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 미국 테슬라와 제너럴모터스(GM)가 각각 '감독형 FSD'(Full Self Driving·완전 자율주행)와 '슈퍼크루즈'란 이름으로 차량 자율주행 서비스를 한국 시장에 선보이면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자율주행 시스템이 도로 상황을 판단해 주행 전반을 직접 통제하는 만큼 제조사에 사고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거란 판단에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FSD와 슈퍼크루즈 모두 주행에 대한 최종 책임은 운전자에게 있어 제조사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충고한다.
테슬라 'FSD' GM '슈퍼크루즈' 사실상 '레벨3'지만 '레벨2'로 인증
8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테슬라의 FSD와 GM의 슈퍼크루즈의 가장 큰 특징은 운전자가 운전대에서 손을 놓아도 되는 일명 '핸즈프리'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운전자의 개입 없이도 차량 스스로 가·감속과 조향, 차선 변경 등을 자체적으로 판단해 수행한다.
핸즈프리가 현실화했다는 점에서 두 기능은 자율주행 레벨3에 해당하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미국자동차공학회(SAE)는 자율주행의 기술 수준을 0~5단계로 구분한다. 레벨2에서는 시스템이 차량 속도와 방향을 모두 통제하더라도 최종 판단은 운전자의 몫으로, 운전자는 운전대를 계속 잡아야 한다. 하지만 레벨3부터는 시스템이 돌발 상황에 대한 인식과 대응까지 수행하기 때문에 운전대를 잡지 않아도 된다. 운전자 없이도 정해진 구간을 주행하는 로보택시는 레벨4에 해당한다.
그러나 두 기술 모두 핸즈프리 기능을 탑재했음에도 제조사들은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에 레벨2로 자기 인증을 받았다. 자율주행 기술이 완전히 성숙했다고 보기 어려운 데다 레벨3부터는 사고 발생 시 제조사들이 법적 책임을 일부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2012년 발효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미국 당국의 안전 인증을 획득한 미국산 차량은 한국에서 자동차관리법상 자기 인증을 받은 것으로 간주해 별도의 인증 절차 없이 수입할 수 있다.
제작 결함 없는 한 운전자 과실 100%…"완전 자율주행 아냐, 맹신 금물"
현재 국내에서 FSD와 슈퍼크루즈가 가능한 차량은 각각 테슬라 '모델S'·'모델X'와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IQ' 등으로 모두 미국에서 생산돼 국내에서도 미국 인증을 준용해 레벨2로 간주한다. 레벨2 이하의 자율주행을 사용하다가 사고가 나면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과 도로교통법상 운전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따라서 첨단운전자시스템(ADAS)과 마찬가지로 FSD·슈퍼크루즈를 사용하다 사고가 나더라도 제조사가 아닌 운전자가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 한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FSD와 슈퍼크루즈 모두 제작사에서 레벨2로 자기인증을 받아 판매하고 있고 소비자들에게도 레벨2임을 고지한 상태"라며 "이에 따라 사고가 발생하면 운전자의 책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레벨3부터 자율주행자동차법에 따라 사고 발생 시 제조사 과실 가능성을 열어두고 국토부 산하 사고조사위원회에서 제조사와 운전자 간 책임 소재를 가려낸다"고 부연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도 "FSD와 슈퍼크루즈를 사용하다가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레벨2인 만큼 ADAS에 따른 사고와 같이 운전자 과실 100%로 산정될 가능성이 크다"며 "제조사의 책임을 고려하는 건 레벨3 이상은 돼야 가능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법조계는 FSD와 슈퍼크루즈에 대한 맹신은 금물이라며 운전자의 주의를 당부했다. 양태정 법무법인 광야 변호사는 "시스템 자체의 제작 결함이 인정된다면 자동차관리법에 따라 제조사에 책임을 물을 수 있겠지만, 자체 결함이 없는 것으로 판정되면 책임은 오롯이 운전자가 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황규상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이름은 '풀 셀프 드라이빙'(Full Self Driving·완전 자율주행)이라고 돼 있지만, '감독형'이란 수식어가 붙은 건 시스템을 전적으로 믿지 말라는 뜻이다. 차량의 편리한 기능은 활용하되 운전자의 책임하에 운용해야 한다"며 "기본적인 전방 주시, 조향 의무 등은 모두 운전자에게 있다. 정신 차리고 운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레벨2 자율주행이더라도 사고 발생 이후 법정 공방으로 이어질 경우 제조사의 민사상 책임이 일부 인정될 여지는 남아 있다. 지난 8월 미국 플로리다 남부 연방지법은 2019년 테슬라의 레벨 2 자율주행이자 감독형 FSD의 전신인 '오토파일럿'을 사용하던 도중 주차된 차량을 부수고 보행자를 쳐서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을 두고 사상 처음으로 피고 테슬라 측의 과실을 33%가량 인정해 유족과 부상 생존자에게 3억 2900만 달러(약 4800억 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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