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의 착시: 평균은 부자지만, '쓸 돈'이 없다]
순자산 평균 5억5천만원, 75%가 부동산에 묶여
부모봉양·자식교육 남았는데 소득 줄어드는 시기
'더 열심히' 일할 생각 말고 자산 체질부터 바꿔야
순자산 평균 5억5천만원, 75%가 부동산에 묶여
부모봉양·자식교육 남았는데 소득 줄어드는 시기
'더 열심히' 일할 생각 말고 자산 체질부터 바꿔야
#1. 2025년 11월 7년 간의 임원, 29년의 직장 생활을 마무리한 이준형 상무(가명·58). “사실 매년 연말이 되면 어느 정도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충격이 크다. 1년 간 고문 역할로 시간을 벌기는 했지만, 뭘 해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연말·연초에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다.”
#2. 올해로 직장 생활 30년 차인 성태수 부장(가명·57). 정년까지 앞으로 3년 남았다.
"팀장 보직도 내려놓고 팀원으로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또 1년이 지나면서 걱정만 늘었다. 뭔가를 해야 하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그냥 1년을 아무 생각 없이 산 것 같다."
[파이낸셜뉴스] 2025년이 마무리되고 있다. 1년을 더 버틴, 혹은 2막을 시작한 X세대는 다시 한 번 묵직한 질문과 마주한다. “올해 잘 살았나, 잘 버틴걸까,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2. 올해로 직장 생활 30년 차인 성태수 부장(가명·57). 정년까지 앞으로 3년 남았다.
직장에서는 ‘그 나이에 아직도…’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말을 듣고, 집에서는 부모님의 병원 일정과 자녀를 챙기는 일상이 이어진다.
사회는 X세대를 ‘집 한 채 있으니 괜찮은 세대’, ‘정년이 보장된 마지막 세대’ 정도로 이해해왔다. 실제로 성장기와 자산 축적기가 겹쳤던 세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가장 불안정한 세대이기도 하다. 자산은 정점에 이른 것처럼 보이지만 현금 흐름은 좁고, 소득은 서서히 꺾이기 시작하며, 부채는 이자라는 이름으로 조용히 압박해온다.
X세대에 대한 이미지는 대부분 ‘평균값’에서 나온다. 하지만 평균은 때로 현실을 가린다. 이번 기획은 평균이 아니라 ‘분포’로 X세대를 들여다본다. 분포는 지금 내가 어느 칸에 서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솔직한 거울이다.
보이는 자산 vs. 쓸 수 있는 돈
당장 동원할 수 있는, 쓸 돈은 얼마나 있을까.
가장 먼저 봐야 할 숫자는 ‘금융 자산’이다. 부동산은 팔아야 돈이 되지만, 금융 자산은 위기 때 쉽게 꺼내 쓸 수 있는 돈이다. 은퇴 후 삶의 안정성은 결국 이 금융 자산에서 갈린다.
국가데이터처·한국은행·금융감독원이 공동으로 실시한 가계금융복지조사(2025)를 보면, 50대의 금융자산 평균은 1억6507만원이다. 겉으로만 보면 꽤 여유 있는 숫자다.
하지만 중앙값(해당 연령대 가구를 가운데로 놓았을 때의 값)은 8100만원이다. 절반의 50대가 비상시 동원 가능한 금융자산이 8100만원을 밑돈다는 뜻이다.
‘1억 넘게 있다’는 평균은 소수의 높은 자산이 끌어올린 착시에 가깝고, 다수의 X세대는 생각보다 훨씬 얇은 금융 안전망 위에 서 있는 셈이다.
특히 50대에 8100만 원이었던 금융자산 중앙값은 60대에 들어서면 4150만 원으로 반토막 난다. 이는 소득이 끊긴 후 자산 구조를 바꾸지 못한 채 현금을 소진하며 버티는 X세대의 미래 자화상이다.
