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매일 야근·압색 10번 '위암 4기'에도…경찰관 암 공상·순직 '별따기'

뉴스1

입력 2025.12.10 06:01

수정 2025.12.10 06:01

ⓒ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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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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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매일 경찰관 5명이 다칩니다. 목숨을 잃는 이들은 매년 10명이 넘습니다. 공상·순직 승인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치안현장 최일선에서 시민들을 지키지만, 일을 하다 다친 경찰관은 정작 국가로부터 온전히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뉴스1>은 창경 80주년을 맞아 공무 수행 중 다치거나 숨진 경찰관과 유족들을 만나 그 현실을 들여다보고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해결책을 모색해봤습니다.

그 결과를 모두 7차례에 걸쳐 기사로 내보냅니다.

(서울=뉴스1) 박응진 김종훈 강서연 기자
매일 3끼를 사무실에서 해결했고, 보고나 갑작스런 업무 하달로 식사 시간조차 지키지 못했어요. 만성적인 수면 부족은 당연한 일이었고요.
지난 2011년 1월부터 경찰청 정보국에 몸담았던 고(故) 박형석(가명) 경정은 전국에서 모이는 경찰 정보와 범죄 첩보를 정리하고 대통령실로 보낼 보고서를 만드는 일를 했다. 대통령실의 요청이 있으면 인사검증이나 복무점검 업무를 수행했고, 계장 직책을 맡으면서부턴 같은 과 소속 직원들의 인사, 교육, 성과관리, 기타 서무도 도맡았다.

그런 박 경정에게 오전 7시 이전 출근, 밤 10시 이후 퇴근은 일상이었다. 숨지기 전 6개월 동안은 월 평균 100시간 넘게 업무 시간 외 근무를 했다. 대법원이 적용하는 월 근무 일수인 20일로 계산했을 때 하루 평균 5시간을 더 일한 것이다. 일이 몰린 5월엔 매일 7시간 초과근무했다. 그가 매일 세 끼를 사무실에서 해결하고, 만성적인 수면 부족에 시달린 이유다.

2018년은 박 경정에게 특히 힘든 해였다. 검찰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영포빌딩 지하 창고 압수수색 과정에서 '다스'와 관련된 다량의 경찰 문서를 확보함에 따라, 자신과 무관한 사건임에도 10여 차례에 이른 검찰의 정보과 압수수색을 오롯이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정보과 보유 PC 등 전산 자료에 대한 포렌식 절차에 참여하는가 하면, 정보업무 전반에 대한 설명을 위해 수시로 검찰 조사에 응해야 했다.

그러던 박 경정은 2021년 6월 갑작스럽게 위암 4기 판정을 받았다. 간농양 진료를 위해 들른 병원에서 복부 불편으로 진행한 내시경 검사의 결과였다. 2019년 12월 내시경 검사 땐 위암 소견이 없었지만, 불과 1년 6개월 사이에 발병한 암이 4기까지 급속도로 진행된 것이다. 박 경정은 뒤늦게 항암치료를 시작했지만, 2022년 10월 끝내 숨을 거뒀다.

유족은 박 경정이 잦은 초과 근무와 불규칙한 생활 속에서 검찰 압수수색 대응 등 특수한 상황까지 더해져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위암에 걸린 걸로 보고 공무상요양(공상)과 순직유족급여(순직급여)를 청구했다. 그의 주치의들도 이런 생활이 위암 발병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지난 4월 인사혁신처는 유족의 청구를 기각했다. 인사혁신처는 △업무로 인해 방사선에 장기간 노출된 내역을 확인할 수 없는 점 △과로가 원인이 돼 위암 4기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려운 점 △과로 및 스트레스와 위암 간 연관성에 대한 의학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최근 5년간 경찰관 암 순직급여·공상 청구 68건, 승인은 단 1건

경찰관이 암 관련 질병으로 순직급여 또는 공상을 승인받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최근 5년(2020~25년 6월)간 모두 68건의 청구가 있었지만, 이 중 단 1건의 공상만 승인됐다. 박 경정의 동료 경찰관은 "직전 건강검진 때만 해도 위가 깨끗했는데, 갑자기 위암 4기라고 하더라"며 "과도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등 때문에 암에 걸렸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도 인정받지 못해 안타깝다"고 했다.

