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황진중 기자
"콜린알포세레이트(콜린 제제)는 20여년간 처방돼 임상 현장에서 쌓인 데이터가 충분합니다. 통제된 환경에서 진행된 한 번의 임상시험 결과를 기계적으로 판단하는 것보다 다양한 연구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논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김희진 한양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는 8일 한양대병원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콜린알포세레이트'(콜린 제제)의 최신 효능 임상 데이터를 소개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세계신경과학회(WCN) 등 국제 학계는 최근 치매 예방약(뇌 기능 개선제)으로 알려진 콜린 제제의 임상적 유용성을 재조명하는 연구 결과들을 발표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장기 추적 연구 '아스코말바' 등을 비롯해 국내 주요 대학병원이 진행한 코호트 연구들은 콜린 제제가 뇌 위축 억제와 인지 기능 저하 지연 효과가 있다고 분석한다.
국내에서는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 확보 등을 목적으로 진행 중인 '콜린 제제 임상 재평가'가 이러한 최신 지견과 임상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경도인지장애 환자, 콜린 복용 시 인지 기능 저하 방어
김희진 교수는 콜린 제제가 증상 완화를 넘어 뇌의 구조적 보호에 기여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데이터들에 주목했다.
그는 "아스코말바 스터디의 장기 추적 결과를 보면, 콜린 제제 투여군은 비투여군에 비해 인지 기능 저하 속도가 느릴 뿐만 아니라, 뇌 피질 중에서도 기억과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와 해마의 위축이 덜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국내 임상 현장에서는 아스코말바 연구와 유사한 경향이 관찰된다. 분당서울대병원과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경도인지장애(MCI) 단계에서 콜린 제제를 복용할 경우 인지 기능 저하를 방어하는 효과가 확인됐다.
김 교수는 "뇌졸중이나 뇌경색 등 혈관성 위험 인자를 동반한 인지 저하 환자의 경우, 약물 투여 시 인지 기능이 약 10~15% 정도 호전되는 결과가 관찰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콜린 제제는 아세틸콜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전구체를 공급하면서 뇌세포막을 안정화하는 기전을 갖다. 김 교수는 "기존의 치매 치료제인 아세틸콜린 분해 효소 억제제만으로 증상 조절이 불충분할 때 콜린 제제를 추가하는 병용요법은 환자에게 임상적 이득을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치매 환자 89% 혼합 병리…단일 임상연구로 판단 한계"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콜린 제제의 유효성을 다시 입증하라면서 임상재평가를 명령했다. 현재 임상연구가 진행 중인 상황이다. 다만 김 교수는 치매와 경도인지장애라는 질환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단일 연구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경직된 접근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치매를 일으키는 원인은 80여 가지에 이른다. 임상에서 만나는 환자의 약 89%는 알츠하이머 병리와 혈관성 병변이 섞여 있는 '혼합 병리' 환자들"이라면서 "순수한 알츠하이머 환자나 혈관성 치매 환자를 완벽하게 선별해 임상시험을 진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극단적으로 뇌 영상에서 혈관이 상하고, 뇌 위축이 심해도 기능은 정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면서 "구조가 기능을 온전히 대변하지 못하는 인간의 뇌를 대상으로 통제된 환경의 RCT 결과 하나만으로 약의 존폐를 결정하는 것은 의학적 무리가 따른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김 교수는 '코호트 연구'와 '리얼 월드 데이터'(RWD) 등의 적극적인 활용을 제안했다. RCT가 적절히 통제된 환경에서의 연구라면, 장기 추적 코호트 연구와 RWD 등은 실제 진료 현장에서 환자가 겪는 자연스러운 경과를 대규모로 관찰하는 방식이다.
김 교수는 "콜린 제제는 지난 20년 이상 처방되며 방대한 임상 데이터가 축적돼 있다"면서 "이미 구축된 코호트를 활용해 장기간 추적 관찰하거나, 약물 중단 혹은 변경 시 환자의 예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분석하는 '생존 곡선' 방식의 연구 등이 더 가치 있는 결과를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 등 의료 선진국에서 실제 처방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RWD를 의사 결정의 중요한 근거로 삼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김 교수는 "빅데이터 분석은 표본에 따라 통계적 오류가 발생할 수 있지만, 잘 설계된 코호트 연구는 환자의 생활 습관이나 다양한 변수를 포함해 약물의 실제 효과를 검증하는 데 적합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콜린 급여 축소의 역설…10만 원 '건기식' 쏠림 현상
김 교수는 콜린 제제 급여 축소가 초래하고 있는 풍선 효과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전문의약품인 콜린 제제의 처방 문턱이 높아지자, 환자들이 의학적 근거가 부족한 건강기능식품에 의존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더 큰 문제는 비용이다. 급여가 적용되는 콜린 제제에 비해 비급여 건기식은 월 단위 복용을 위해 5만~10만 원이 필요해 환자의 경제적 부담이 오히려 가중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 교수는 "처방 약을 임의로 중단한 뒤 건기식만 복용하다가 인지 기능이 급격히 악화돼 10개월 만에 병원을 다시 찾은 환자가 있었다"면서 "치매는 의학적으로 뇌 질환이므로 객관적 연구 데이터로 검증된 약물을 복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희진 한양대학교병원 신경과 교수 프로필
△한양대학교의료원 기획조정실장 △성동구 치매안심센터장 △대한치매학회 윤리이사 △대한신경과학회 정보이사·학술위원 △대한뇌졸중학회 정회원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원 신경과학 박사·석사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