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매일 경찰관 5명이 다칩니다. 목숨을 잃는 이들은 매년 10명이 넘습니다. 공상·순직 승인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치안현장 최일선에서 시민들을 지키지만, 일을 하다 다친 경찰관은 정작 국가로부터 온전히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뉴스1>은 창경 80주년을 맞아 공무 수행 중 다치거나 숨진 경찰관과 유족들을 만나 그 현실을 들여다보고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해결책을 모색해봤습니다.
(서울=뉴스1) 김종훈 박응진 강서연 기자 = 지난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할 당시 32년 차 배테랑 경찰 김해찬 씨(가명)는 양쪽 귀에 이어폰을 착용한 채 경호 업무에 투입됐다.
남북 정상이 만나는 초대형 정치 이벤트가 진행되는 회담장 일대의 경호를 맡은 경찰관들의 긴장도는 어느 때보다 높았다. 행사 1주일 전부터 비상근무가 시작됐고, 현장점검과 훈련이 반복됐다.
그러던 중 김 씨는 당시 양쪽 귀에서 알 수 없는 먹먹함을 느꼈다. 귀에 낀 이어폰 너머의 무전기 소리도 희미하게 들렸다. 그는 이후 같은 해 11월까지 수차례 이명, 난청 증상 치료를 받았다.
경찰병원 주치의로부터 좌측 청력에 대해 '소음유발 난청, 돌발성 난청' 진단을 받은 건 2020년 6월이었다. 주치의는 그 원인으로 가혹한 업무 환경을 꼽았다. 주치의는 "환자는 지속적인 과로와 경호의 중압감 등 과도한 스트레스를 호소했고, 소음이 많은 환경에서 근무하다 증상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며 "이로 인한 소음유발 난청, 돌발성 난청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소견을 밝혔다.
연금공단 "공무 탓 단정 못해"…간접 사실로 인정된다며 뒤집은 法
공무로 인한 질병이라고 생각한 김 씨는 증상을 느낀 지 2년여 만인 2020년 8월 공무원연금공단에 장해급여청구를 신청했지만, 세 달 뒤 불승인 결정이 통보됐다. 이명의 원인이 다양하고 공무 수행으로 인해 발생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는 2년 뒤 인사혁신처를 상대로 장해급여부지급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그 과정에서 김 씨가 여러 업무를 하며 교통·총격·이어폰 무전기 등 다양한 소음에 노출돼 왔다는 점이 드러났다.
서울행정법원은 2024년 4월 인사혁신처의 장해급여불승인처분을 취소하고 김 씨의 손을 들어줬다. 그의 증상이 시작된 지 6년 만에 나온 판결이었다.
재판부는 "과도한 소음 노출과 업무상 스트레스 같은 공무상 요인이 개인적 요인과 겹쳐 이 사건 상병을 유발 또는 자연경과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악화시켰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공무와 상병 사이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봤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공무와 질병 사이 인과관계는 반드시 직접 증거에 의해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돼야 하는 것은 아니며 △취업 당시 건강 상태 △기존 질병의 유무 △종사한 업무의 성질 및 근무환경 등의 간접 사실에 의해 상당인과관계가 미뤄 판단될 정도로 입증되면 충분하다.
60%대 머무는 장해급여 승인율…"재정 고려해 소극적 판단"
경찰관들이 인사혁신처로부터 장해 관련 급여를 승인받지 못하는 경우는 적지 않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모경종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인사혁신처로부터 받은 최근 5년(2020~2024년)간 '공무상 재해 신청·인정 현황'에 따르면 평균 공무상 재해 승인률은 88.0%다.
연도별로는 △2020년 90.6% △2021년 89.7% △2022년 90.1% △2023년 88.1% △2024년 82.6%다.
그러나 이 기간 경찰의 순직 승인률은 60.7%, 장해급여 승인률은 61.2%로 공무상 재해 승인률 평균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인사혁신처 등 주무기관이 재정 안정성을 주로 고려해 소극적으로 공상을 인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원에 비해 지나치게 엄격한 업무와 질병간 인과관계를 요구하는 경향도 있다고 봤다.
정봉수 강남노무법인 대표노무사는 "업무로 인해 다친 사람이나 유족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공상 급여가 지급되는데, 인사혁신처는 재정 건전성만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며 "그러다보니 소송까지 가게 되는 경우가 잦다"고 말했다.
이어 "급여 신청이 기각됐다가 법원에서 뒤집히는 경우가 많다"면서 "법원은 근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지를 판단한다. 심사 과정엔 변호사, 노무사, 의사 등 여러 전문가가 참여하지만 의학적 관점에서만 보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갑작스런 죽음 앞 서류 준비…"재심 가면 1년 넘게 걸려"
심의 절차에 필요한 서류를 직접 일일이 준비해야 하는 점도 당사자와 유족에겐 부담이다. 아프거나 회복한지 얼마 안 된 상태임에도, 가족을 잃은 상황에서도 전문가의 조력 없이 행정 절차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출근 중 뇌출혈로 쓰러진 A 지방경찰청 소속 강재민 경사(가명)도 공상 신청에 애를 먹었다. 업무 과중과 스트레스로 인해 질병이 발생했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한 서류를 일일이 모으는 데에만 3개월 가량이 걸렸다.
강 경사는 "언제 출근하고 퇴근했는지부터 각종 행사에 동원된 내역까지 일일이 수집해야 했다"며 "행사라고 하면 그에 맞는 공문과 참석자 명단을 수집하는 등 공상을 인정받기 위해 한줄씩 적어내려갔다"고 말했다.
이어 "교통사고나 범죄 현장에서 다쳤다면 입증이 비교적 쉽지만, 저 같은 경우는 그렇지 않아 힘들었다"면서 "어떤 게 과로·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서류를 쓰는 게 막막했다"고 털어놨다.
경찰청과 업무협약을 맺고 경찰관들에게 자문을 해온 박종태 노무법인 봄날 대표 노무사는 "공상 처리에 상당시간이 소요된다"며 "순직은 평균 7개월, 불승인 되면 재심 청구까지 1년 이상 걸린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 기간이 유족 입장에선 고통스러운 기간"이라며 "제대로 된 보호와 보상을 못받게 되면 생활에 어려움이 있고 직무에 복귀하지 못하면 생계까지 위협받는다"고 전했다.
그는 업무 중에 다치거나 숨진 경찰관을 제대로 예우하는 게 국민들이 누리는 치안 서비스의 질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공상·순직 인정률 제고 및 신청 절차 간소화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노무사는 "경찰을 보호하는 건 시민 안전 편익과도 직결된다"면서 "공무상의 사유로 사망했는데 유족 보호가 안 되면 어느 경찰관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려 하겠느냐"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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