지난 9월 회사를 떠난 강선호 상무(58·가명)는 "임원으로 회사를 떠났다고 해도 X세대는 눈에 보이는 자산은 크지만, 정작 급할 때 꺼낼 수 있는 자산은 가장 얇은 세대"라면서 "중산층으로 보이지만 재무적 완충 장치는 매우 약하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점처럼 보이는 자산, ‘집에 묶인 고원’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전국 가구의 평균 자산은 5억6678만원, 평균 부채는 9534만원, 순자산은 4억7144만원이다.
X세대 중심인 50대는 더 높다. 50대 평균 자산은 6억6205만원, 평균 순자산은 5억5161만원에 달한다.
숫자만 보면 분명 ‘자산의 정점’이다. 하지만 구성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금융자산 비중은 24.2%에 불과하고 실물자산 비중이 75.8%에 달한다. 자산의 4분의 3이 집에 묶여 있다. 부동산 시장이 흔들리거나, 집을 팔 수 없는 상황이 오면 이 자산은 당장 생활비로 바꾸기 어렵다.
최근 5년(2020~2024년) 동안 50대의 경상소득과 처분가능소득, 순자산은 꾸준히 늘었다. 하지만 부채도 함께 늘었고, 자산 구조는 여전히 ‘집 중심’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자산은 많은 거 같은데 '쓸 돈은 없다'는 말이 빈말이 아닌 것이다.
버는 만큼 새는 50대 가계
소득만 놓고 보면 50대는 ‘괜찮은 세대’로 보인다. 전체 가구 평균 소득은 7427만원이지만, 50대는 여기서 상위 구간을 차지한다.
연 1억원 이상 소득 비중이 36.6%에 달하고 7000만~1억원 미만은 18.5% 수준이다. 10명 중 절반 이상이 가구 기준으로 연 7000만원 이상을 벌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지출이다. 가계동향조사(2025)에 따르면, 50대는 또 한국에서 가장 소비가 많은 연령대다.
연간 5000만원 이상을 쓰는 50대가 28.0%에 달하고 3000만~5000만원을 지출하는 50대가 31.9% 수준이다. 특히 5000만원 이상 쓰는 50대 비중은 2023년 21.4% → 2024년 24.7% → 2025년 28.0%로 빠르게 늘었다.
지출 항목을 보면 이유가 보인다.
월 평균 식비 63만원, 교통·통신비 53만원, 교육비 47만원, 의료비 21만원 등. 생활비는 물론 자녀 교육비, 부모님 부양비 등에 스스로의 건강비가 같이 올라가는 시기가 바로 50대다.
퇴직, 부양, 연금… 동시에 다가오는 현실
고용 구조를 보면 X세대의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흘러가는지 보인다.
한국고용정보원 자료를 보면 50대의 평균 퇴직 연령은 52.6세다. 법정 정년인 60세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퇴직 후 재취업까지 평균 8.7개월이 걸리고 재취업 임금은 이전보다 31%나 줄어든다.
소득은 꺾이는데, 부양 부담은 그대로다.
사회조사·고령자통계(2024)에 따르면, 부모를 돌보고 있는 50대는 39%, 부모와 자녀를 동시에 부양하는 50대가 26%에 달한다.
부모의 병원, 자녀의 학비·취업, 그 사이에서 내 노후 준비는 늘 뒤로 밀리기 쉽다. 그래서 50대는 “버틸수록 내가 점점 얇아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연금 숫자도 넉넉하지 않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50대 가입자의 예상 연금은 월 78만원 안팎이다. 사적연금 보유율은 50대 60% 수준이지만, 연금잔액 중위값은 2000만원 내외에 그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국가데이터처 사회조사에서 50대의 52%가 “노후 준비가 부족하다”고 답했고, 27%는 “사실상 준비가 없다”고 했다.
X세대를 위한 4가지 점검표
전문가들은 연말을 맞아 “지금은 결과를 평가하는 시간이 아니라 구조를 점검하는 시기”라고 말한다.
△금융자산
은퇴 전환기에 필요한 최소 금융자산은 ‘연간 지출의 3~5배’가 기준으로 거론된다. 월 300만원을 쓰는 가구라면 1억원 중반에서 2억원 안팎이다. 이 기준에서 보면, 50대 금융자산 중앙값 8100만원은 안전지대가 아니라 경계선에 가깝다.
