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전남대학교에서 연구개발(R&D) 혁신을 위한 호남권 연구현장 간담회가 열렸다. 대학, 기업, 정부출연연구소의 예비·중견 연구자들이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과 연구에 대한 열망을 직접 들으며, 대학 총장으로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발표한 R&D 생태계 혁신안에 이러한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된 것을 확인하며 기대와 함께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국가가 제시한 혁신안은 인재 확보, 연구자 자율성 확대, 도전적 연구문화 정착, AI 기반 투자·데이터 관리라는 네 축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해외 우수 신진연구자 2000명 유치, R&D 예산의 연평균 5% 확대 계획은 연구개발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장기적 방향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혁신안이 현장에 안착되면 변화는 명확하다. 첫째, 좋은 인재가 모이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명확한 진로 경로와 장학·수당 같은 실질적 지원이 늘어나면, 뛰어난 인재들이 자연스럽게 대학으로 유입되고 연구를 꾸준히 이어갈 수 있다. 둘째, 연구의 속도와 품질이 눈에 띄게 좋아진다. 연구비를 더 자유롭게 쓰고, 불필요한 행정 부담을 덜어주면 연구자들은 본래의 연구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다. 셋째, 국가 전략기술 개발이 빨라진다. 도전적인 연구에 별도의 지원을 마련하고, 실패하더라도 그 과정을 가치 있게 인정하면, 위험이 있어도 큰 성과를 낼 수 있는 연구가 더 많이 시도된다. 넷째, 협력 연구와 성과 확산이 더욱 활발해진다. AI 기반 연구비 관리와 연구데이터 개방은 연구 효율을 높이고, 대학-기업-연구기관 사이의 협업을 자연스럽게 확장시킬 것이다.
그러나 모든 변화에는 리스크가 동반된다. 자율성이 커지면 오히려 행정·재정·운영지원이 부족해져 연구비 집행에 혼란이 생기거나 대학 내부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 또한 데이터 개방과 AI 활용 과정에서는 윤리, 보안, 표준 같은 문제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대학은 더 이상 수동적인 수혜자가 아니라, 정책의 실행 주체로서 선제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필자는 구체적인 실행 과제를 통해 혁신 방안을 현실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대학원 장학금 확대와 연구자 지원을 위한 재정·정책 마련은 필수이다. 인재를 안정적으로 키우는 기반이 갖춰질 때, 교육 혁신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남대학교는 호남 거점대학으로서 지역 특화산업과 연계한 AI 융합 교육을 확대해 국가정책을 지역 혁신으로 연결할 것이다. 또한, 연구 몰입을 보장하는 행정·재정 혁신에 나선다. 블록 펀딩 도입, 장비 관리 전문인력 확충, 불필요한 행정 절차 축소를 통해 '연구자는 연구에 집중하고 대학은 구조적으로 지원하는 체계'를 구축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도전적 연구를 지원하는 시스템과 데이터 거버넌스를 정비한다. 도전적 연구 전용 지원체계 마련, 인프라 확충, 데이터 표준화·보안·윤리 체계 강화 등을 통해 AI 기반 협업 환경을 구축할 계획이다. 중요한 것은 실행력이다. 전남대학교는 이러한 변화를 선도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근배 전남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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