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제약

국산 비만약 시대 오나…한미약품 '에페글레나타이드'에 쏠린 눈

뉴스1

입력 2025.12.09 06:21

수정 2025.12.09 06:21

한미약품 본사 전경./뉴스1ⓒ 뉴스1 ⓒ News1 이훈철 기자
한미약품 본사 전경./뉴스1ⓒ 뉴스1 ⓒ News1 이훈철 기자


(서울=뉴스1) 장도민 기자 = 외산 GLP-1 주사제가 국내 비만 치료 시장의 고효능·고가 영역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한미약품(128940)의 '에페글레나타이드'가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식약처 글로벌 혁신제품 신속심사(GIFT) 지정으로 허가 일정이 단축된 것은 물론, 이미 글로벌 심혈관·신장 데이터를 확보한 신약 후보가 한국형 비만·대사질환 전략의 중심축으로 재해석되고 있어서다.

사노피서 돌아온 에페글레나타이드…국산 비만 플랫폼으로 재도전

8일 업계에 따르면 에페글레나타이드는 원래 국내 비만약으로 개발된 약이 아니다. 2015년 한미약품이 사노피에 기술수출한 장기지속형 대사질환 파이프라인 가운데 하나로, 한미의 'Lapscovery' 플랫폼을 활용한 주 1회 투여 GLP-1 수용체 작용제다. 사노피는 GLP-1 계열 경쟁이 본격화하던 시기, 이 약을 중심으로 글로벌 개발을 적극적으로 진행했다.



사노피는 이 약을 대상로 여러 건의 3상 시험을 진행했고, 그중에서도 당뇨병과 심혈관·신장 질환 위험이 큰 환자 4000여 명을 참여시킨 'AMPLITUDE-O'라는 대규모 임상도 따로 실시했다. 그 결과 주 1회 에페글레나타이드는 위약 대비 주요 심혈관 사건(MACE)을 약 27%, 신장 복합 이벤트를 약 32% 줄이는 효과를 보였고, 해당 데이터는 NEJM 등 국제학술지에 게재되며 안전성과 유효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글로벌 GLP-1 시장이 세마글루티드·터제파타이드 중심으로 재편되던 시기, 사노피는 대사 포트폴리오를 구조조정하며 에페글레나타이드의 권리를 한미약품에 반환했다. 경쟁 환경 변화 속에서 상업적 우선순위가 상대적으로 낮아졌다고 본 것으로 해석된다. 이후 한미약품은 이 약을 한국형 비만·대사질환 전략에 맞춰 다시 포지셔닝하기 시작했고 저BMI형 비만이 많은 아시아 환자 특성, 장기 유지요법 수요, 내약성·투여편의성 등 임상적 강점을 고려한 재해석이 이번 GIFT 지정과 비만 3상 톱라인으로 이어졌다.

평균 10% 감량·위장관 부작용은 상대적으로 적어

국내 비만 3상에서 에페글레나타이드는 당뇨병이 없는 성인 비만 환자 448명을 대상으로 40주간 주 1회 투여됐다. 평균 체중감소율은 9.75%로 위약 대비 뚜렷한 차이를 보였고, BMI 30 미만 여성 서브그룹에서는 12.20%의 감량이 확인됐다. 최대 체중감량은 30%대를 넘는 사례도 보고됐다. 서양에 비해 고도비만 비율이 낮고 저BMI형 비만이 많은 한국·아시아 환자 특성과 맞물려, 실제 진료 환경에서 의미 있는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안전성도 눈에 큰 관심을 받는 요소다. 공개된 3상 결과와 회사 발표·언론 보도에 따르면, GLP-1 계열에서 흔히 보고되는 구역·구토·설사 등 위장관 이상반응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으로 나타난 것으로 알려졌다. 고효능 수입제 대비 절대 감량 폭은 낮지만, '두 자릿수 감량 및 양호한 내약성'이라는 조합은 장기 유지요법에서 실질적 강점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이 뒤따른다.

여기에 이미 확보된 AMPLITUDE-O 심혈관·신장 보호 데이터가 더해지면서, 에페글레나타이드는 단순 체중감량을 넘어 대사질환 위험까지 함께 관리할 수 있는 '통합형 GLP-1'로 활용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로 한미약품은 제2형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추가 3상 IND를 제출하며 적응증 확장 전략을 가속하고 있다.

H.O.P 프로젝트 첫 단계…국산 GLP-1 플랫폼 경쟁 본격화

한미약품은 에페글레나타이드를 비만 혁신 프로젝트 'H.O.P'(Hanmi Obesity Pipeline)의 첫 단계로 제시하고 있다. H.O.P에는 고도비만·고효능 영역을 겨냥한 GLP-1/GIP/GCG 삼중작용제 HM15275, 지방 감소·근육 증가를 동시에 목표로 하는 CRFR2 선택적 UCN2 아날로그 HM17321, 향후 경구·패치 제형과 디지털 기반 체중관리 플랫폼 등 다층적 파이프라인이 배치됐다.

이 중 에페글레나타이드는 가장 넓은 환자군을 담당하는 '게이트웨이 약'으로 설계됐다. 고효능 수입제와 삼중작용제·근감량 방지형 파이프라인 사이에서, 장기 유지·내약성·접근성을 중심으로 국내 시장을 넓히는 기능을 맡는다. 국산 후보가 GIFT 트랙을 선점했다는 점은 향후 약가·건보·공급 안정성 논의에서 '국산 GLP-1'의 존재감을 키울 수 있는 변수가 될 전망이다.

다만 해외 확장성은 여전히 숙제다.
글로벌 비만·당뇨 시장에서 세마글루티드·터제파타이드는 이미 구조 자체를 바꿔놓은 약물로 평가된다. 에페글레나타이드가 국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외에서 어떤 위치를 확보할지, 병용 전략·가격 전략을 통해 어느 범위까지 영향을 넓힐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한다.


한미약품은 "비만·대사질환 분야 혁신신약 개발과 국내 환자 치료 접근성 향상을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며 "에페글레나타이드의 조기 상용화를 위해 필요한 절차를 신속하게 추진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