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지난 10월 23일 배우 고 김수미씨의 별세 1주기를 맞아 유가족의 뜻깊은 기부가 진행됐다. 글로벌 아동권리 전문 NGO 굿네이버스에서 진행된 추모기부 전달식에서 유가족 대표로 며느리 서효림 배우 부부가 참석해 고인을 추모하고 나눔의 의미를 전했다.
이날 전달된 기부금은 김씨의 생전 일기를 엮어 출간한 '나는 탄원한다, 나를 죽이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의 인세 수익금 전액으로 마련됐다. 현재 굿네이버스는 국내 위기가정 아동 대상으로 장학금과 생계비를 지원하는 '故 김수미 장학지원사업'을 진행 중이다.
며느리 서효림 배우는 "어머니의 일기를 책으로 엮어 내며 고인의 뜻을 따라 책 판매 수익을 기부하기로 했다"며 "생전에 어려운 이웃과 아이들을 챙기며 베풀던 어머니의 따뜻함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추모 기부, 새로운 기부 문화 정착
최근 들어 추모 기부가 고인의 이름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이어가는 새로운 기부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남겨진 가족이 고인을 기리는 마음이 기부를 통해 확장되며, 소외된 이웃과 미래 세대 삶을 밝히는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추모 기부는 가족과 지인이 고인의 이름으로 기부해 그 뜻을 사회에 남기는 새로운 기부 방식이다. 단순한 기부가 아닌, 고인이 살아온 삶의 가치를 다음 세대로 잇는 의미 있는 나눔으로 주목받으며 참여가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재산이나 조의금, 유산의 일부 등 소액으로도 쉽게 참여할 수 있어 절차가 비교적 간단하며, 이러한 접근성 덕분에 다른 유산 기부 방식보다 참여 장벽이 낮다는 점이 특징이다.
굿네이버스는 지난해부터 추모기부 활성화를 위해 '리멤버, 굿네이버스(Remember, Good Neighbors)'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캠페인은 소중한 사람을 기억하며 고인의 이름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방식으로, 조의금이나 유산 일부 등 소액으로도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후원금은 굿네이버스 국내와 해외 사업장을 통해 소외된 아동과 지역사회를 지원하는 데 쓰인다.
임현빈 굿네이버스 특별후원팀장은 "현재 유산 기부 회원 가운데 추모 기부 형태의 참여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만큼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특히 상속받은 유산이나 조의금 일부를 기부하거나 고인의 기일에 맞춰 가족이 함께 기부를 결정하는 방식이 점차 확산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딸의 뜻 이어 아프리카에 학교를 세우다
윤영순씨(79)는 아프리카 교육사업에 헌신한 딸 고 나현씨를 기리기 위한 추모 기부를 실천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근무했던 나현씨는 케냐·에티오피아·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개발도상국을 오가며 교육지원사업에 힘써왔으나, 지난 2013년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윤씨는 누구보다 아프리카 아이들의 교육에 큰 관심을 쏟았던 딸의 뜻을 이어가고자, 여러 단체를 고민한 끝에 그 뜻을 가장 온전히 실천할 수 있는 기관으로 굿네이버스에 기부를 결정했다.
윤씨는 "아프리카는 딸의 제2의 고향이었다. 척박한 땅에 희망의 꽃을 피우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며 학교 건립을 위해 약 1억6000만원을 쾌척했다. 이후 굿네이버스와 한국국제협력단의 협력으로 2015년 말부터 '케냐 도시 취약계층 아동의 질 높은 초등교육 보장 및 보호 체계 구축 사업'이 본격 추진됐다.
사업은 아프리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도 대표 빈곤 지역인 단도라(Dandora) 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단도라는 대형 쓰레기 매립지 주변에 약 30만명이 밀집해 거주하는 곳으로 주민 절반 이상이 빈곤층에 속한다.
지역 청년 대부분은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지 못해 쓰레기 선별장 일용직에 의존하고 있다. 케냐 청년의 62%가 중등교육을 이수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단도라 지역 아동·청소년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한 배움의 기회 확대가 필요했다.
단도라 지역의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해 진행된 사업은 2017년, 나현씨의 이름을 딴 '마마 나현스쿨'의 개교로 결실을 맺었다. 약 7억2000만원을 들여 신축된 4층 건물에는 현재 156여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정규 교육 과정은 물론, 공교육을 보완할 수 있는 기초 학습, 교사 역량 강화 등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프로그램이 함께 운영된다. 여학생들로 구성된 '나현 클럽'을 조직해 자기관리·시간 관리·리더십 교육 등 미래 여성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커리큘럼도 지원 중이다.
윤씨는 학교 건립 이후에도 매년 장학금과 교복 지원을 이어가는 동시에, 학교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그의 추모 기부는 단순한 후원을 넘어 지역사회 변화를 이끄는 계기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윤씨는 8일 열린 '제5회 대한민국 착한기부대상'에서 행정안전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아내의 바람을 현실로... 삶을 잇는 추모 기부
또 다른 예로, 한씨는 아내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지난 9월 추모기부금을 굿네이버스에 전달, 선한 영향력을 전파했다.
