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경찰 공상 입증 '개인몫'인 韓…해외는 회복·복귀까지 국가 지원

뉴스1

입력 2025.12.11 06:00

수정 2025.12.11 06:00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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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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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매일 경찰관 5명이 다칩니다. 목숨을 잃는 이들은 매년 10명이 넘습니다. 공상·순직 승인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치안현장 최일선에서 시민들을 지키지만, 일을 하다 다친 경찰관은 정작 국가로부터 온전히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뉴스1>은 창경 80주년을 맞아 공무 수행 중 다치거나 숨진 경찰관과 유족들을 만나 그 현실을 들여다보고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해결책을 모색해봤습니다.

그 결과를 모두 7차례에 걸쳐 기사로 내보냅니다.

(서울=뉴스1) 강서연 박응진 김종훈 기자 = 미국과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은 근무 중 부상한 경찰관의 치료와 복귀를 국가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비 전액 지원은 물론 경량 업무 배치, 유급 재활휴가 등 체계적인 제도도 갖추고 있다.

신체적 부상뿐만 아니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 정신적 상해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상담과 치료를 보장한다. 근무 중 부상이나 질병을 얻는 경찰관이 당장의 치료비 납부로 인해 생계의 어려움을 겪고, 치료비 및 재활 지원의 미비로 온전히 회복하지 못한 채 현장에 복귀하는 사례도 있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모습이다.

미국, '가벼운 업무' 복귀 지원…프랑스는 치료 중 급여 100% 보장

11일 학계 등에 따르면 주요 선진국들은 공무상 부상을 입은 경찰관에 대해 의료비는 물론 급여와 복귀까지 포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주(州)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단순 부상에 대한 물리치료·수술 지원과 함께 PTSD 등 정신적 상해도 보상한다.

지난 6월 김학주 동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경찰관의 정신건강 지원정책에 대한 비교 연구'에 따르면, 미국은 연방·주·지방정부와 민간단체가 협력해 다양한 정신건강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현직 경찰뿐만 아니라 그 가족·퇴직자까지 지원 대상에 포함하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정신건강 문제 해결을 위한 조기 개입과 예방적 접근을 강조한다.

일부 주에선 경량 업무 제도도 활성화돼 있다.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업무를 부여해 급여 지급을 유지하면서 현장 복귀를 돕는 방식이다. 텍사스주는 임시 장애 상태인 경찰관이 회복 중일 경우 가능하면 경량 업무로 복귀할 수 있도록 허용하며, 이런 배치는 최소 1년간 유지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일정 기간 급여를 보장하는 제도도 활발하다. 캘리포니아주와 일리노이주 시카고 등은 직무 중 부상으로 근무가 불가능한 경찰관에게 최대 1년간 급여 전액을 지급한다.

프랑스는 부상한 경찰관의 의료비 전액을 공공 경비로 부담한다. 치료 기간에도 급여가 100% 지급돼 생계 걱정 없이 회복에 전념할 수 있다. 재활을 통한 사회 복귀도 중요시된다. 직업재활훈련과 의료·심리 회복을 포괄하는 시스템을 운영하며, 기존 업무로 복귀가 어려운 경우 다른 직무로의 전환을 돕는 재교육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특히 프랑스 경찰과 내무부 공무원을 위한 사회복지협회 'ANAS'(Association Nationale d'Action Sociale)는 경찰관을 포함한 공무원에게 사회·심리적 지원과 복지 혜택을 제공하며, 경찰직 공무원에게 특화된 의료와 심리재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선진국, 과학적 연구로 '직무 위험' 입증도 활발

우리나라에서도 경찰이 직업 특성상 반복되는 밤샘 근무, 높은 스트레스, 폭력 상황 등 각종 위험에 노출돼 여러 건강 문제에 취약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야간·교대 근무 △라디오파 △자외선 △초미세먼지 △디젤엔진연소물질 △다환방향족탄화수소 등 다양한 발암요인에 노출되기 쉬워 암 발생률이 높다.

이에 선진국들은 경찰 업무와 건강 문제, 특히 암 발병률 간 상관관계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려는 연구를 꾸준히 진행해 왔다. 영국은 2004년부터 5만 명 이상의 경찰관을 대상으로 코호트(특정 기간 공통된 특성이나 경험을 공유하는 집단) 연구를 수행, 라디오파와 테트라(TETRA) 무전기 등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2011년 미국 연구에선 경찰관이 일반 근로자에 비해 비호지킨림프종(악성림프종) 발병률이 3.34배, 뇌종양 발병률은 2.92배 높다는 분석이 나왔다. 2021년 캐나다 연구에 따르면, 일반 근로자와 비교했을 때 경찰관의 전립선암 발생률은 1.47배, 대장암은 1.39배, 악성흑색종(멜라닌 세포의 악성화로 생기는 피부암)은 2.27배 높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정신건강 분야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보고됐다. 김학주 교수 논문에 인용된 2023년 대만 경찰관 대상 연구엔 가정폭력 대응 등 고위험 업무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경찰관의 경우 누적된 2차 외상 경험으로 인해 심각한 심리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단 내용이 담겼다.

'공상은 개인 문제' 인식 여전…"존중 기반 회복 프로그램 마련 필요"

미국, 프랑스 등에 비해 한국은 여전히 공무상요양(공상) 인정 범위가 좁고 업무 관련성을 서류로 직접 증명해야 하는 만큼 높은 수준의 입증 책임이 경찰관 개인에게 주어진다. 해외 선진국들과 비교해 경량 업무나 재활 등 시스템도 미흡해 부상 경찰관이 복직 대신 퇴직을 선택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경찰관에 대한 국내외의 인식 차이도 경찰 공상 지원 제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프랑스 등은 경찰관을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핵심 인적자산으로서 보호하는 반면, 한국은 여전히 공상을 경찰관 개인의 문제로 보는 인식이 강하다는 것이다.

경찰 공상을 공공안전을 위한 직무 수행 중에 발생한 사회적 피해로 인식하고 그 지원을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위한 필수적인 제도로 여기기 위한 인식의 전환이 요구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김영식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프랑스는 기본적으로 경찰과 소방 등 공권력을 예우하고 존중한다"며 "국가 차원에서 재원을 확보하고, 복지 재단 등을 통해 공상 경찰관과 유족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학주 교수는 "우리나라는 공상 인정 과정에서 직무 관련성을 경찰관 개인이 입증해야 하는 부담이 크고, 절차가 복잡하며 장기화하는 경향이 있다"며 "해외에 비해 PTSD 등 인정 범위도 좁고, 보상에 비해 실질적인 회복을 위한 심리 재활 지원 체계도 미흡하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유럽의 경우 단순 보상보다 회복과 복귀를 중시해, 이를 위한 프로그램이 잘 마련돼 있다"면서 "보상도 중요하지만, 회복 프로그램이 있어야 위험 직종 종사자들이 안심하고 근무할 수 있다"고 재적응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