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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스스로 문장이 되는 과정…임승유 시인의 첫 산문집

뉴스1

입력 2025.12.10 07:10

수정 2025.12.10 07:10

[신간] '텍스트 기억 연습'
[신간] '텍스트 기억 연습'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시인 임승유가 첫 산문집에서 기억이 스스로 문장이 되는 과정을 담아냈다.

저자는 기억을 문장으로 불러내는 일이 아니라, 기억이 먼저 몸을 세우고 그 형체를 문장이 따라붙는 경험을 기록한다.

1부 '장면'은 어린 시절로 데려간다. 체육대회가 끝난 운동장, 개울가의 빨래, 집을 옮길 때마다 달라진 창문들… 장면들은 열거법으로 흐르며 감정의 높낮이를 숨긴다. 등 뒤에서 들린 한마디가 몸을 앞으로 밀어낸다.



2부 '사물'은 우산·집에서 입는 옷·연필·손수건·맥주 같은 생활의 재료를 불러 세운다. 사물은 목적지가 아니다. 사물은 사람에게 도달하기 위한 경유지다. 경계가 엉겨 붙은 생활의 냄새가 먼저 떠오르면, 문장은 그 냄새를 붙잡아 질서를 만든다.

3부 '소설'에서 시인은 애독의 시간을 펼친다. 사랑한 문장들의 호흡으로 자기 문장의 기원을 더듬고, 반복할 형식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일을 긍정한다. 장소의 반복, 장면의 반복, 문장의 반복은 상처를 통과하는 장치가 된다.

4부 '사람'에서 시선은 '너'로 이동한다. '나만 알고 지내는 사람'에게 건네는 작은 인사, "넌 참 환하게 웃는다." 같은 말이 남기는 잔광이 독자의 시선을 붙잡는다.

이번 산문은 설명 대신 배열을 택한다. '열거법'은 구멍에 빠지지 않는 방법으로 작동한다. 같은 위계의 사물·사건·감정이 나란히 놓일 때 예기치 않은 전환이 발생하고, 여백은 수사를 덜어내고 사유의 자리를 남긴다.

문체는 절제와 호흡으로 긴장한다.
보폭을 크게 내딛는 문장 다음에 갑자기 멈추는 짧은 문장이 들어와 리듬을 바꾼다. 말의 자리를 넓히되, 과잉의 고백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은 고백록이 아니라 기억이 텍스트를 연습하는 풍경에 가깝다.

△ 텍스트 기억 연습/ 임승유 지음/ 아침달/ 1만 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