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음악·공연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일선전포고 [김정한의 역사&오늘]

뉴스1

입력 2025.12.10 06:02

수정 2025.12.10 06:02

대한민국 임시정부 (출처: 독립기념관, 1920,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대한민국 임시정부 (출처: 독립기념관, 1920,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41년 12월 10일, 중국 충칭(重慶)에 위치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정)가 일본 제국에 대해 대일선전성명서를 발표, 공식적인 선전포고를 단행했다. 이는 일본이 미국 진주만을 기습하며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지 불과 사흘 만이자, 임정으로서는 일제의 패망을 앞당기기 위한 중대한 결단이었다.

임시정부 주석 김구와 외무부장 조소앙 명의로 발표된 성명서는 한국 전체 인민이 이미 반침략 전선에 참가했으며, 이제 하나의 전투 단위로서 일본, 독일, 이탈리아 등 ‘축심국’(주축국)에 대해 전쟁을 선언함을 천명했다.

이로써 임정은 1940년 창설된 한국광복군을 주축으로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 의사를 공식화했다. 이를 통해 국제사회에 한국의 자주독립 의지를 확고히 드러냈다.



선전포고 성명서에는 한국의 주권 회복을 위한 강력한 의지를담았다. 주요 내용은 전 한국인의 반침략 전선 참여 및 축심국에 대한 선전포고, 한일 합병 조약 및 일체 불평등 조약의 무효 재선포, 최후 승리까지의 혈전, 만주국 등 일본의 비호하에 조성된 괴뢰 정권 불승인, 대서양 헌장의 한국 독립 적용 주장 등이었다.

이 선전포고는 임정이 연합국으로부터 정식 국가로 승인받지 못한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아닌 주권국으로서 일제에 대항하여 싸우는 교전국임을 만천하에 선포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국제법적으로도 한국의 독립운동이 단순한 내부 반란이 아닌 국가 간의 전쟁임을 명확히 한 것이었다. 이는 전후 한국의 독립을 정당화하는 중요한 근거가 됐다.


임정의 선전포고를 기점으로 한국광복군은 인도, 미얀마 등지에서 연합군과 함께 대일전에 참여다. 또한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하는 등 적극적인 군사 활동을 전개했다.
선전포고는 한국 독립운동의 자주적 지위를 확립하고, 국제적인 연대를 통해 독립을 쟁취하려는 임정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준 결정적인 한 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