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벌금 내면 그만" 판치는 학대 번식장...'한국형 루시법' 통할까

한승곤 기자,

김희선 기자,

안가을 기자,

김수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14 14:00

수정 2025.12.14 14:00

[강아지공장 잔혹사 / 하] '상품 아닌 가족' 동물권 강화 첫걸음
출산이 불가능하단 이유로 번식장 구석에 방치되어 있다 구조된 강아지. 사진=카라 제공
출산이 불가능하단 이유로 번식장 구석에 방치되어 있다 구조된 강아지. 사진=카라 제공

반려동물 1500만 시대 '강아지 공장'이라 불리는 번식장의 비명은 '벌금 몇 푼'으로 묻히고, 무허가 업자들은 법망을 비웃으며 사업을 이어간다. 펫숍의 유리장 속 어린 생명 뒤에는, 어미 개들이 기계처럼 혹사당하는 잔혹한 현실과 이를 방조하는 기형적 유통 구조가 존재한다. 본지는 2회에 걸쳐 이 야만의 고리를 추적하고, 국회에서 다시 불씨를 지핀 '한국형 루시법'이 이 끝없는 악순환을 멈출 수 있을지 살펴봤다. [편집자주]

[파이낸셜뉴스] 지난해 2월, 충청남도 보령의 깊은 산자락에서 발견된 불법 번식장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동물 학대의 참혹한 현실과 동시에, 현행법의 무력함을 여실히 드러내며 세상을 경악시켰다. 비닐하우스 문을 여는 순간, 코끝을 찌르는 지독한 악취와 함께 어둠 속에서 100여 마리가 넘는 개들의 눈동자가 절망으로 반짝였다.

기본적인 위생조차 찾아볼 수 없는 암흑 속에서, 100여 마리의 개들은 오물 덩어리와 뒤엉켜 있었고, 발 디딜 틈 없이 쌓인 배설물은 그야말로 산을 이루고 있었다.

구조 현장에 투입되었던 송지성 동물자유연대 위기동물대응팀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분노했다. 그는 “비닐하우스 문을 여는 순간, 인간의 탐욕이 낳은 절망이 공기처럼 떠돌고 있는 듯한 무거운 분위기였다”며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그야말로 지옥 그 자체였다”고 증언했다. 현장에서 구조된 동물은 개 122마리와 고양이 2마리, 총 124마리였다. 일부 개들은 뒷다리가 꺾인 채 텅 빈 밥그릇 안에서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심지어 턱뼈가 함몰되거나 탈장 증상을 보이는 개체도 다수였다.

■다리 절단에도 처벌 수위는 벌금 500만원
이처럼 수많은 생명이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받았음에도, 무허가 번식장 운영 등 혐의로 고발된 업주는 불과 벌금 500만 원에 그치며 사건이 종결됐다. 이렇다 보니 솜방망이 처벌은 학대 번식장이 끊이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법무부·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6년부터 2020년 10월까지 5년 간 동물보호법을 위반해 검찰로부터 처분을 받은 사람은 총 3398명으로 집계됐다. 이중 51.2%에 달하는 1741명이 불기소 처분을 받았고 31.8%인 1081명은 정식재판이 아닌 약식명령청구 처분을 받았다. 특히 동물보호법 위반을 이유로 법원에 정식으로 재판을 청구한 사람은 93명에 불과했다. 이 중 구속기소로 이어진 사람은 2명에 불과했다.

송 팀장은 "무허가 번식장이 실질적으로 운영되고, 대량 구조가 발생할 만큼 많은 동물이 고통받고 있음에도, 법적 처벌은 경미했다"고 지적하며 "이러한 구조가 반복되지 않도록, 무분별한 동물생산판매업을 엄격히 규제하거나 폐지하는 법과 제도가 필요하고, 이에 따른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명 '뜬장'에 갇힌 강아지들. 평생 새끼를 낳다 폐기 처분이 되는 경우가 많다. 사진=동물자유연대
일명 '뜬장'에 갇힌 강아지들. 평생 새끼를 낳다 폐기 처분이 되는 경우가 많다. 사진=동물자유연대

■솜방망이 처벌에…허가 받지 않고 SNS로 은밀히 거래
처벌 수위가 낮으니 불법 번식업자들은 더욱 교묘한 방식으로 영업을 지속한다. 2024년 한국소비자원이 주요 온라인 오픈마켓과 중고거래 플랫폼의 반려동물 판매 게시글을 조사한 결과 판매자의 80% 이상이 동물판매업 등록번호를 기재하지 않거나 허위로 표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행 동물보호법상 허가받지 않은 가정에서 돈을 받고 동물을 분양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지만, 단속의 사각지대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은밀하게 거래가 이루어져 적발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기에 동물권단체들이 ‘가정 분양’을 내세운 SNS 계정 100여 곳을 무작위로 선정해 역추적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이들 중 약 90%가 실제로는 펫숍이 운영하는 위장 계정이거나, 불법 번식업자와 연결된 알선책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화려한 필터와 연출된 사진으로 생명을 ‘쇼핑 가능한 상품’으로 포장하며 소비자들을 현혹하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불법 번식장에서 생산된 강아지들이 ‘합법적 가정견’이나 ‘허가 번식장 출신’으로 신분을 세탁해 유통된 사례도 있었다. 업계에서는 이를 ‘택갈이’라고 부른다. 이는 불법 번식장의 존재를 은폐하고, 소비자들을 기만하는 행위로, 솜방망이 처벌의 반복이 낳은 또 다른 폐해라 할 수 있다.

