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기고

진심을 지켜보는 사람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11 10:15

수정 2025.12.11 10:15

박용후 / 관점 디자이너
박용후 / 관점 디자이너

[파이낸셜뉴스] 우리가 살아가며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결국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작고 큰 도움이 필요하다. “혼자 다 했다”고 떠드는 이들도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에게도 보이지 않는 여러 도움의 손길들이 있었다. 누군가의 조언, 기회를 준 한마디, 마음을 다해 밀어준 동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관계 맺기를 ‘내 편 만들기’로 이해한다. 나를 도울 사람을 찾고, 때로는 계산을 앞세워 유리한 연결을 만들기도 한다.

물론 이런 전략이 필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를 간과한다. 나를 끌어줄 사람을 만드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나를 끌어내릴 사람을 만들지 않는 일’이다.

삶을 돌아보면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 그들을 통해 만들어진 서운한 장면이 적지 않다. 도움을 준 상대방이 마치 그런 도움을 받은 적 없다는 듯 행동하거나, 필요할 때만 연락했다가 상황이 지나면 모른 척하는 경우가 그렇다. 더 안타까운 건 그렇게 받은 마음을 잊고 오히려 함부로 대하는 태도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다시 도와줄 마음이 싹 사라진다. 심한 경우 그 사람의 일이 망하기를 바라게 되기도 한다. 관계를 손익계산으로만 따지는 순간 상대도 그 마음을 느끼고 비슷한 방식으로 반응한다. 이해관계가 사라지면 관계도 쉽게 무너진다.

반대로 좋은 인간관계는 평소의 작은 순간에 드러난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문득 그 사람이 떠올라 전화를 걸었을 때 반갑게 받아주는 관계, 이익을 계산하기보다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 때문에 번개 모임에 나오는 모습, 누군가의 소소한 부탁에도 성의를 다해 돕는 태도처럼 말이다. 이런 관계는 이해타산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배달의민족 창업자인 김봉진 의장과 나눈 따뜻한 대화가 오래 가슴에 남아 있다. 그는 자신이 투자한 백여 개 기업 중 절반 이상이 실패했다고 말했다. 숫자만 보면 실패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표정에는 아쉬움과 동시에 따뜻함이 있었다. 그는 투자 성공 여부보다 관계가 깨져버린 몇몇 경우를 더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진심으로 보낸 마음을 당사자가 제대로 못 받아줘서 서운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 그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들은 따로 있더라고요. 바로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았던 사람들이었어요.”

그 말은 단순한 경험담이 아니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결국 관계의 질과 결을 만든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진심은 필요할 때 표출되는 기술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드러나는 습관에 가깝다. 이해관계는 상황이 바뀌면 흔들리지만, 진심은 시간이 지나도 마음에 남는다. 누군가의 진심을 알아본다는 것은 그 사람의 겉모습보다 그의 태도와 마음, 그리고 그가 열어 갈 가능성을 보는 일이다. 그래서 진심으로 관계를 쌓는 사람은 길게 보면 더 많은 신뢰를 얻는다.

우리가 인간관계를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는 사실 복잡해서가 아니다. 계산이 끼어드는 순간 관계가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상대가 나에게 어떤 이익을 줄 수 있는지 먼저 따지면 그 관계는 이미 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상대를 한 사람의 삶으로, 그리고 한 인간으로 바라보고 그 사람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대하면 관계는 훨씬 단단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적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은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 소소한 배려에서 시작된다. 작은 약속을 지키고, 작은 배려에도 항상 고마움을 표현하고, 누군가의 노력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일들이다. 이런 태도가 쌓이면 굳이 ‘내 편’을 만들지 않아도 자연스레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내 주변을 가득 둘러싸게 된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도움이 필요하고 때로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게 된다. 그 흐름 속에서 남는 것은 ‘계산’이 아니라 ‘태도’다. 결국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일과 적을 만들지 않는 삶의 방식이다. 이 두 가지는 결국 하나로 이어진다.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면 적이 생기기 어렵고, 적을 만들지 않으려는 마음은 관계를 더욱 따뜻하게 만든다. 이해관계는 ‘순간’을 움직이지만 진심은 ‘사람’을 움직인다.
그리고 그 진심을 기억하는 이들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열어준다.

박용후 / 관점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