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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고아의 아버지 美 공군대령 딘 헤스 출생 [김정한의 역사&오늘]

뉴스1

입력 2025.12.06 06:01

수정 2025.12.06 06:01

딘 엘머 헤스 (출처: U.S. Air Force photo, 1951,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딘 엘머 헤스 (출처: U.S. Air Force photo, 1951,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17년 12월 6일, 미국 오하이오주 마리에타에서 딘 엘머 헤스가 태어났다. '한국 공군의 아버지'이자 '전쟁고아의 아버지'로 불리며 군인정신과 인류애를 실천한 인물이다.

헤스는 목사가 되려는 꿈을 안고 신학을 공부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후 미 육군 항공대에 입대해 전투기 조종사가 됐다. 이미 태평양 전쟁에서 활약한 그는 6.25 전쟁이 터지자 한국에 파병돼 대한민국 공군의 초석을 다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헤스는 1950년 6월, 한국 공군 조종사들을 F-51 무스탕 전투기로 훈련시키는 '바우트 원(BOUT-1) 프로젝트' 부대장으로 참전했다.

그는 직접 전투에 참가해 1951년 6월까지 무려 250여 회의 전투 출격을 기록했다. 그는 한국 조종사들에게도 깊은 용기를 불어넣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헌을 기려 1951년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했다.

무엇보다 헤스를 한국인의 가슴에 깊이 새긴 것은 그의 인류애였다. 1950년 12월 중공군의 개입으로 서울이 위기에 처하자, 그는 군목 러셀 블레이즈델 등과 함께 전쟁고아 구출 작전을 계획했다. 이것이 바로 '유모차 공수 작전'이다. 그는 전시 상황에서 김포 비행장에 있던 수송기들을 동원해 1000여 명에 달하는 전쟁고아와 보육원 직원들을 제주도로 안전하게 대피시켰다.

헤스는 전쟁 후에도 한국을 잊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 '전송가'(Battle Hymn)의 인세와 이를 바탕으로 제작된 동명의 영화(1957) 출연료 전액을 기부해 서울에 보육원을 건립하는 데 사용했다. 1969년 전역 후에도 20년간 한국 전쟁고아를 위한 모금 활동을 이어갔다.


헤스는 2015년 향년 97세로 별세했다. 한국 공군의 기틀을 마련하고 수많은 전쟁고아의 생명을 구한 그의 헌신은 오늘날까지도 한미동맹의 상징이자 인류애의 귀감으로 기려지고 있다.
대한민국 공군은 매년 그의 공적을 추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