■'한국형 루시법' 통할까…해외는 이미 '동물권 강화'
이처럼 만연한 불법 번식과 솜방망이 처벌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지난 11월 국회에서는 이른바 ‘한국형 루시법’이 발의됐다. 이 법안은 ▲경매 방식 또는 투기 목적의 동물 거래를 금지하고, ▲생산업자가 구매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경우를 제외한 판매의 금지 월령 기준을 기존 2개월에서 6개월로 상향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영국의 한 불법 번식장에서 고통 받던 '루시'의 이름을 따 만들어진 '루시법'을 국내 번식 및 유통 환경에 맞게 보완한 것으로,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법안이 발의된 바 있다.

2023년 8월 3일 동물권행동 카라 등 시민단체들이 대전 유성구의 한 경매장 앞에서 반려 동물 경매장 폐쇄를 요구하며 최근 구조된 강아지 사진이 담긴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23년 8월 3일 동물권행동 카라 등 시민단체들이 대전 유성구의 한 경매장 앞에서 반려 동물 경매장 폐쇄를 요구하며 최근 구조된 강아지 사진이 담긴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23년 5월 전북 진안군 등에 따르면 동물생산업 허가없이 개 번식장을 운영한 A씨(36)가 합동 단속에 적발됐다. /뉴스1
2023년 5월 전북 진안군 등에 따르면 동물생산업 허가없이 개 번식장을 운영한 A씨(36)가 합동 단속에 적발됐다. /뉴스1

불법 번식장서 구조된 안타까운 강아지. 사진=연합뉴스
불법 번식장서 구조된 안타까운 강아지. 사진=연합뉴스

■반려동물 위해 '징역형·얼굴공개'까지…우리는?
해외 선진국들은 이미 ‘규제’를 넘어 ‘금지’로 나아가며 동물권 보호에 있어 우리보다 훨씬 앞선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는 한국 사회가 ‘벌금 내면 그만’이라는 비난을 받는 솜방망이 처벌에서 벗어나, 더욱 강력하고 실질적인 법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시사한다. 미국은 2019년 제정된 ‘PACT법(Preventing Animal Cruelty and Torture Act)’에 따라 동물 학대를 연방 범죄로 규정하고 최대 7년의 징역형을 부과한다.

영국은 2021년 동물복지법을 개정해 학대범에 대한 최고 형량을 기존 6개월에서 5년으로 10배 상향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프랑스는 2024년 1월 부터 동물학대 방지법을 시행, 펫숍에서의 강아지와 고양이의 ‘상업적 판매’를 전면 금지했다. 입양을 원하는 사람은 전문 브리더를 직접 찾아가거나 보호소를 통해서만 가능하도록 하여, 생명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행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또 학대 시 최대 5년 징역과 7만5000유로(약 1억 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처벌 강화안도 함께 시행 중이다.

아시아권에서는 대만의 행보가 특히 파격적이다. 대만은 2017년 아시아 최초로 개·고양이 식용을 법으로 금지했다. 여기에 동물 학대범의 실제 이름과 사진을 대중에게 공개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등 강력한 사회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학대 행위자는 최대 2년의 징역형과 함께 거액의 벌금을 물게 되며, 평생 반려동물을 키울 수 없도록 하는 등 재범 방지를 위한 강력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유럽 국가들은 법의 근간인 민법과 헌법을 뜯어고치는 개혁적인 접근을 통해 동물권 보호의 토대를 마련했다. 오스트리아는 1988년 세계 최초로 민법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항을 명시하여 동물을 생명체로 인정하는 법적 지위를 부여했다. 독일은 2002년 헌법에 국가의 동물 보호 의무를 새겨넣음으로써 동물 보호를 국가의 중요한 책무로 격상시켰다. 스위스는 한발 더 나아가 기니피그나 앵무새 같은 ‘사회적 동물’을 한 마리만 키우는 것을 학대로 규정하고 법으로 금지하는 등, 동물의 습성까지 고려한 섬세한 법망을 갖추고 있다.

뱐려동물 양육의 긍정적 효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뱐려동물 양육의 긍정적 효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뱐려동물 양육만족도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뱐려동물 양육만족도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사고 팔고 '소비'가 아닌 진짜 가족의 개념으로
영국의 수의사이자 ‘루시법(Lucy's Law)’ 제정을 이끈 마크 아브라함(Marc Abraham)은 보다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그는 루시법 제정 논의가 한창이던 2018년 5월 영국 의회 청문회 증언대에 서서 "정부가 번식장의 뜬장 규격을 재는 동안에도 강아지들은 죽어가고 있다"며 기존 허가제의 실패를 공식화했다. 그의 주장은 명확했다. 학대가 발생하는 근본 원인은 ‘감시의 부재’가 아니라 ‘은폐된 구조’에 있다는 것이다. 솜방망이 처벌과 불투명한 유통 구조가 불법 번식장의 존재를 가능하게 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는 루시법 통과가 동물권 강화를 위한 첫걸음이라고 강조한다. 카라의 김영환 정책국장은 경매장 폐쇄 조치 등으로 "강아지들이 부모 견으로부터 사람과 함께 공존하는 사회화 같은 것을 환경적으로 생활적으로나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선진국형으로 가야한다"고 덧붙였다.

동물자유연대 조희경 대표는 생산자의 윤리 의식을 강화하고 자격 검증을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외국은 ‘브리더’라는 개념이 있다. 강아지를 1년에 두 번씩 1년에 한 번씩 새끼를 낳게 하는 게 아니라 평생 한 두 번 정도 해야 하고, 강아지도 유전자 관리해가면서 정말 넓은 마당에서 살며 사회화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브리더'라고 부를 만한 생산자 자격 검증이 강화돼야 된다"고 강조했다.

hsg@fnnews.com 한승곤 김희선 안가을 김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