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황진중 기자 = 정부가 효능과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있는 고가 알츠하이머 신약에는 관대하지만, 20년 넘게 임상 현장에서 검증된 '콜린알포세레이트'(콜린 제제)에는 엄격한 잣대를 두고 있어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뇌 위축 억제 효과 등 긍정적인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음에도 재정 효율화 등을 이유로 보험 급여 축소와 환수 조치 등이 논의되면서 제약바이오 업계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중앙약심위 자문 없이 신속 허가…"진단 위한 특혜" 지적
11일 업계에 따르면 치매 예방약으로 알려진 경도인지장애 치료제 '콜린 제제'에 대한 임상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임상에서 긍정적인 효능이 확인되지 않으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재평가 기간 콜린 제제를 판매한 금액의 20%를 건강보험공단에 반환해야 한다.
그동안 콜린 제제는 20년 넘게 국내 의료현장에서 안정적으로 처방돼 왔다.
2018년에는 식약처가 다시 품목허가를 갱신했고, 2020년 급여 적정성 재평가에서도 콜린은 급여 유지 결정을 받았다. 정부가 여러 차례의 공식 판단을 통해 의료현장에서 필요하다고 인정해온 약이라는 의미다.
치매·MCI 환자가 증가하며 콜린 처방이 늘자,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등을 이유로 본인부담률을 80%까지 높이는 선별급여를 시행했다.
업계는 이러한 조치를 뒷받침할 새로운 근거가 부족하다고 본다. 정부의 주장은 초기 품목허가, 2018년 허가 갱신, 2020년 급여 재평가 당시에 논의된 내용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책 판단만 돌연 달라진 셈이다.
반면 효과성과 안전성 논란이 이어져 온 레캠비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달랐다. 이 약은 3상 임상에서 '인지·기능 저하 27% 지연'이라는 효능이 핵심 근거로 제시됐다. 다만 이 같은 수치는 상대적 통계일 뿐 절대적 개선 폭은 작아 실제 임상적 의미는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국제 학계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효과에 대한 논란이 채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안전성 우려 역시 지적됐다. 3상에서는 환자의 12.6%에서 뇌부종·뇌출혈과 같은 중대한 이상반응이 발생했다. 초기 개발 과정에서는 뇌출혈 사망 사례 등이 보고됐다. 이러한 이유로 유럽과 호주는 안전성과 임상적 유용성을 근거로 허가를 거부한 바 있다.
그럼에도 레켐비는 국내에서 별도의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자문 없이 허가가 신속하게 이뤄졌다. 앞선 국정감사에서는 '고가 진단 생태계를 위한 특혜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후 실제 사용 단계에서도 우려는 이어졌다. 레켐비는 시판 1년 만에 부작용 보고가 135건 확인됐다. 이 중 9%는 중대 사례로 분류됐다.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논란이 여전한 신약에는 문턱을 낮추고, 수십 년간 안정적으로 사용돼 온 기존 약에는 오히려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정책 기조는 기준을 알 수 없다는 비판을 불러오고 있다"고 말했다.
콜린, '뇌 위축 억제' 근거 축적 중…환수 규모 부담
콜린의 임상적 효용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최근 들어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 이탈리아 아멘타 교수 연구팀은 올해 MRI 분석을 통해 콜린이 뇌 위축 진행을 억제하는 효과를 확인했다.
원주세브란스병원 연구에서는 콜린 복용군의 치매 전환 위험이 유의하게 낮아지는 결과가 확인됐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연구를 통해 경도인지장애 환자에서 콜린의 인지기능 유지·개선 효과를 보고했다.
앞서 2014년에는 알츠하이머 환자 100명을 2년간 추적한 임상에서 인지기능 개선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바 있다.
임상 근거가 쌓이고 있음에도 정부는 선별급여 시행과 동시에 임상 재평가를 명령했다. 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오면 요양급여 청구액의 20%를 환수하겠다는 방침까지 내놓았다.
환수액 규모는 정책의 적정성 논란을 키우는 핵심 요소다. 정부는 제약사와의 계약을 통해 요양급여 청구액의 20%를 환수하도록 설계했다.
업계는 이에 대해 의약품 산업의 경제 구조를 고려할 때 과도한 수준이라고 본다. 제약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7% 수준으로 전해진다. 요양급여액에는 부가세와 유통비가 포함돼 있어 제약사가 부담해야 하는 실질 환수액은 매출의 약 30% 수준까지 커질 수 있다.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환수 결정 시 제약바이오 기업 평균 영업이익의 수배를 웃도는 환수 부담이 발생하는 셈"이라면서 "현행 제약바이오 시장 구조에서는 정상적인 영업활동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급여 약제 접근성 하락 시 환자 부담 증가 우려
콜린은 선별급여 시행 이후 최대 본인부담률인 80%를 적용하더라도 월 2만 원대 수준으로 복용할 수 있는 경제적인 약으로 구분된다.
반면 레캠비는 연간 약값이 약 2000만 원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반복 MRI 등 고가 진단비까지 더해지면 환자 부담은 훨씬 커질 수 있다.
업계에서는 논란이 많은 고가 신약에는 문을 넓히고,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오랜 기간 안전성과 효과가 확인된 기존 약에는 장벽을 높이는 기형적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료계에서는 콜린과 같은 급여 약제에 대한 환자 접근성이 낮아지면 효과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건강기능식품으로 환자들이 이동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재정 효율화를 명분으로 급여를 축소하면 의료 시스템 밖에서 관리되지 않는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면서 "검증되지 않은 제품에 국민이 스스로 비용을 지출하는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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