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뉴스1) 최소망 유민주 기자 =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대북제재 및 인권 문제와 관련한 압박을 강화하는 것이 대북 협상력을 높일 것이라는 미국의 입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비무장지대(DMZ) 출입 문제로 유엔군사령부와 엇박자를 낸 데 이어 케빈 김 주한미국대사대리가 밝힌 미국의 현 대북 기조와 결이 180도 다른 입장을 밝힌 것이다.
"북한은 목에 칼 들이대면 대화 안 해"…케빈 김·동맹파에 '돌직구'
정 장관은 지난 10일 경기도 고양시 소노캄고양에서 열린 통일부 출입기자단 워크숍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대북제재를 강화하고 인권 문제를 강력히 제기해서 대북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도 있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봐야 한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정 장관은 "지난 20년의 북핵 협상 역사 중 네 번의 대화·협상 국면과 네 번의 제재·압박·고립 전략 국면이 있었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는 사실 제재·압박·고립 국면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북한 당국자들은 '자존심은 목숨보다 귀하다'라고 말한다. 목에 칼을 들이대면서 대화하자면 '절대로 응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북한의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실효성 있는 평화 조치를 위해 남북관계의 역사적 맥락을 살피면서 북한이 무엇을 위협으로 느끼는지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케빈 김 주한미국대사대리는 지난달 25일 부임 인사차 정 장관과 만나 "압도적 우위에서 북한과 협상하고 싶다"라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전하며 대북제재를 유지하고 인권 문제를 압박하는 것이 협상력 제고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정 장관의 이날 발언은 이같은 미국의 기조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 통일부의 입장임을 분명하게 밝히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론 정부 내에서 미국 등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춰 대북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이른바 '동맹파'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도 읽힌다. 정 장관은 남북 양자 관계를 중심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자주파'로 분류된다.
정 장관은 지난 3일엔 이재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주관으로 열린 '비무장지대(DMZ)의 보전과 평화적 이용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입법공청회'에 참석해 "최근 유엔군사령부가 국가안보실 1차장의 DMZ 내 백마고지 유해 발굴 현장 방문을 불허하고, 통일부 장관의 대성동 마을 방문도 불허한 적이 있다. 이건 주권국가로서 체통이 말이 아닌 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유엔군사령관을 주한미군사령관이 겸하고 있고, 과거 문재인 정부 때도 정부와 유엔사의 갈등이 있었다는 점에서 정 장관이 일방적 유화책을 반대하는 미국의 대북 기조에 공개적인 불만을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정 장관은 한미 연합훈련의 중단 혹은 수위 조절에 대해서는 "연합훈련의 중지는 1990년대엔 북핵 협상 진전에 큰 역할을 했고, 2018년에도 '한반도의 봄'을 불러왔다. 연합훈련은 한반도 평화라는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일 뿐 (훈련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라며 역시 '동맹파'와 결이 다른 입장을 밝혔다.
앞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7일 '이재명 정부 6개월 성과 보고 기자간담회'에서 한미 연합훈련의 조정·축소를 "한반도 비핵화 추진을 위한 카드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라고 밝힌 바 있다.
"내년 4월이 한반도 평화 분수령…'핵 없는 한반도'가 목표"
정 장관은 다만 이날 대북정책과 관련한 정부 내 이견에 대해 "국방부·외교부·통일부의 존재 이유는 다르다"면서 "이것을 통합·조율하는 것이 능력이며, 그 과정에 다소 미흡함이 있었다면 모두의 책임"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국가안보실장이 상임위원장을 맡고 안보실 1·2·3차장과 외교·통일·국방부 장관, 국가정보원장이 의견을 개진하는 현재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구조에 대해 "좀 이상하다. 행정법 체계상 문제가 있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특히 이 문제에 대해 이 대통령도 인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자주파 진영의 남북관계 원로 인사들이 지난 3일 좌담회에서 현재의 NSC 체제가 과거 보수 성향의 정부 때 국가안보실장이 '안보실을 쥐고 흔들기 위해 만들어진 체제'라고 비판하며 통일부 장관이 NSC 상임위원장을 맡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을 낸 것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 장관은 이재명 정부가 미국을 '피스메이커'(Peacemaker)로 내세우며 '페이스메이커'(Pacemaker) 역할을 자처했지만, 그 역할이 아직 두드러지지 않았다면서 "그럼에도 무너진 신뢰를 쌓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내년부턴 신발끈을 조여 매고 역할을 하겠다"라고 말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예정된 내년 4월이 "평화로 나아가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면서 "대화 여건을 조성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핵 없는 한반도'를 장기적 목표로 견지하면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기 위한 대화로 국면을 전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 장관은 정부의 대북 조치 중 하나로 검토됐던 '9·19 남북군사합의'의 복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전략적 고려사항 중 하나"라면서 "적절한 시기를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장관은 남북의 '평화적 두 국가' 기조에 대해 "평화적 두 국가론은 곧 '평화 공존 두 국가론'"이라면서 "국민적 공감대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통일부가 지난 2일부터 8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남북한이 전쟁 없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 통일보다 더 중요하다'에 국민의 79.4%가 동의한다고 응답한 것을 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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