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문창석 기자
"한국 법인에서 벌어진 일은 제 책임 아래 있습니다.
책임을 통감하고 회피할 생각은 하나도 없습니다."
지난 3일 국회 정무위원회 현안질의에서 나온 박대준 쿠팡 대표이사의 말에는 틀린 말이 없다. 중요한 건 그 책임을 '누가' 지느냐는 것이다. 이 말은 박 대표가 아닌 김범석 쿠팡 Inc 의장이 했어야 할 대사다.
쿠팡Inc는 쿠팡 지분 100%를 갖고 있고, 김 의장은 쿠팡Inc 의결권 중 74.3%를 가진 실질적 의사 결정권자다. 지난 3분기 쿠팡 미국 법인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공시한 분기 보고서에 "최고 운영 의사결정자는 우리의 최고 경영자(김범석)"라고 명시했다.
김 의장이 쿠팡 한국 법인 등기이사가 아닌 미국 쿠팡Inc 의장이기에 한국 사건에 대한 법적 책임이 없다는 쿠팡의 주장은 옳다. 하지만 대부분의 매출이 한국에서 나오는 쿠팡이 정작 위기 상황에선 '미국식'으로 대응하는 걸 쉽게 이해할 한국인은 없다.
정말 '미국식'으로 하면 오히려 곤란하다. 페이스북은 2016년 8700만 명의 개인정보 유출로 7억 2500만 달러(약 1조 600억 원)의 합의금을 냈고, 50억 달러(약 7조 3400억 원)의 징벌적 벌금이 부과됐다. 이게 잘못을 돈으로 책임지는 미국식 자본주의다. 그런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조차 의회 청문회에 나와 사과했다.
이런 당위성보다 더 중요한 건, 지금 가장 큰 문제는 고객들이 쿠팡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제정보가 유출되지 않았다고 발표해도 고객들은 반박하고, 더 나아가 뭔가 숨기는 게 있지 않을까 의심한다. 이런 불신이 가득한 상황에서 고작 한국 대표의 '회피하지 않고 책임지겠다'는 말은 설득력을 잃는다.
SK텔레콤 유심정보 유출 당시 대국민 사과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했다. LG화학 공장 화재 사고에선 구광모 LG 회장이 머리를 숙였다. 이들에게 법적 책임이 있어서가 아니다.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전면에 나서는 게 고객에게 신뢰감과 진정성을 주고, 거기에서부터 효과적인 사태 수습을 시작할 수 있어서다.
오는 17일 국회에선 쿠팡 청문회가 열린다. 김 의장은 수익은 얻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이중적 태도' 비판에 대답해야 한다. 10년 전 쿠팡 설립 초기인 2015년 한국 사업 안착을 위해 발에 깁스를 하고도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던 당시 김 의장의 절박함은 이젠 사라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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