정 위해 정책집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밤샘 공부
직선적 성격과 강한 의지의 '人間力' 국정 운영에 양날의 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일본 강경 보수 노선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정치 노선을 잇는 '여자 아베'라는 별칭이 있다. 사진은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와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사진=AFP/연합뉴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일본 강경 보수 노선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정치 노선을 잇는 '여자 아베'라는 별칭이 있다. 사진은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와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사진=AFP/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도쿄=서혜진 특파원】일본 첫 여성 총리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이 출범 이후 70%대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며 순항하고 있다. 명확한 메시지와 강한 퍼포먼스, 공명당과의 연립 붕괴로 인한 지지층 결집이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공명당 이탈로 생긴 공백, 일본유신회와 새로 맺은 연정 유지, 정책 실현 여부에 따라 지지율은 언제든 하락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인 이미지보다 정치인으로서 지속 가능한 인간력(人間力)이 장기 집권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정책 능력뿐 아니라 인간적 신뢰와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7년 9개월' 아베 2차 내각, 장기 집권 비결은

출범 직후 높은 지지율이 장기 집권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은 역대 정권 사례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요미우리 조사에 따르면 내각 출범 직후 역대 최고 지지율은 고이즈미 준이치로(87%), 하토야마 유키오(75%), 스가 요시히데(74%), 호소카와 모리히로(72%) 순이었지만, 장기 집권은 고이즈미 내각뿐이었다. 나머지 내각은 1년 정도로 끝났다.

문예춘추는 정권의 장기 집권 여부가 인재를 결집시키고 지속하는 '인간력'에 달려 있다며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이를 갖추고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베 전 총리는 2012년 제2차 내각에서 스가 요시히데, 아소 다로, 기시다 후미오 등 자존심 강한 인재들을 중심으로 견고한 ‘가신단’을 형성했다. 당내 파벌 조율과 인재 등용을 통해 지지 기반을 유지하며 경제·외교 성과로 안정적인 지지율을 확보했고, 결과적으로 약 7년 9개월간 집권하며 일본 현대사 전후 최장기 총리로 기록됐다.

반면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는 가신단 부재가 약점으로 작용했다. 두 사람 모두 자민당 내 소속 파벌이 상대적으로 작고, 측근을 장악할 인적 자원이 부족했다.

결과적으로 기시다 내각은 정권 말기에 지지율이 10%대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고, 이시바 내각은 중의원·도쿄도의회 선거 등 3번의 선거에서 연달아 패하며 1년 만에 단명했다.

내각에 측근 중용으로 견고한 '성' 구축

다카이치 총리는 총재 선거에서 자신을 지지한 인사들을 대거 입각시키며 취임 직후부터 견고한 '성' 쌓기에 나섰다.
가타야마 사쓰키 재무상, 오노다 노조미 경제안보상, 마쓰모토 히사시 디지털상 등이 대표적이며, 오랫동안 다카이치를 지원해온 조나이 미노루 경제재정상까지 포함하면 측근 일색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각료 인사보다 더 노골적인 측근 배치는 당 최고직 인사에서 나타났다. 아소 다로 부총재를 중심으로 아소파 인사들이 간사장·총무회장·선대위원장 등 핵심 자리를 차지하며 사실상 여당 운영을 장악했다.

다만 경쟁자였던 하야시 요시마사(총무상), 고이즈미 신지로(방위상), 모테기 도시미쓰(외무상)를 기용하며 최소한의 화합 인사도 병행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측근 중심 인사에 일부 파벌 안배를 더한 형태"라고 지적한다.

관저 인사에서는 관료 사회가 인정하는 '정무 감각형' 엘리트들을 배치했다. 수석비서관에 경산성 출신 이이다 유지, 비서관에 재무성 출신 요시노 이이치로를 임명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이다 수석비서관은 여야 및 관료 사회에서 역대 차관급 인사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요시노 비서관은 여야 모두와 네트워크가 넓고 조정 능력이 탁월하다고 알려졌다.

일본유신회 엔도 다카치 총리 보좌관을 관저에 상주시키는 전례 없는 조치를 취하며 연정 안정과 정책 조율도 강화했다. 엔도 다카치 역시 관료 사회에서 신뢰가 높고 여야 조정 능력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해 예산은 엔도가 없었으면 통과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칭찬도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총리와 코드가 맞지 않으면 즉시 교체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관저 장악에도 나섰다. 국가안전보장국(NSS) 국장이던 오카노 마사타카를 재임 9개월 만에 돌연 교체하며 관료 사회를 긴장하게 했다.

지난 10월21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다카이치 사나에(맨 앞 가운데) 일본 신임 총리가 새 내각 각료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화상
지난 10월21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다카이치 사나에(맨 앞 가운데) 일본 신임 총리가 새 내각 각료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화상

유신회의 마음 얻은 성실함과 진정성

다카이치 총리는 특유의 성실함으로 일본유신회와 극적 연정을 성사시켰다. 지난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승리 후, 26년 만에 공명당과의 연립 붕괴로 정치적 위기에 몰렸지만, 일본유신회와의 협상을 통해 총리 취임을 완성했다.

