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中 턱밑까지 따라왔는데…주 52시간 양발 묶인 K-반도체

뉴스1

입력 2025.12.08 16:22

수정 2025.12.08 16:22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양발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는 격이다."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 조항이 빠진 반도체특별법이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했다는 소식에 한 업계 관계자가 내뱉은 말이다. 중국 반도체가 '996 근무제'(오전 9시~오후 9시까지 주 6일)를 앞세워 K-반도체를 맹추격하는 가운데, 한국은 주 52시간제라는 족쇄에 묶여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GPU부터 2나노까지…中 반도체 자립 더 빨라졌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그래픽 처리장치(GPU) 및 인공지능(AI) 반도체 전문기업 무어스레드(Moore Threads)는 지난 5일 상하이 증시 상장으로 80억 위안(11억3000만 달러·1조 6576억 원)을 조달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상장(IPO) 첫날 공모가 대비 무려 502% 폭등한 규모로, 시가총액은 537억1500만 위안(11조 1507억 원)에 육박했다.



무어스레드는 엔비디아 중국 지사 총괄 출신인 장젠중이 2020년에 설립한 회사로, GPU 전문 기업이 본토 증시에 상장한 첫 사례다. 공동 창업자 저우위안 최고기술책임자(CTO)도 엔비디아 생태계 총괄 출신이다. 무어스레드가 '중국판 엔비디아'로 불리며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이끌 기대주로 부상한 이유다.

중국 반도체 산업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고강도 제재가 오히려 '채찍'이 됐다는 평가가 나올 만큼 '반도체 자립'에 고삐를 죄고 있다.

중국 국가지식산권국(CNIPA)과 외신 등에 따르면, 중국 화웨이는 3년 전인 2022년 출원한 심자외선(DUV) 금속 적층법 관련 특허를 활용해 2나노미터(㎚)급 반도체 칩 생산 방안을 모색 중이다. 극자외선(EUV) 없이 DUV 리소그래피만 사용해 2나노 금속 라인 패터닝을 구현하는 것이 핵심이다.

화웨이가 EUV보다 구형인 DUV를 택한 이유는 EUV 노광장비를 독점 생산하는 ASML 제품 수급이 막힌 탓이다. DUV는 빛의 파장 대역이 EUV보다 길어 초미세 패턴을 새기는 데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화웨이가 미국의 제재 속에서도 7나노와 5나노 칩 상용화에 연달아 성공했던 만큼, 2나노 칩을 양산할 방법까지 찾는다면 시장의 판도가 흔들릴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중국 반도체는 'K-반도체'에 비해 몇 수 뒤졌다는 평가는 현재도 유효지만, 격차는 해마다 급속도로 좁혀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중국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SMIC는 올 2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5.1% 점유율을 기록하며 삼성전자(7.3%)를 2.2%포인트(p) 격차로 추격 중이다.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비슷한 성능을 갖춘 최첨단 D램(DDR5)을 공개했고,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도 삼성전자(286단)에 근접한 270단 3D 낸드플래시를 개발, 올해 1분기부터 시장 점유율을 10%대로 끌어올렸다.

"5년 뒤 역전" 경고등에도…주52 시간 예외 논의는 '원점'

업계에선 한국 반도체가 향후 5년 이내에 중국에 추월당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현재는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가 전 세계 D램 메모리 시장의 70%,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은 80%를 장악하고 있지만, 시장 주도권을 뺏기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것이다.

한국경제인협회가 10대 수출 주력업종을 영위하는 주요 기업 200곳을 조사해 지난달 17일 발표한 '한·미·일·중 경쟁력 현황 및 전망 조사'에 따르면, K-반도체의 경쟁력 지수를 100으로 봤을 때 중국 반도체는 2025년 99.3에서 2030년 107.1로 상승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현재는 중국 반도체의 경쟁력이 0.7포인트(p) 낮지만, 5년 뒤에는 K-반도체를 훌쩍 앞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경협은 "2030년 기업의 분야별 경쟁력 점수에서 한국을 100점으로 봤을 때 중국은 가격경쟁력(130.8), 생산성(123.8), 정부 지원(115.1), 전문인력(112.4), 핵심기술(111.4), 상품브랜드(106.5) 모든 면에서 한국에 앞선다"고 지적했다.

'주 52시간 예외' 논의가 6년 넘게 제자리걸음인 점도 발등의 불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지난 4일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반도체 특별법)을 처리했다. 하지만 핵심 쟁점이었던 연구개발(R&D) 인력의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 적용은 빠졌다.


업계 관계자는 "(특별법에) 전력·용수 등 기반 시설과 보조금 등을 지원하는 근거 조항이 담긴 것은 다행이지만, 주 52시간제 예외 논의가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은 매우 아쉽다"며 "R&D 조직의 성과가 시장 지배력으로 직결되는 첨단 산업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한국은 (중국에 비해) 양발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는 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