△자산 구조
자산의 70~80%가 부동산에 묶여 있다면, 집값이 흔들려도 버틸 수 있는 금융자산과 연금 비중을 점진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
△부채와 지출
부채는 총액보다 ‘소득이 줄어들었을 때도 감당 가능한 구조인가’가 핵심이다. 지출은 의지가 아니라 구조다. 통신비·차량·주거비 같은 고정비 한두 가지만 바꿔도 10년 뒤 숫자는 달라진다.
△2막 준비
지금 하는 일을 10년 뒤에도 할 수 있는지, 아니라면 어떤 기술·경험·관계를 쌓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은퇴 준비는 통장 숫자만이 아니라 일의 지속성까지 포함한다.
통계의 반대편…‘상위’는 얼마나 다를까
KB경영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2025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서 ‘부자’로 분류되는 기준은 금융자산 10억원 이상(거주용 주택 제외)이다. 이 기준에 해당하는 한국 부자는 약 47만6000명으로 추산된다.
부자는 조사를 시작한 첫해인 2011년 13만명에서 2025년 47만6000명으로 3배 이상 늘었으며, 지난 15년간 매년 9.7% 증가했다.
보고서는 '상위 자산가는 금융자산 비중이 높고, 현금 흐름 관리에 민감하다'는 점을 공통 특징으로 꼽았다. 평균이 만든 착시의 반대편에는, 전혀 다른 자산 구조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내 현재 위치는 어디일까
그렇다면 지금 나는 이 분포의 어디쯤에 서 있을까. 판단 기준은 복잡하지 않다. 세 가지 질문으로 충분하다.
첫째, 비상시에 바로 꺼내 쓸 수 있는 금융자산이 얼마나 되는가.
50대 금융자산 중앙값은 8100만원이다. 이보다 적다면 분포의 하단에 가깝고, 1억5000만원을 넘는다면 중간 이상 구간에 들어선다. 주택 가격과는 별개의 문제다.
둘째, 앞으로도 지금 수준의 소득이 유지되는가.
정년·퇴직·재취업 가능성을 고려했을 때, 향후 5년간 소득이 급격히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면 현재 위치는 생각보다 아래에 있을 수 있다. 평균 퇴직 연령이 52.6세라는 점은 이 질문을 피하기 어렵게 만든다.
셋째, 지출은 구조적으로 줄일 수 있는가.
자녀 교육비, 부모 부양비, 의료비처럼 단기간에 줄이기 어려운 고정지출이 많다면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체력은 빠르게 소진된다. 실제로 50대는 소득이 늘어도 남는 돈이 줄어드는 구간에 진입해 있다.
이 세 가지 질문에 모두 ‘여유 있다’고 답할 수 있는 50대는 많지 않다.
그래서 다수의 X세대는 평균 자산 기준으로는 ‘중산층’에 속하지만, 현금 흐름 기준으로는 경계선 위에 서 있는 세대에 가깝다.
“2026년의 불안은 통계가 만드는 게 아니다”
숫자는 차갑다. 하지만 숫자는 방향을 알려준다. 2025년 통계가 말하는 X세대의 현실은 분명하다. 겉으로는 정점에 서 있지만, 내부는 작은 충격에도 흔들릴 수 있는 구조다.
2026년의 불안은 통계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확인된 위기를 방치하는 데서 온다. 이제 X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더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산의 '체질'을 바꾸는 전략적 선택이다. 금융자산 비중을 조금씩 늘리고, 부채는 총액이 아니라 상환 가능 기간으로 다시 보고, 지출은 의지가 아니라 구조로 줄이고, 소득은 2막을 전제로 설계해야 한다. 다가오는 2026년은 결심이 아니라 조정의 해다.
'은퇴=퇴장'이라는 낡은 공식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평균수명 83세 시대, X세대가 본격적인 은퇴를 맞이하면서 기존의 은퇴 개념 자체가 재정의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인생 2막' 이야기를 담은 [은퇴자 X의 설계]가 매주 토요일 아침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기자페이지를 구독하면 편하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kkskim@fnnews.com 김기석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