살아 생전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자주 말한 아내는 2021년 코로나 시기 췌장암 판정을 받은 뒤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럼에도 한씨는 조선업 현장에서 큰 부상을 입어 오랜 기간 거동이 불편했지만, 아내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사망보험금을 모아 굿네이버스에 기부를 결심한 것이다.
전달된 후원금 3200만원은 아프리카 니제르의 통디가메이(Tondigamey) 지역에서 진행 중인 식수위생지원사업에 사용되고 있다. 니제르는 국토의 약 80%가 사하라 사막에 속해 있어 안정적인 물 공급이 어려운 국가로, 많은 주민들이 여전히 오염된 물을 사용하거나 먼 거리를 이동해 식수를 구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번 지원을 통해 지역 주민 6322명과 아동 506명이 깨끗하고 안전한 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됐으며, 지역사회에서는 식수 펌프 설치와 우물 개발 작업이 한창이다.
그는 "평생 가족을 위해 마음을 다한 아내의 마지막 소원을 꼭 이루고 싶었다"며 "그 뜻이 먼 곳에서 살아가는 누군가의 삶에 오랫동안 희망으로 남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굿네이버스 유산기부자 모임 '더네이버스레거시클럽'
고인의 이름으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추모 기부는 유산 기부의 한 형태다. 유산 기부는 기부자의 사후, 유산의 전부 또는 일부를 굿네이버스와 같은 공익단체에 기부하는 것을 뜻한다. 기부자는 자신의 유산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손을 내밀며 나눔의 가치를 이어갈 수 있다.
2019년부터 활발히 진행되는 유산 기부자 모임 굿네이버스 '더네이버스레거시클럽'은 현재까지 총 62명의 회원이 등재됐다 더네이버스레거시클럽을 통해 기부자별 요청에 맞춰, 기부금 사용처를 직접 논의하고 기부 목적이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 더네이버스레거시클럽은 약정서·유언장 작성부터 유언 집행, 사업 결과 보고까지 유산 기부의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안내한다. 또한 투명하고 전문적인 유산기부 집행을 위해 대한변호사협회, 김앤장 사회공헌위원회, 법무법인 신우, 하나은행 등과 협력해 기부자에게 법률·세무 상담을 제공한다. 이런 지원은 기부자가 법률적·세무적 요소를 충분히 고려해 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유산 기부를 진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
굿네이버스는 다양한 방식의 유산 기부를 통해 고인의 뜻이 이어질 수 있도록 돕는다. 유산 기부는 현금 기부 외에도 유언 공증, 자필 유언장, 신탁, 보험 기부 등 여러 형태로 참여할 수 있으며, 특히 보험과 신탁을 통한 기부가 널리 활용되고 있다. 보험 기부는 생명보험의 수익자를 굿네이버스와 같은 공익단체로 지정하거나 변경해, 납부한 보험료가 사후 공익 목적으로 쓰이도록 하는 방식이다.
신탁 기부는 금융회사와 자산신탁계약을 체결해 사후 자산의 전부 또는 일부를 공익단체에 귀속시키는 형태로, 유언장 없이도 기부자의 의사를 명확히 반영할 수 있어 참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유산 기부 활성화 위한 제도적 기반 필요"
해외에서는 유산 기부가 제도적으로 활성화된 사례도 많다. 영국은 2012년 '레거시10(Legacy 10)'을 입법화해 유산의 10% 이상을 기부하면 상속세율을 기존 40%에서 36%로 감면해주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2023년 유산 기부액이 전체 모금액의 30%를 차지할 만큼 큰 성장을 이뤘다.
반면, 국내는 법적 기반이 미비해 유산기부 참여가 쉽지 않은 만큼, 제도 개선을 통한 유산기부 활성화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유산 기부가 제도적으로 정착될 경우 사회지도층 및 고액기부자의 자발적 참여를 촉진해 복지 사각지대·돌봄·환경 등 공공 영역을 보완하는 중요한 재원이 될 수 있다.
현대중 굿네이버스 대외협력실장은 "제도적 지원이 확대될수록 취약계층과 지역사회에 닿는 나눔의 규모도 커지고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한 변화를 만드는 힘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굿네이버스는 유산 기부를 결심한 후원자의 뜻이 잘 실현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지원과 투명한 운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굿네이버스는 1991년 한국에서 설립돼 '굶주림 없는 세상,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전문 사회복지사업과 국제개발협력사업을 활발히 수행하는 글로벌 아동권리 전문 NGO다.
국내에서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위기가정 아동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으며, 해외에서는 교육 보호, 보건 의료, 식수 위생, 소득 증대 등 통합적인 지역 개발사업과 인도적 지원을 통해 지속가능한 변화를 이끌어가고 있다.
지난해 굿네이버스는 '한국가이드스타 공익법인 평가'에서 9년 연속 최고 등급을 획득, '스타 공익법인'에 선정되는 등 투명하고 성실한 회계 관리 및 조직 운영을 통해 신뢰받는 대한민국 대표 NGO로서 책무를 다하고 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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