경찰관들의 암은 소방관들의 암과 달리 업무연관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편이다. 같은 기간 소방관들의 순직급여 또는 공상 청구 220건 중 122건이 승인받는 등 55.5%의 승인률을 보였다. 소방관들의 승인률이 비교적 높은 건 화재 현장 등에서 유해물질에 직접 노출되는 직업환경적 특수성 때문이다. 그럼에도 경찰관들의 승인률은 유해물질 노출 위험이 비교적 덜한 다른 일반 공무원들에 대한 승인률(10.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경찰관들은 암 관련 질병에 대한 국가 차원의 보상에서 소외돼 있다.

하지만 경찰관들은 △야간·교대근무 △라디오파 △자외선 △초미세먼지 △디젤엔진연소물질 △다환방향족탄화수소 등 다양한 발암요인에 노출되고 있지만, 이는 인사혁신처 심사과정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경찰관 중 70%는 야간·교대근무를 하고 있는데, 야간 근무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2급 발암물질이다. 교통·지역경찰·기동대 등 현장 근무인력의 다수는 1급 발암물질인 미세먼지와 차량 배기가스 등에 노출된다.

특히, 최근 10년간 질병으로 사망한 경찰관 중 약 53%는 암 관련 질환으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2020년 경찰청 정책연구에 따르면 경찰관들은 △방광암 △폐암 △백혈병 △비호지킨림프종 등에서 일반인과 소방관에 비해 높은 연령표준화 유병률을 보인다. 의학적으로 스트레스와 암의 인과관계가 명백하게 규명되진 않았으나, 스트레스가 암의 발현과 진행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도 다수의 연구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법원 또한 암으로 사망한 공무원에 대해 과도한 초과근무 등의 과로와 위암 발생간 인과관계를 인정하며 순직급여를 승인한 바 있다.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 4월쯤 관련 업무를 전담하다 다음해 6월 위암으로 숨진 전남의 한 보건직 공무원에 관해 인사혁신처는 위암의 의학적 특성상 과로 또는 스트레스로 인한 직무상 요인 때문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순직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지난 5월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판사 최수진)는 A 씨 유족이 제기한 순직급여 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일반적인 공무원에게 기대되는 수준을 크게 상회하는 고강도·고난이도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이로 인해 이미 발병한 위암이 자연적인 경과 속도 이상으로 악화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직접적인 발암물질 노출만 영향?…승인 기준 개선해야"

박종태 노무법인 봄날 대표 노무사는 "경찰관은 소방관처럼 야간 교대근무를 반복하고 정신적으로 긴장이 높은 불규칙한 노동환경에서 근무한다. 이런 환경이 20~30년 누적되면 직업성 암이 발병할 수 있다"며 "그래서 공무원재해보상법도 장기간 야간 교대근무를 반복한 경우엔 대장암, 유방암, 비뇨기계 암 등을 공상·순직 관점에서 접근하도록 근거를 마련해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노무사는 "국제암연구소에 의하면 야간 교대근무 등 불규칙한 노동은 암 관련 질병을 유발하는 2급 발암물질로 분류되고 있으며, 경찰 직무는 정신적 긴장과 육체적 부하가 매우 높다"며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신체 기능이나 면역력을 저하시켜 암을 발병시키거나 악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직접적인 발암물질 노출에만 초점을 맞춰 온 암 관련 질병의 공상·순직급여 승인 범위를 장기간의 야간 교대근무와 고도의 직무 스트레스 등으로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를 위해 경찰청은 경찰관의 암 질환 발생과 직업적 요인 상관관계 등에 관한 연구와 직업성 암 관련 순직·공상 입증지원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와함께 2023년에 공상추정제(공무상 재해보상법 제4조의2)의 '직업성 암' 대상에 소방관들의 화재진압 업무가 포함된 것처럼 경찰관들의 업무도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현재 경찰관 공상추정 대상 질병은 심·뇌혈관계 질환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 정신질환으로 국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