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칩 'H200'의 중국 수출을 허용했지만 국내 반도체 업계는 신중한 표정이다. '반도체 굴기'에 박차를 가하는 중국 정부가 H200의 수입제한 카드에 맞서 시장 수요가 아직 불투명하다. 되레 미국이 H200 매출에 25% 관세를 걸면서 고대역폭메모리(HBM) 단가 인하 압박만 커질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 "H200 중국 수출 허용"…中 "수입 제한 검토"
11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엔비디아 H200 칩의 중국향(向) 출하를 허용했다고 밝혔다. H200은 대만 TSMC에서 생산되며 미국의 안보 심사를 거쳐 수출된다.
H200은 기존 대중국 수출용 제품인 'H20'보다는 성능이 6배 이상 우월하지만, 엔비디아의 최첨단 칩인 '블랙웰'보다는 사양이 다소 낮은 제품이다. H200에는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의 HBM3E 8단 제품이 탑재된다.
미국이 엔비디아 AI칩 수출 빗장을 푼 배경에는 '중국 길들이기' 전략이 깔렸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해석이다. 고강도 수출 규제가 오히려 중국의 '반도체 자립'을 자극했다는 비판이 커지자, 차라리 성능을 제한한 중저사양 AI 칩을 공급해 '기술 종속'을 유지하려는 계산이란 분석이다.
중국도 H200 수입을 제한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날 중국 정부는 자국 기업의 H200 접근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중국 기업들이 엔비디아 칩 구매를 희망할 경우, 그 필요성과 중국산 대체제로 충족할 수 없는 사유를 제출토록 하는 '부분 허용' 방안이 거론된다. 사실상 화웨이 중심의 자국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中 시장 열렸지만 셈법은 복잡…HBM 단가 인하 우려도
H200의 수출 재개 소식에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셈법'은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 엔비디아에 HBM을 납품 중인 양사 입장에선 중국 시장이 다시 뚫린 점은 분명 호재다. 다만 H200의 실수요가 불투명해 '유의미한 매출'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인 데다, HBM 납품 단가만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특히 화웨이의 기술 자립 속도가 예상보다 빠른 점도 변수다.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백악관은 최근 화웨이의 어센드 기반 시스템 '클라우드매트릭스 384'가 엔비디아의 블랙웰 기반 시스템과 비슷한 성능에 도달했으며, 화웨이가 내년에 어센드 칩을 수백만 개 생산할 수 있을 것이란 내부 평가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중국 빅테크 기업들이 H200 칩 구매에 관심을 보였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중국의 수입 규제가) 사실이라면 실제 구매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며 "화웨이의 칩 기술이 (블랙웰 수준만큼) 올라왔다면 중국 기업들이 당국의 심기를 거스르면서까지 (H200 구매에) 적극적일지 의문"이라고 했다.
25% 관세가 HBM 가격 인하 압박으로 전가될 가능성도 작지 않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고객사(엔비디아)는 HBM을 주문할 때 완성품(AI칩)을 어디에 판매할지 고지하지 않는다"며 "중국향 H200에 수출세가 붙는다는 이유를 들어 HBM 단가 조정을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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