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기후변화는 인류의 위기다. 이제 모두의 '조별 과제'가 된 이 문제는 때로 막막하고 자주 어렵다. 우리는 각자 무얼 할 수 있을까. 문화 속 기후·환경 이야기를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을 끌고, 나아갈 바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도쿠시마=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주말 절기상 '대설'(大雪·7일)을 사흘 앞둔 지난 4일, 서울 등 수도권에 올겨울 첫눈이 내렸다. 곳에 따라 순식간에 5㎝ 넘게 퍼부으며 사상 첫 '대설 재난문자'가 발송됐고, 퇴근길에 갇힌 시민들의 휴대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렸다.
폭설에 잠시 갇힌 사람들의 모습은, 짙은 안개 속을 더듬으며 걸어가는 풍경을 연출해 온 일본 설치 예술가 나카야 후지코(92)의 '안개 조각'(Fog Sculpture)과 겹쳐 보였다. 시야는 흐리고, 발밑은 불확실하며, 몇 걸음 앞의 움직임조차 기온과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설치 작업을 나카야 작가는 지난 1970년 오사카 박람회(엑스포) 때부터 이어오고 있다.
나카야 작가는 반세기에 걸쳐 기상현상인 안개를 '예술의 제재'로 다뤄왔다. 아버지이자, 최초로 '인공 눈송이'를 만든 나카야 우키치로 홋카이도대 물리학과 교수의 영향을 받은 작업이다. 그의 작업은 고압 노즐에서 분사된 미세 물 입자가 바람·습도·기온에 따라 매초 다른 형상을 만드는 원리를 기반으로 진행됐다. 어떤 날은 안개가 얇게 흩어지고, 어떤 날은 짙게 내려앉는다. 작가가 형태를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기후가 조각을 완성하는 구조다. 나카야 작가는 이 작업을 통해 관람객이 '자연에 대한 경외와 순환'을 상기케 했다.
서울 첫눈 상황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예보보다 늦게 도착했고, 양은 갑자기 폭발했으며, 강설 강도는 시간 단위로 달라졌다. 기온이 1도만 변해도 강수 형태가 바뀌는 겨울, 도심의 난류·지표 온도·습도 변화 같은 작은 조건 차이는 눈이 어디에 더 쌓이고, 어느 지역에서 갑자기 강해지는지를 좌우한다. 시민들이 첫눈 속을 헤치며 움직이던 풍경은, 나카야의 안개 조각 속에서 관람객이 흐릿한 공간을 더듬어 걷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눈·비가 '자연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기상청(KMA)은 여전히 인공강우·인공강설 실험을 하고 있다. 국립기상과학원 구름물리선도연구센터는 지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인공강설을 통해 평창에 눈이 1㎝ 더 오게 했다고 밝혔다. 기상청이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실에 밝힌 자료에 따르면 올해 11월 25일까지 84회 인공강우 실험이 진행됐다.
다만 인공강우 기술은 최근에는 가뭄 대응을 위한 제한적 기술로 좁혀진 상태다. 기후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인간이 설계하거나 제어할 수 있는 영역보다 자연의 변수 폭이 더 넓어졌기 때문이다. 도시가 경험하는 갑작스러운 폭설, 예상 밖의 첫눈 시점 등은 그 불확실성을 확인시키는 사례다.
순수예술에 속하는 나카야 작가의 안개 조각은 기후 모델의 한계나 예측의 오차를 비판하지 않는다. 다만 변화 자체가 자연의 본질임을 조용히 드러낸다. 안개가 매 순간 형태를 달리하듯, 기후 또한 고정된 선형 흐름이 아니라는 점을 시각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서울의 첫눈은 그 사실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언제 얼마나 내리고, 얼마큼 쌓일지, 불확실성이 높게 국지적으로 발달하는 '도깨비 구름'이 눈을 뿌리는 겨울이 온 것이다.
기후변화 시대에 자연을 이해한다는 것은,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일이다. 나카야 작가가 안개를 통해 보여줘 온 것도 결국 그 점이다. 불확실한 겨울의 첫 장면에서 우리는 '이 기후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에 답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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