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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0이 구상하는 국제체제는 양극체제? [fn기고]

이종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10 06:00

수정 2025.12.10 06:00

반길주 국립외교원 교수
반길주 국립외교원 교수
[파이낸셜뉴스]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개의 초강대국이 블록(bloc)을 형성했던 냉전기는 명확한 양극체제였다. 하지만 1991년 소련 붕괴 후 미국은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남게 되었고 이로써 미국은 사실상 힘을 압도하는 패권의 지위를 구가했다. 그러던 중 중국의 부상으로 미국의 상대적 힘이 약화되면서 패권 지위 유지가 버거운 상황이 도래되고 있었다. 소위 신냉전이라는 새로운 국제질서가 부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까지 미국은 힘의 압도라는 지위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치열한 전략적 수싸움을 벌여 왔다.



그런데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이러한 미국의 전략목표에 지각변동이 포착되고 있다. 2025년 12월 5일 공개된 새로운 국가안보전략서(NSS)에는 서반구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규정하면서 힘의 압도에 거리를 두는 모습이 역력하다. 서반구 집중은 세력권의 범주와 영역을 제한시키겠다는 의미를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아시아에서는 중국을 염두에 두고 인도-태평양 억제와 대만 군사위협 억제의 중요성을 적시하면서도, 중국의 군사적 위협을 강조하기보다는 중국의 하드파워 신장에 주목하는 색채가 짙었다. 이와 유사하게 6일 피트 헤그세스 미 전쟁부 장관은 ‘레이건 국방포럼’ 연설에서 미국의 지향점은 “지배가 아니라 세력균형”이라고 언급했다. 러시아는 강대국을 지향하지만 경제력 등 하드파워를 고려하면 중견국으로 규정된다는 점에서 세력균형은 하나의 국가, 즉 중국과의 균형을 염두에 둔 것으로 사실상 양극체제를 지향한다는 의미다.

명확한 양극체제였던 냉전기와 달리 현 신냉전기에는 국제체제 규정이 힘든 상황이다. 단극체제도 아니고 양극체제도 아니며 그렇다고 다극체제도 아니다. 체제의 과도기성으로 인해 지향하는 체제를 두고 치열한 전략적 경쟁이 전개되는 상황이다. 2024년 신동맹 형성 당시 북한과 러시아는 “다극화된 국제적인 체계” 목표 달성을 위해 공조하기로 했는데 이는 다극체제 달성전략을 함께 설계하고 추진하자는 의미였다. 한편 중국은 “다자주의 실천”을 강조해 오고 있는데 이는 궁극적인 지향점이라기보다는 2049년 중국몽 달성을 통해 단극체제의 중심에 서는 종착지를 위해 잠시 지나가는 중간 기착지로 다극체제를 거칠 수 있다는 전략적 포석의 성격에 가깝다.

이런 중국의 셈법을 고려하면 트럼프 행정부의 양극체제 지향은 중국의 입장에서는 중국몽 달성 로드맵의 소요시간을 줄이는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국제체제를 양극체제로 규정한다면 중국은 이미 미국 수준의 지위를 달성한 것으로 인정받은 것으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전략목표 재설계는 미중 패권경쟁 본격화를 추동하는 동력으로 작용하여 지정학적 긴장 완화가 아니라 심화를 조성할 수 있다.

미국의 서반구 최우선 목표와 양극체제 지향 입장은 미중경쟁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전략적 승부수’가 아니라 ‘전략적 수세’ 카드로 전락할 여지가 적지 않다.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목표와도 정확히 동기화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미국이 세계를 대상으로 구상하고 있는 안보전략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지점이 남아있다. 따라서 중국이 압도적인 힘을 갖지 못하도록 미국의 목표에 수위를 조절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궁극적으로는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것인지 목표 정교화에 대한 논의가 지속될 개연성이 적지 않다.
바로 이것이 후속타자 성격의 문서인 미 전쟁부의 국방전략서(NDS)가 주목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반길주, 국립외교원 교수>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