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특허권에 갇힌 R&D… 소송단축·배상확대 없인 혁신 멈춘다[혁신의 시작, 특허사법개혁]

박신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07 18:46

수정 2025.12.07 18:46

기업 투자 발묶는 특허권
특허침해소송 승소율 11% 불과
이겨도 손해액 17% 수준만 보상
혁신기술 개발 저해 우려 목소리
산업환경 반영한 제도 개선 시급
특허권에 갇힌 R&D… 소송단축·배상확대 없인 혁신 멈춘다[혁신의 시작, 특허사법개혁]

세계는 지금 인공지능(AI)를 필두로 첨단 산업에서 총성 없는 전쟁이 진행 중이다. 글로벌 기술 강국 도약을 위해선 '기술부흥'과 함께 '기술보호'라는 양 날개가 함께 발전해야 한다. 이 가운데 기술보호의 측면에서 특허사법제도는 국가가 취해야 할 가장 기본적 울타리이자 강력한 수단이다. 이에 국내 특허사법제도의 현황을 살펴보고 우리 정부가 추진 중인 방안과 세계 주요국의 성공 사례를 통해 바람직한 정책방향을 3회에 걸쳐 제시해 본다.

"한국법원은 특허권자의 무덤입니다.

"

대한변리사회 지식재산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정차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이렇게 표현한다.

대한민국의 사법적 시스템이 고도화되는 기술탈취 행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기술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산업 부흥정책에 더해 그 기술을 기술탈취 행위로부터 안전하게 지켜낼 수 있는 기술보호정책도 함께 발전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지적이다.

■기술탈취에 중소·벤처 생존 위협

7일 지식재산처와 중소기업벤처부 등에 따르면 국내 특허침해소송 승소율은 11.1%로 일반 민사소송 승소율(55.2%)에 비해 현저히 낮으며 이겨도 손해액의 17.5% 수준밖에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혁신기술 개발에 대한 의지가 꺾이고, 정당한 대가 없는 기술 이전이라는 불공정한 시장 질서를 고착화시킨다.

유정희 벤처기업협회 본부장은 "중소·벤처 기업은 기술과 특허가 기업 성장의 핵심으로 특허권의 권리보호가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다"며 "그러나 국내에서 기술탈취 또는 특허 침해를 당해도 감당하기 힘든 소송 비용과 기간으로 인해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러한 소송의 구조적 환경이 가해 기업에 매우 유리한 구도를 만들어준다는 사실이다. 기술탈취가 발각될 확률 자체가 낮은데다 발각되더라도 소송에서 패소할 가능성이 크지 않고, 패소하더라도 지불해야하는 배상액은 탈취한 기술로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비하면 '푼돈'에 가깝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설령 힘겨운 소송에 승소하더라도 법원이 인정한 손해배상액은 기업이 청구한 평균금액 8억원의 17.5%인 1억4000만원에 불과했다.

더 큰 문제는 기술탈취 문제가 개별기업의 피해로 끝나지 않고 국가 경제 전체의 혁신동력을 둔화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수년 간의 노력과 막대한 비용을 들여 개발한 핵심 기술을 손쉽게 빼앗기고도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면 연구개발(R&D)에 투자할 유인이 사라지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즉 기업들이 단기적이고 모방하기 쉬운 사업모델에만 안주하게 만들 우려가 커진다.

■진짜 성장 위해선 강력한 기술보호 必

전문가들은 산업부흥정책과 기술보호정책은 한쌍의 날개로 유기적이고 상호보완적으로 작동해야 혁신경제를 이끌 수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차호 교수는 "10여년 전 한 통계는 주요국 중 특허권자 승소율이 가장 낮은 국가로 영국, 일본 및 한국을 특정했다. 유럽에서 영국의 특허권자 승률이 유독 낮아서 유럽의 전문가들은 영국법원을 특허권자의 무덤이라고 조롱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나서 상황이 달라졌다.
영국의 특허권자 승률은 32% 이상으로 높아졌고, 우리나라의 특허권자 승률은 15% 이하로 낮아졌다.

정 교수는 "특허 허브국가가 되고, 기술거래가 활발해지기 위해서는 특허무효율, 특허권자 승소율, 손해배상액의 3가지 지표가 좋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정희 본부장은 "우리도 영국의 지식재산기업법원이나 유럽연합(EU)의 유럽통합특허법원 같이 기업의 입장을 반영해 소송 기간을 단축하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혁신제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padet80@fnnews.com 박신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