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기술과 인공지능이 이토록 발전한 시대에, 완벽한 피부 진단은 정말 불가능한 걸까? 사실 피부 진단 분야에는 엄청난 자원이 투입되고 있다. 수분, 유분, 탄력, 색소를 수치화하고, 수천 장의 얼굴 사진을 학습한 알고리즘이 피부 상태를 정량적으로 제시한다.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고, 우리는 피부 또한 데이터로 환원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AI가 읽지 못하는 진료실의 언어
진료실에서 만나는 현실은 좀 다르다. 피부는 생각보다 '덜 데이터적'이다.
피부는 늘 맥락 속에서 반응한다. 같은 홍조라도 스트레스 때문인지, 약물 부작용인지, 장벽 손상 때문인지에 따라 촉감부터 예민도까지 완전히 달라진다. 숫자만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손끝으로 느껴지는 질감과 환자가 말하는 미세한 불편감은 전혀 다른 진단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보자. '당기면서 가렵다'와 '따갑고 화끈거린다'는 비슷한 자극 반응 같지만, 실제 치료 전략은 정반대다. 이 미묘한 차이는 상담 과정에서만 드러난다.
얼마 전에는 한 환자가 유명 뷰티 앱 진단 결과가 너무 나쁘게 나왔다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찾아왔다. 실제로 보니 환절기 특유의 일시적 민감함만 있을 뿐, 피부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기계가 이렇게 나왔는데요." 환자의 손을 잡고 직접 만져보게 했다. "느껴지세요? 피부 결이 고르고 탄력도 좋잖아요." 환자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평생 피부 좋다는 소리만 들어왔어요"라며 자신 있게 말하는 환자들 중에도, 표면은 매끈한데 톤이 고르지 않은 경우가 있다. 손으로 만져보면 느껴진다. 오랜 기간 콜라겐 층과 진피 혈관계통이 불규칙하게 배열돼 얼룩덜룩한 분들이다. 겉으로는 잘 안 보이지만, 이런 피부는 주사 시술 후 출혈과 멍이 오래간다. 기계는 표면만 보고 '양호'라고 판단하지만, 막상 시술 계획을 세울 때는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AI는 아직 이런 비정량적 정보를 읽어내지 못한다. '건조함'이라는 하나의 태그로 묶는 순간, 피부 상태를 결정짓는 수많은 감각적 요소가 사라져 버린다. 특히 예민한 피부일수록 수치보다 감각의 범위가 훨씬 넓다. 손으로 만졌을 때의 온도 변화, 모공 주변 잔주름의 패턴, 환자의 말투와 표정에서 엿보이는 불편함. 이 비가시적 정보들이야말로 정확한 진단의 핵심이다.
기계가 흉내낼 수 없는 따뜻함
감촉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거칠지만 탄력이 살아있는 피부와 매끄럽지만 얇아져버린 피부는 완전히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기계는 표면을 분석할 수 있지만, 그 아래 진피층의 상태와 회복력은 오랜 시간 쌓인 경험과 촉각만이 파악할 수 있다.
"요즘 피곤하세요?" 물으면 "아니요"라고 답하지만, 눈가의 잔주름과 칙칙한 안색이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비언어적 신호는 AI가 처리하는 입력 정보와는 차원이 다른 영역이다.
물론 여러 기업이 촉감 센서, 고해상도 이미징 같은 기술을 개발하는 이유도 이 '누락된 정보'를 기계가 포착하기 위해서다. 앞으로 기술이 더 정교해지면 피부의 복잡성을 더 깊이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피부암 조기 발견 같은 영역에서는 이미 AI가 놀라운 성과를 보이고 있다.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인간의 눈으로 놓칠 수 있는 미세한 변화를 포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진료실이 보여주는 결론은 명확하다. 피부는 온전히 데이터가 아니다. 인간의 감각과 경험이 개입할 때 비로소 제대로 된 해석이 완성된다.
기술은 어디까지나 도구여야 한다. 피부과 진료는 단순히 병변을 찾아 약을 처방하는 것 이상이다. 환자의 불안을 덜어주고, 생활 습관을 개선하도록 돕고, 때로는 자신감을 회복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직은 사람이 해야 한다. 상담에서 환자의 목소리를 듣고, 손끝으로 피부의 미세한 결을 느끼고,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 맥락을 읽어내는 일 말이다. 나는 어떤 사람의 피부든, 남녀노소 무관하게 스스로 '빛'이 나게 되는 것을 목표로 진료한다.
AI는 훌륭한 도구지만, 살아있는 피부 앞에서는 인간의 섬세한 판단이 여전히 중심에 있어야 한다. 최근 뷰티 마케팅의 화두도 정보나 노출처럼 피곤함을 쌓는 방식에서, 인간미와 신뢰감을 조용하게 전달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의료는 기술과 인간성의 균형이다. 최첨단 기기와 임상 경험, 객관적 데이터와 주관적 통찰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최선의 치료가 가능하다.
아마 10년 후에는 지금보다 훨씬 똑똑한 AI가 피부 진단을 도울 것이다. 그때도 여전히 필요한 건, 환자의 손을 잡고 "괜찮아요"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한다.
/전은영 닥터은빛의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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