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권혁준 기자 = 배구에서 세터는 매우 중요한 포지션으로 여겨진다. 공격수의 능력을 최대로 끌어올리고, 상대 블로킹을 피해 공을 분배하는 등 '야전 사령관'과도 같은 역할이기 때문이다. 다른 포지션이 아무리 좋아도 세터가 흔들리면 어려운 경기를 펼칠 수밖에 없기에,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 말이 나온다.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2025-26 V리그의 남자부 양상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모양새다. 안정적이고 노련한 세터를 보유한 팀은 승승장구하는 반면에, 세터진 부상 등으로 균열이 있는 팀은 어려운 시즌을 보내고 있다.
대한항공은 현재 11승1패(승점 31)로 선두를 질주하고 있다. 지난 7일 삼성화재전에선 10연승을 달성, 2011-12시즌 이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 승수의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올 시즌에만 트리플크라운(백어택·블로킹·서브득점 각 3개 이상)을 3번이나 기록한 외국인 선수 카일 러셀과 부상을 완전히 털어낸 정지석의 '쌍포'가 돋보이는데, 노련한 세터 한선수의 존재 덕에 이들의 공격력이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1985년생으로 다음 달이면 만 41세가 되는 한선수는 여전히 국내 최고 세터의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특유의 운용 능력으로 공격수에게 원블록이나 노블록 상황을 자주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이같은 장점은 대한항공의 압도적인 공격 성공률에서 드러난다. 대한항공의 올 시즌 팀 공격 성공률은 56.40%로, 2위 현대캐피탈(50.68%)을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이 부분 꼴찌인 삼성화재(46.66%)에 10%포인트(p) 앞서 있다.
주 공격수인 정지석(56.33%)과 러셀(55.99%)은 공격 성공률 리그 1, 2위이고, 미들블로커 김규민(65.52%)와 김민재(62.50%)는 속공 성공률 각각 1, 3위에 올라 있다.
물론 세터의 토스웍은 리시브와 디그 등 수비의 영향도 크지만, 대한항공 세터가 한선수가 아니었다면 이 정도의 성적이 나오긴 어려웠을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워낙 노련해 빈 곳을 잘 찔러주고, 공격수들을 두루 활용하면서 팀 전체의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몸 관리도 철저하다. 한선수는 지난 시즌 무릎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었는데, 비시즌 근육량을 크게 늘리면서 다시금 경쟁력을 높였다.
반면 지난 시즌 '트레블'(컵대회·정규리그·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달성했던 현대캐피탈은 주전 세터 황승빈의 부상이 아쉽다.
황승빈은 지난 10월29일 한국전력전에서 오른쪽 어깨 부상으로 이탈해 아직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이준협이 대신 경기에 나서고 있지만 만족감이 높지 않다.
현대캐피탈은 시즌 전 레오나르도 레이바 마르티네스(등록명 레오), 허수봉 쌍포에 전광인(OK저축은행) 대신 신호진을 영입하고 아시아쿼터 외인으로 바야르사이한을 영입하며 기대를 모았다.
전력은 지난 시즌 못지않거나 그 이상이라는 평가였는데, 주전 세터가 빠지면서 대한항공의 독주를 바라보게 됐다. 현재 2위를 달리고 있지만 승점 차가 8점까지 벌어졌다.
3위 KB손해보험도 주전 세터 황택의가 잔부상으로 빠질 때마다 어려움을 겪는다. 지난 6일 현대캐피탈전에서 황택의가 감기로 빠지면서 셧아웃 패배했고, 지난달 22일 우리카드 전에서도 황택의가 발목 통증으로 교체아웃된 뒤 패했다.
7연패의 수렁에 빠지며 최하위에 머문 삼성화재는 야심찬 '외인 세터' 영입이 성공적이지 않다.
삼성화재는 아시아쿼터로 알시딥 싱 도산(등록명 도산지)을 영입했다. 204㎝의 큰 신장을 갖춘 세터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삼성화재의 전력 자체가 약한 탓도 있지만 공격수들과의 호흡이 완벽하지 않다.
배구 세터의 역할과 비중은 야구의 포수에 곧잘 비유되곤 한다. 야구에서 외인 포수를 보기가 드문 데, 삼성화재의 과감한 선택이 아직까지는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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