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K 서울서 개인전 개막
BTS RM 소장작 포함 회화 32점 전시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전시장은 밤의 숨결이 머문 듯 적막하다.
검은 벽, 검은 먹빛, 검은 그림자가 서로를 흡수하며 관객을 깊숙한 내면의 굴로 데려간다.
전시장 중앙에는 높이 5미터의 ‘고사관수도’가 홀로 앉아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 시선은 묵언의 고백처럼 관람객을 붙잡고, 7미터 길이의 병풍 작업 ‘마음을 담아’는 먹빛의 결을 따라 호흡을 천천히 가라앉힌다. 잔잔한 수면 위에 반사되는 빛, 그 위에 떠 있는 두 인물은 감정의 표면을 더듬는 또 다른 자화상처럼 보인다.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무표정하다. 나이도, 성별도, 감정도 지워져 있다.
무나씨는 특징을 삭제함으로써, 오히려 시선·몸짓·거리감만으로 감정의 결을 읽게 하는 전략을 택한다.
스페이스K 서울이 12일 개막한 무나씨(45) 개인전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The Season We Fade Away)’는 관계와 감정의 사유를 장엄한 장면으로 확장한 전시다.
작가는 먹과 아크릴을 한지 위에 켜켜이 쌓아 올려 감정이 흔들리고 사라지고 다시 드러나는 순간들을 조용한 물결처럼 포착한다.
“붓의 획은 마음의 수면에 남는 파문”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전통 필묵을 활용한 화면은 현대적 감성과 결합하며, 무표정한 인물들은 오히려 화면 전체를 감정으로 채운다. 작품 속 물·돌·나무 같은 자연물은 감정을 드러내는 은유 장치로 등장하며, 특히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물’은 감정을 비추고 흘려보내는 매개체이자 나를 마주하는 거울로 기능한다.
이번 전시의 핵심은 관계에서 태어나는 감정의 균형이다.
‘찰랑’(2024)에서는 물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두 인물이 등장한다. 출렁이는 물결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미세한 심리적 동요의 은유이며, 작가는 그 흔들림을 억누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또한 작가의 화면에는 늘 ‘둘’이 등장한다. 스스로 바라보는 ‘나’와 타인의 시선 속에서 드러나는 ‘나’ 사이의 경계를 오래 고민해 온 작가는, 두 존재를 한 화면에 나란히 놓음으로써 충돌하던 내면이 화해를 모색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신작 ‘우리가 지워지는 계절에’(2025)는 한겨울 눈 속에 엎드린 인물과 그를 감싸는 또 다른 인물을 보여주며 고립과 유대의 정서를 동시에 불러낸다.
이번 전시에는 BTS RM 소장작품인 ‘영원의 소리’를 포함해 총 32점이 소개된다. 배우 소유진이 오디오 가이드에 재능 기부로 참여해 감정의 몰입을 돕는다.
스페이스K는 “관계의 떨림을 지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고요한 경험을 관객이 만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2026년 2월 13일까지.
◆ 화가 무나씨는?
본명은 김대현으로 예명인 ‘무나’는 불교의 ‘무아(無我)’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홍익대학교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한국화의 기법을 토대로 마음·관계·내면의 파동을 탐구해 왔다.
2020년 현대미술회관(부산)을 시작으로 2024년 파리 갤러리 바지우(Galerie Vazieux), 2022년 홍콩 갤러리 어센드(Gallery Ascend)에서 개인전을 열며 국제 활동 폭을 넓혔다.
또한 포스코미술관(2022), 디뮤지엄(2019), 경북대학교미술관(2017) 등에서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2025년 키아프 하이라이트 세미파이널에 선정됐다. 2013·2014년에는 영국 YCN 프로페셔널 어워즈(The YCN Professional Awards) 일러스트레이션 부문을 연속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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