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사설

[사설] KTX-SRT 통합, 구조개혁 없인 방만경영 못 막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09 18:25

수정 2025.12.09 18:25

내년에 고속철 운영체제 합치기로
누적적자·안전 문제부터 해결해야
내년 중 KTX와 SRT를 하나로 합치는 방안이 추진된다. 2016년 SR 출범으로 시작된 철도 경쟁체제가 10년 만에 다시 독점 체제로 돌아가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사진=뉴시스
내년 중 KTX와 SRT를 하나로 합치는 방안이 추진된다. 2016년 SR 출범으로 시작된 철도 경쟁체제가 10년 만에 다시 독점 체제로 돌아가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사진=뉴시스
국토교통부가 KTX와 SRT를 하나로 합치는 '고속철도 통합 로드맵'을 8일 내놓았다. 내년 안에 기차 예매시스템과 운영체계, 조직을 단계적으로 통합한다는 내용이다. 이대로 진행되면 2016년 SR 출범으로 시작된 철도 경쟁체제가 10년 만에 다시 독점체제로 돌아가게 된다.

이번 로드맵은 '이원화된 고속철도 통합으로 국민 편의를 확대하겠다'고 한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하는 차원에서 마련됐다. 과거 KTX와 SRT 분리 이후 좌석난과 안전 문제가 심해지는 등 분리체제를 더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두 고속철도가 통합되면 서울·용산역에서만 탈 수 있던 KTX를 수서역에서도 이용할 수 있고, 수서역에서만 탑승 가능했던 SRT는 서울·용산역에서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내년 3월부터는 KTX·SRT 예매 애플리케이션에서 운영사 구분 없이 모든 역을 조회할 수 있다. 코레일은 통합 후 KTX 요금을 SRT 수준에 맞춰 10%가량 인하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변화만 보면 고속철 통합은 이용객 편의를 높이는 긍정적 조치로 보인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편익이 커 보이더라도 추진 과정에서 고객 불편이 발생하거나 부작용이 나타난다면 탁상공론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과거 두 회사를 분리할 때 경쟁을 통한 소비자 편의 증대를 근거로 내세웠는데 이제는 같은 근거로 통합을 추진하는 모순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0년간 KTX와 SRT 체제가 일정 부분 경쟁 효과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운영 중복에 따른 비효율성도 드러났다. 그렇다면 SR이 어떤 방식으로 운영됐는지 면밀하게 평가해 최선의 대안을 마련하는 절차가 선행됐어야 한다. 이러한 검증 없이 통합이 추진돼 공약 이행에 집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정부는 통합 후 좌석 수가 1만6000석 늘 것이라고 했지만 이 같은 효과가 단기간에 현실화할지는 의문이다. 지금 기차표 구하기가 어려운 것은 단순히 운영사가 나뉘어 있어서가 아니라 열차를 추가 투입하기 어려운 구조적 제약 때문이다. 경부선과 호남선 열차가 함께 운행되는 일부 구간은 이미 5분 간격으로 열차가 운행돼 선로 용량이 포화상태다. 통합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현재 철도 공기업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코레일의 부채비율은 2020년 242.1%에서 지난해 265.4%로 뛰었고, 누적 적자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7명의 사상자를 낸 열차사고까지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구조개혁 없이 조직만 키운다면 또 다른 거대 공공기관이 탄생할 뿐이다. 이 같은 기관이 개혁의 사각지대에서 방만경영의 악순환에 빠진다면 국민에게 돌아올 것은 '편의'가 아니라 '부담'이다.

세계 각국은 철도기업 간 경쟁을 통해 자연스러운 구조개혁을 하고, 서비스 품질을 개선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여러 철도 사업자가 공존하는 것도 이미 보편적 흐름이다. 반면 우리는 통합 이후 노조 파업 시 모든 고속철이 운행을 멈추는 최악의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경쟁을 외면한 채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