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이동희 기자 = 최근 국내 자동차 업계 최대 화두는 단연 테슬라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 FSD(Full Self Driving)다. 감독형 FSD가 국내에 들어오면서 유튜브·엑스(X)에는 시승기가 넘쳐난다. 지난해 미국에서 FSD를 경험했을 때도 놀라웠지만, 이제 서울 골목길에서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모습을 보니 자율주행 시대가 더 이상 먼 미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테슬라의 FSD 도입은 송창현 현대차 사장의 사의와 겹치며 상징성을 키웠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자율주행 등 미래차 사업을 맡았지만, 4년간 시장이 인정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물러났다.
현대차는 레거시 완성차 가운데 전동화 전환에 가장 빠르게 대응한 회사로 꼽힌다. 전용 전기차 플랫폼 E-GMP를 앞세워 전동화 퍼스트 무버라는 이름을 얻었고, 글로벌 판매량과 평가 모두 훌륭했다. 2022년에는 양산차에 레벨3 자율주행을 적용하겠다고 선언하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2025년 12월 현재 자율주행 성과는 기대에 못 미친다. 포티투닷, 모셔널 등 계열사를 통해 개발을 이어가고 있지만 테슬라·구글 웨이모·중국 전기차 업체와 기술 격차가 벌어지는 모양새다. 이대로라면 퍼스트 무버에서 다시 패스트 팔로어로 내려앉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현대차는 2028년 자율주행 레벨3 양산차를 선보일 계획이다.
정의선 회장은 이런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자율주행은 무엇보다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대원칙이다. 다만 여기서 멈출 게 아니라 "기술 개발 속도도 놓치면 안 된다"는 진단이 필요하다.
자율주행 시대 안전은 방대한 데이터 위에 쌓인다. 테슬라는 전 세계 도로에서 실시간 데이터를 수집하고, 운전자가 FSD를 쓰지 않을 때도 섀도 모드로 학습을 반복한다. 국내 일부 구간을 수백 대 차량으로 실증하는 방식과는 구조적으로 다르다. 시간이 갈수록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게임이다. 결국 더 많은 자율주행 차량을 더 빨리 도로 위에 내보내는 것이 안전을 위한 지름길이다.
여기서 엉뚱한 상상을 해보게 된다. 해외 출장이 잦은 정의선 회장이 미국에서 FSD가 적용된 테슬라나 구글 웨이모를 타고 도심을 누벼봤다면 어떨까. 평소 현대차가 기술 개발 과정에서 경쟁사 모델을 연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정 회장도 테슬라 FSD를 이용해봤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랬다면 "자율주행 시대 더 나은 안전을 위해 더 빠르고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았을까.
현대차는 연간 수백만 대를 생산해 수출하고 수만여개 협력사를 거느린 한국 제조업의 핵심이다. 지역경제와 고용을 포함한 파급 효과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관세 협상 타결 직후 정 회장을 만나 "현대차가 잘 되는 게 대한민국이 잘 되는 겁니다"라고 말한 것도 과장이 아니다.
자율주행이라는 거대한 변곡점 앞에서 현대차가 '안전'과 '속도'라는 두 축을 동시에 잡길 바란다. 지금보다 더 과감하면서도 더 안전한 도전을 이어가는 현대차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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