문예춘추에 따르면 지난 10월 11일 다카이치 총리는 후지타 후미타케 일본유신회 공동대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협의 자리를 제안했고, 다음 날 아카사카 공관에서 만났다.

다카이치는 "정세 감각이 둔해서 정책밖에 모른다. 그래서 밤새 일본유신회의 정책을 공부해왔다"며 정책집을 들어 보였다. 정책집에는 포스트잇이 가득 붙어 있고 빨간 펜으로 수많은 메모가 적혀 있었다. 한 일본유신회 관계자는 "당 내에서도 다카이치 만큼 정책을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후지타 공동대표가 협의 자리에서 12개 정책을 제시하자 다카이치는 "전부 받겠다. 각료 자리도 준비할 테니 들어와 달라"고 답하는 결단력을 보였다. 이는 다음날 양당의 연정 합의로 이어졌다.

일본 자민당 다카이치 사나에(오른쪽) 총재와 일본유신회 요시무라 히로후미 대표가 지난 10월 20일 도쿄에서 연립정권 수립 합의서에 서명한 뒤 기자회견 하면서 악수하고 있다. 이로써 다카이치 총재는 지난 10월 21일 국회에서 총리 지명 선거를 통해 새 총리로 선출되고 자민-유신 자유연립정권이 발족하게 됐다. 사진=뉴시스화상
일본 자민당 다카이치 사나에(오른쪽) 총재와 일본유신회 요시무라 히로후미 대표가 지난 10월 20일 도쿄에서 연립정권 수립 합의서에 서명한 뒤 기자회견 하면서 악수하고 있다. 이로써 다카이치 총재는 지난 10월 21일 국회에서 총리 지명 선거를 통해 새 총리로 선출되고 자민-유신 자유연립정권이 발족하게 됐다. 사진=뉴시스화상

'선거 도운 아베 전화도 안 받아' 직선적 성격 지적도

다카이치 총리는 '준비된 지도자'라는 평가와 함께 '고집 센 스타일'이라는 지적을 동시에 받는다. 정책 이해도가 높고 공부량도 많아 참모진과 관료들이 만만히 볼 수 없는 총리로 꼽히지만 강한 의지가 주변과 마찰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실제 국회 운영위원장 시절 야당과 조율 없이 독단적으로 국회 개혁안을 제시해 큰 반발을 샀던 경험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전문가들은 다카이치를 '여성판 이시바 시게루'라고 평가한다.

다카이치 총리가 롤모델로 언급하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전화를 받지 않은 일화도 유명하다. 2021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 당시 아베 전 총리는 다카이치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여러 의원에게 전화를 걸며 호소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몇 달 뒤 다카이치는 아베 전 총리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전례가 드문 사례로 회자됐으며 이유가 명확하지 않아 더욱 주목 받았다.

나카키타 히로지 츄오대 교수는 이를 두고 "오자와 이치로가 전략적 순간에 연락을 끊는 방식과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일본 정치권의 그림자 권력자'로 불렸던 오자와는 2009년 민주당 정권 교체 직전 여러 정당 지도자와 연립 논의를 할 때 의도적으로 전화를 바로 받지 않거나 끊으며 협상력을 높인 것으로 유명하다.

'회식자리 0?' 당 내서도 우려 목소리

총리 취임 이후에는 전임자들과 저녁 회식을 한 차례도 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지난달 26일 "다카이치 총리가 정부 출범 한달이 넘도록 정치인이나 재계 인사 등과 회식 일정을 단 한 차례도 없었다"며 "소수 여당 정부에서 여·야 조정 등 정책 실현 과정이 복잡하고 당·정 협력도 중요해지는 가운데 총리의 이런 스타일에 대해 자민당 내에서도 우려도 나온다"고 보도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정치 초년 시절부터 남성 중심의 기성 정치인들이 마련한 회식 자리를 꺼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자민당 총재 선거 당시 한 방송사 토론 프로그램에서 '저녁 회식에 거의 참석하지 않는다고 알려졌다'는 질문에 "과거 선배 정치인들로부터 술자리에 많이 불려 다녔던 게 싫었다"는 취지로 답한 바 있다.

역대 일본 총리들 가운데 아베 전 총리는 2012년 2차 정권 출범 뒤 한 달 만에 저녁 회식만 10차례를 했다. 여·야 국회의원들 뿐 아니라 언론 쪽과도 적극적으로 접촉하며 정부 홍보에 신경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도 만찬뿐 아니라 조찬도 활용해 재계 인사들과 활발한 의견 교환을 했다. 취임 뒤 한 달간 외부 인사와 식사자리가 35회에 이르렀다.

자민당 안팎에서는 당내 지지 기반이 협소하고 소수 여당을 이끌어야 하는 다카이치 총리에게 광폭 행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민당 관계자들은 "총리가 당 간부들과 소통이 너무 부족하다.
정부 지지율이 높고 운영이 원활할 때는 괜찮지만 정부가 흔들리기 시작할때 협력을 시작하면 (너무 늦어) 무너지는 게 순식간"이라고 우려한다.

전문가들은 다카이치 총리의 강한 의지와 직선적 성격이 국정 운영에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다카이치 내각이 '아베 시절의 재현'이 될지, 단명 정권으로 끝날지는 향후 몇 달 사이의 전략적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이 대체적 시각이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