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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 출신'이 공적자금으로 키운 이지스, '해외파 딸'이 미국식으로 매각

뉴스1

입력 2025.12.10 07:19

수정 2025.12.10 07:22

이지스자산운용
이지스자산운용


(서울=뉴스1) 박재찬 보험전문기자 = 국내 최대 부동산 전문 운용사 이지스자산운용의 인수 우선협상 대상자로 중국계 사모펀드(PEF)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가 선정되면서 금융권에서는 국민연금 등 공적 자금이 들어가 있는 이지스자산운용이 중국계 자본으로 넘어간다는 데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1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이지스자산운용 매각 주관사인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는 힐하우스를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했다. 관건은 향후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다.

이지스자산운용 우선협상 대상자 '중국계 자본' 힐하우스

힐하우스는 중국 허난성 출신 기업가 장 레이가 2005년 설립한 사모대체투자 전문 자산운용사다. 장 레이는 중국 인민대학교와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각각 학사 및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예일대 재단으로부터 2000만 달러의 출자를 받아 회사를 창업했다.



이후 텐센트, 바이두, 징둥닷컴 등 중국 대표 온라인 기업에 초기 투자자로 참여해 펀드를 이끌어 왔고, 중국 내 리테일·소비재 산업으로 투자 범위를 확대했으며 포트폴리오에서도 중국 기업이 과반을 차지한다.

장 레이가 싱가포르 국적을 보유하고 있지만, 중국계 자본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힐하우스가 웹사이트에서 중국 관련 표현을 상당 부분 삭제했고 중국 직원을 줄였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힐하우스는 2020년에 실물자산 투자 부문을 분사해 부동산 자회사 '라바파트너스'를 설립한 후 부동산 투자 시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일본에서 주거와 호텔 개발을 주로 해왔던 디벨로퍼인 '삼티 홀딩스'를 인수해 아태 지역 투자·운용 역량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는 아태지역의 상업용 부동산 자산을 통합 관리하는 플랫폼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힐하우스는 이지스자산운용 인수를 통해 디지털 인프라, 주거 부문 등 신사업을 강화하고, 외국 자본과의 연계를 통해 밸류업을 꾀한다는 전략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의 경영권이 힐하우스에 넘어갈 경우 이지스자산운용이 중국 자본 부동산 투자의 플랫폼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힐하우스가 이지스자산운용 인수에 성공할 경우 의결권 및 경영권의 실질적 통제권이 중국계 자본으로 넘어가게 되는 셈이다.

국민연금 발판 삼아 성장한 이지스…공공 성격 가진 자산 정보가 해외로 유출

특히 금융권에서는 국민들의 노후 자금인 국민연금 등 공적 자금을 발판으로 성장한 이지스자산운용이 중국계 자본에 넘어간다는데 대해 우려한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이지스자산운용의 10개 펀드에 투자한 자금은 총 2조 1000억 원으로 국민연금 전체 부동산 투자의 4%에 달하는 금액이다. 국민연금과 함께 공무원연금, 행정공제회 등까지 포함하면 이지스자산운용에 투자된 연기금은 6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지스자산운용은 부동산에 특화된 자산운용사로 국내 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한 투자가 상당하다.

이는 창업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이지스자산운용은 국토교통부 차관을 역임한 고(故) 김대영 창업주가 2010년 설립한 부동산 전문 투자사로, 누적 운용자산은 65조 8000억원으로 2위인 마스턴투자운용(36조6000억원)과 격차가 큰 국내 1위, 아시아 3위권 운용사다.

이지스자산운용이 국민연금 등 공적 자금을 발판 삼아 성장한 것도 관료 출신의 창업주의 영향이 컸다. 이후 지난 2018년 창업주가 작고한 뒤 손화자 씨등 유족들이 지분을 상속받았지만, 경영에 참여하지 않기로 방침을 세우면서 경영권 매각으로 이어졌다.

이번 매각은 손 씨가 보유한 지분 12.4%와 재무적 투자자의 보유 물량 등을 합친 지분 60% 이상이다. 여기에 대신파이낸셜그룹과 조갑주 전 신사업추진단장 측 등의 지분이 포함되면서 경우 매각 범위는 최대 98% 수준까지 확대된다.

최대주주 손 씨의 딸인 김애미 투썸 사외이사가 매각 작업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 매각이 본격화된 것도 1년여 전 김 이사가 직접 골드만삭스와 접촉한 것이 발단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이사는 미국 펜실베니아대학교 와튼스쿨에서 MBA를 취득한 이후 2001년부터 맥킨지앤컴퍼니에서 일하며 글로벌 투자은행(IB), 사모펀드(PEF) 인맥이 강한 '해외파'다. 김 이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한 투썸플레이스도 칼라일그룹이 최대주주다.

김 이사는 기업 경영, 인수합병 분야에서 장기간 경험을 쌓았다. 이에 손 씨도 김 이사에게 지분 처분과 관련된 전권을 일임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지스자산운용의 매각 주간사측이 가격 경쟁을 붙이는 경매 방식의 '프로그레시브 딜 기법을 통해 당초 흥국생명과 한화생명간 '2파전'이 유력했던 인수전을 힐하우스가 본입찰 이후 인수가를 1조1000억원까지 끌어올려 판세를 뒤집게 한 것도 전형적인 미국식 M&A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본입찰에서 1조500억원으로 최고가를 제시한 흥국생명은 힐하우스에 밀려 고배를 마시게 됐다.

관료 출신의 창업주인 부친이 공적 자금으로 키운 회사를 해외파 딸이 미국식 M&A 기법에 따라 사회적 책임보다는 오로지 '가격'으로만 회사 매각을 결정한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중국계 사모펀드가 이지스자산운용의 경영권을 쥘 경우 국내 금융·부동산 정책과의 정합성 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공공 부동산 관련 민감 정보가 중국 자본에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단순한 기업 투자 차원을 넘어 국가 자본·자산 주권 측면에서의 리스크로 확장될 수 있다는 의미다.

금융권 관계자는 "힐하우스가 이지스운용 경영권을 가지게 될 경우 국내 공공 성격을 가진 자산의 정보가 중국 자본으로 유출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중국계 자본' 꼬리표 금융당국 대주주 적격성 심사 최대 걸림돌

앞으로 관심은 금융당국으로 쏠린다. 힐하우스가 이지스자산운용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거쳐야하기 때문이다. 금융회사지배구조법상 은행·자산운용사·증권사 등 금융사는 최대주주 또는 주요주주가 바뀔 때(지분 인수, 경영권 변경 등) 반드시 대주주 변경승인과 적격성 심사를 받아야 한다.

금융위원회는 심사 과정에서 재무 건전성, 사회적 신용, 자금 조달 방식의 투명성 등을 검토하는데 외국계 사모펀드라는 점에서 보다 까다로운 심의가 예상된다. 단기 투자자금 회수를 목표로 하는 사모펀드 특성상 기업의 재무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는 불신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힐하우스는 '중국계 자본'이라는 꼬리표가 대주주 적격성 심사의 최대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출자 능력이나 자본건전성 등과 같은 정량적 심사 항목은 충분히 통과하겠지만, 금융시장 안정성과 공익적 고려 등과 같은 정성적 항목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최대 부동산 전문 운용사가 해외 자본으로 넘어간다는 의미가 크다"며 "가격 경쟁력만 내세운 힐하우스가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통과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