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근경색 응급시술도 삭감…“서류가 먼저인 서글픈 현실”
재협착 90%·쇼크 동반 중증환자도 ‘중도 협착’ 판단 “삭감
‘진료 위축 우려’ 심장내과 “골든타임 시술, 삭감 제외해야”
재협착 90%·쇼크 동반 중증환자도 ‘중도 협착’ 판단 “삭감
‘진료 위축 우려’ 심장내과 “골든타임 시술, 삭감 제외해야”
[파이낸셜뉴스] 심근경색·협심증 등 심뇌혈관 응급환자의 스텐트 시술이 진료비 삭감 대상에 오르면서 현장 심장내과 의사들이 “골든타임보다 서류를 먼저 떠올려야 하는 현실”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응급실로 실려 온 초고위험 환자에게 생명을 구하기 위한 시술을 시행하고도 수개월 뒤 수백만원대 진료비가 삭감되자 의료진은 “이런 구조라면 누구도 적극적으로 시술하기 어렵다”며 개선을 촉구하고 나섰다.
10일 부산지역 의료계 등에 따르면 부산에 사는 A씨(71)는 지난 11월 흉통과 호흡곤란으로 지역 병원 심장내과를 찾았다.그는 관상동맥 조영술 결과, 과거에 스텐트를 넣었던 좌회선지(LCX) 말단 부위에서 약 90%에 이르는 재협착이 확인됐고, 분지부·석회화 병변까지 동반된 고위험 소견이어서 해당병원 의료진은 즉시 스텐트 삽입 및 확장술을 시행했다.그러나 건강보험 심사기관은 “최대 협착률 50% 미만의 경미한 병변”이라고 판단해 542만여 원의 진료비를 삭감했고, 의료진은 “의무기록과 전혀 다른 판단”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B씨(81)는 지난 1월 새벽 극심한 흉통으로 119 구급대를 통해 집 근처 종합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우관상동맥이 혈전으로 거의 막히고, LCX 70% 협착과 혈관내 초음파상 92% 중증 협착, 새로 발생한 좌각차단, 심근효소 1,400대 상승, 쇼크와 폐부종, 좌심실 박출률 23% 등 다발성 고위험 소견을 보여 의료진은 긴급 스텐트 2개를 삽입했다. 하지만 보험심사기관은 “중등도 협착에 불과하고, SPECT 등 기능검사로 허혈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300만여 원의 진료비를 삭감해 “임상적 중증도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 결정”이라는 비판을 낳고 있다.
의료계는 특히 심근경색·심부전 환자의 관상동맥 중재술이 수 분 단위로 생사가 갈리는 대표적 골든타임 질환이라는 점을 강조하고는 “혈관 협착률이 몇 퍼센트인지, 어떤 기능검사를 했는지” 등 사후 삭감 기준이 우선하면서 의료진이 ‘스텐트를 넣지 말까’, ‘응급실 입원을 받지 말까’를 먼저 고민하게 되는 구조가 대한민국의 서글픈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일선 심장내과 전문의들은 “진료비 삭감을 두려워해 응급시술을 망설이게 되면 피해는 결국 환자에게 돌아간다”고 입을 모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논란의 배경에 “기능검사 우선”이라는 경직된 심사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건강보험심사 자문의사 등은 중등도 협착 병변의 경우 SPECT 같은 기능검사를 통해 허혈을 입증해야 급성 심근경색의 원인 병변으로 인정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임상 현장에서는 쇼크·폐부종·호흡부전 환자에게 시간과 인력이 소요되는 검사를 선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거나 위험하다는 것이다. 특히 기존 스텐트 내 재협착이나 혈전 동반 폐색, 다혈관 질환 등에서는 혈관조영·혈관내초음파와 임상 증상, 심전도, 심근표지자 변화만으로도 시술 적응증이 충분히 성립한다고 의료계는 주장한다.
대한순환기학회와 대한심장학회 등은 “급성 심근경색 등 심뇌혈관 초응급 환자에 대한 경피적 관상동맥 중재술과 스텐트 삽입술은 원칙적으로 삭감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부당청구가 의심되는 극히 예외적인 사례에 한해 사후 심사를 하고, 그 외에는 골든타임 시술을 적극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심뇌혈관 질환 조기치료와 응급의료 체계 강화를 강조하고 있는 만큼 심평원의 심사·삭감 기준도 응급 치료의 특수성을 반영하도록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단법인 대한종합병원협회 등은 “심근경색·뇌졸중 등 시간 의존성이 큰 응급질환에 대해 ‘포지티브 리스트형 급여 보장’을 도입하고, 심사·평가 과정에서 임상의 재량을 넓히는 한편 삭감 시 구체적인 의학적 근거와 설명 의무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포지티브 리스트형 급여 보장(Positive List System)’은 건강보험에서 약제나 의료기술을 일단 모두 보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임상적 유용성과 비용효과성이 입증된 항목만 ‘선정해서’ 급여로 인정하는 제도로, “증거와 가치가 있는 것만 건강보험이 책임진다”는 보장 구조인 셈이다.
대한종합병원협회는 또 현장 심장내과 전문의가 참여하는 상설 심사자문위원회를 운영해, 문서 중심 심사가 아닌 임상 현실에 기반한 판단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도 응급실 침대 앞에서 의사가 진료비 삭감부터 떠올려야 하는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A씨나 B씨 사례와 같은 모순은 반복될 수밖에 없으며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것이 의료계 지적이다.
lich0929@fnnews.com 변옥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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