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視角] 환율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정상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08 18:35

수정 2025.12.08 20:50

정상균 경제부 부장
정상균 경제부 부장
1400원대 원·달러 환율이 두 달 넘게 지속되는 고환율의 시대다. 8일 종가는 1466.9원. 코스피가 4100을 넘고 수출이 역대 최대인, 경제위기가 아닌데도 원화 가치가 뚝뚝 떨어지는 현 상황을 다들 이례적이라지만 이것이 뉴노멀일 수도 있겠다 싶다. 뭔가 트리거가 있다면 냅다 1500원대를 뚫을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돈다.

환율은 도깨비와 같다. 경상수지 흑자가 원화 강세라는 공식도 통하지 않는 현실에 1400원대에 똬리를 튼 환율에 대고 이것저것 쑤셔보는 경제당국도 답답하긴 하겠다.



환율은 거울이다.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환율의 등락 패턴이 5월 통화 이슈가 포함된 한미 관세협상 착수, 6월 이재명 정부 출범, 9월 13조원 소비쿠폰 살포와 에브리싱랠리(자산가격 동시 상승), 10월 강력한 부동산 규제, 11월 3500억달러 대미투자 압박의 흐름과 공교롭게도 일치한다.

자산증식 본능에 충실한 개미들은 신용대출까지 끌어다가 미국 증시를 출구로 삼았다. 세기적 대전환기를 맞은 인공지능(AI) 투자, 미국 빅테크에서 나는 '돈냄새'를 기막히게 맡은 것이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관세를 무기로 일본·한국을 몰아붙여 두 나라에서만 빨아들이는 9000억달러(약 1320조원)가 자금줄이다. 이렇게 달러 불패, 강달러는 건재하다.

하물며 시공간 제한 없이 해외자산을 클릭 몇 번에 사고팔 수 있는 모바일 기술혁명이 700만 '서학개미'들의 꽃길이 돼줬다. '쿨하다'는 청년들은 물론이고 노동소득으로는 만년 빈자를 면하지 못한다는 중장년, 노년층까지 '달러 포모(FOMO·뒤처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작용했다. 미국 빅테크 주가를 2~3배 추종하는 고위험 상장지수펀드(ETF)를 비롯해 10∼11월에만 개인들은 전년 대비 3배, 국민연금은 2배 이상 해외 주식을 쓸어담은 것이 그렇다.

올 1~10월 경상수지 흑자(896억달러)보다 더 많은 달러(899억달러)가 해외로 빠져나간 사실, 지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개인이 미국 증시에 열광하는 사이 달러를 묻어둔 채 대미투자와 불확실성을 단단히 단속하는 수출기업이야말로 헤지의 고단수다.

많이 풀린 돈이 기름을 부었다. 9월 기준 통화량(M2)은 4426조원, 미국 등 주요국보다 2배 가까이 폭증했다. 풀린 돈이 혁신투자에 절대적으로 흘러갔다면 환율의 흐름이 달라졌을 것이다. 100조원 넘게 빚내어 만든 재정의 상당액은 불가역적인 복지지출에, 일회성 현금 소비쿠폰 같은 퍼주기 정책에 쓰인다.

환율은 성질이 까다롭다. 곪은 속을 도려내지 않고 겉만 만지작하는 정부를 보면 답답하다. 외환수급 주체의 행태부터 뜯어고치겠다고 벼르는 것이 딱 그짝이다. 국민연금은 뉴프레임워크라는 이름으로 해외투자 틀을 바꾸겠다고, 증권사 해외투자에 과잉·왜곡이 없는지를 살펴보는 식이다. 투기를 막고 급한 불을 꺼야 하는 수단으로 어쩔 수 없다지만 몰아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달러 수요를 억누르겠다느니 필요하면 페널티를 검토하겠다니 하는 으름장, 어정쩡한 메시지로 시장을 떠보는 냉온탕식 대증요법의 구태는 아쉽다. '국민연금 소방수' 논란도 수익과 안정을 추구해야 하는 국민이 축적한 노후자산 연금의 본질이 훼손될 것 같아 미덥지 않다.

고환율 사태의 본질은 한국의 투자매력도 추락이다. 대미투자금 유출에 따른 국내 투자의 상대적 위축, 제조업 공동화, 투자수익의 국내 환류 불투명, 인구구조 악화에 따른 잠재성장률의 지속적 하락, 경직된 노동구조 고착과 반기업 규제 양산 등에 한국 경제는 갈수록 쇠해지는 것이다.

환율은 오늘과 내일의 국력이다.
굳어져가는 장기침체와 저성장 극복을 위한 명쾌한 경제·산업 개혁정책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 2년 차를 맞는 이재명 정부의 책임이다. 한계기업을 정리하고 혁신기업에 과감히 투자해 축적해놓은 경제 기반을 디딤돌로 성장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우리 땅에 우리와 외국 기업이 더 많이 투자할 수 있도록 낡은 규제를 풀고 법을 고치고 새로 만드는 것이다. '코끼리 다리 만지는' 꼴의 갇힌 시각에서 벗어나 보라. 집권당과 정책 책임자들이 각성하자.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