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건강

"은행잎이 치매에 좋다 했는데" 건기식 의존하다 골든타임 놓친다 [Weekend 헬스]

강중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12 04:00

수정 2025.12.12 04:00

기억력 개선 돕는 건강기능식품 봇물
오메가3 등 특정성분으로 고령층 유혹
가장 오해 많은 '은행잎추출물' 제품
병원 의약품과 함량·임상근거 큰 차이
시중에 파는 상품 '치료제' 아닌 '식품'
초기인지장애 나타나면 바로 병원가야
"은행잎이 치매에 좋다 했는데" 건기식 의존하다 골든타임 놓친다 [Weekend 헬스]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치매 예방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포털 검색창에는 '기억력', '인지능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는 건강기능식품 광고가 넘쳐난다. 포스파티딜세린, 오메가3, 은행잎추출물 등 특정 성분을 앞세운 제품들은 '기억력 개선에 도움', '뇌 기능 활성화' 같은 문구로 소비자를 유혹하며 부모님 선물 목록에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덮어놓고 건기식, 골든타임 놓치게 한다

11일 의료계에서는 이러한 건강기능식품 의존이 오히려 치매 '치료 골든타임'을 놓치게 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치매는 어느 날 갑자기 발병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 인지저하(SCD), 경도인지장애(MCI)를 거쳐 치매로 이어지는 연속선상 질환이기 때문에, 초기 인지저하 신호가 나타나는 시점은 치료 개입의 핵심 시기다. 그럼에도 많은 소비자는 증상이 시작되면 병원보다 건강기능식품을 먼저 찾고, 이는 전문적 진단과 치료 시기를 수년 늦추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의료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대한치매학회 역시 "건강기능식품에 의존한 채 시간을 보내는 동안 병이 진행된다"며 "조기 진단이 곧 예방"이라고 강조한다.

문제는 기억력·인지 기능 개선을 내세운 건강기능식품 시장이 빠르게 확대되며 소비자 혼란도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건강기능식품 공전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인지·기억력 관련 기능성 제품 시장은 1조1800억원 규모에 달한다. 특히 포스파티딜세린은 2022년 77억원에서 지난해 495억원으로 불과 2년 만에 6배 이상 성장하며 대표적인 '인지 건강 성분'으로 자리잡았다.

노화 과정에서 체내 감소한다는 특성 때문에 판매사들은 보충 필요성을 강조하며 홈쇼핑, 대규모 할인 프로모션, 1+1 행사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제품들은 어디까지나 정상적 생리 기능 유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식품'일 뿐, 임상시험을 기반으로 한 치매 '치료효과'를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 실제로 기능성 표시도 '기억력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음' 수준에 제한돼 있어, 효능이 명확하게 검증된 의약품과는 목적과 수준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고용량 의약품인 '은행잎추출물' 임상 효과

은행잎추출물은 소비자 오해가 가장 심한 성분으로 꼽힌다. 시중 인지건강 제품 상당수가 은행잎추출물을 포함하고 있고, 병원에서도 은행잎 기반 의약품이 처방되기 때문에 외형상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 두 제품은 '함량·표준화·효능 목적'이 완전히 다르다.

건강기능식품으로 판매되는 은행잎추출물의 최대 함량은 150mg이지만, 치료용 의약품은 대부분 하루 240mg 용량으로 임상 근거를 확보했다. 아시아 전문가 그룹(ASCEND)은 알츠하이머·혈관성·혼합형 치매 치료 시 240mg 표준 용량을 권고하고, 주요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RCT) 역시 동일한 용량을 사용했다.

성분 관리에서도 차이가 극명하다. 의약품은 대한민국약전외한약(생약)규격집 기준에 따라 플라보노이드 22~27%, 테르펜 락톤 5.4~12% 등 주요 지표성분의 함량을 엄격히 표준화하지만, 건강기능식품은 이러한 기준이 없어 제조사에 따라 성분 비율이 제각각이다.

의료계는 "은행잎은 생약 성분이기 때문에 유효성분 표준화가 치료 효과와 직결되는데, 건기식은 이러한 관리가 없어 의약품과 같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같은 은행잎이라는 이유로 건기식을 치료제로 오인해 복용량이 부족한 상태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치매 진단 지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 전문의 진단 받고 의약품 처방 받아야

결국 어떤 성분이든 '건강기능식품은 질병 치료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본질을 소비자가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치매 예방의 핵심은 특정 성분을 사서 복용하는 것이 아니라, 증상이 느껴지는 즉시 전문의를 찾아 종합적인 진단을 받는 것이라는 데 전문가 의견이 모인다.

의약품은 질병 치료·예방을 목적으로 하고 임상 근거·부작용 관리 등을 의료진이 직접 조절해야 한다. 반면 건강기능식품은 준건강인을 위한 보조적 기능성 제품으로 장기 섭취의 안전성에 초점을 둔다. 전문가들은 "포스파티딜세린, 오메가3, 은행잎 등은 균형 잡힌 식사·운동·수면 등과 함께 섭취하면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이를 치료 수단으로 착각하는 순간 병의 진행을 늦출 기회를 잃게 된다"고 조언한다.

치매는 발병 이후 회복이 어려운 질환이지만, SCD나 MCI 단계에서 조기 개입하면 발병 시점을 수년 늦추는 것이 가능하다는 연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한 대학병원 신경과 교수는 "문제는 건기식 자체가 아니라 건기식 때문에 병원을 늦게 찾는 것"이라며 "기억력 저하가 스스로 느껴질 정도라면 이미 전문 평가가 필요한 단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제품을 사기 전에 반드시 병원을 먼저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치매 예방의 출발점은 음식이나 영양제가 아니라 정확한 진단"이라며 "인지 저하가 조금이라도 의심된다면 그것이 바로 병원을 찾아야 하는 '골든타임'"이라고 입을 모았다.

강중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