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피부미용 의료기기 사용' 두고 의협·한의협 충돌 "면허범위 침탈"

강중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12 14:25

수정 2025.12.12 14:22

본질은 의료계 내 직역 간 권한 다툼 문제
한의협 "한의사 초음파 사용에 문제 없어"
의협 "기본적으로 의사 면허 있어야 가능"
챗GPT AI 이미지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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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한의사협회의 갈등이 피부미용 의료기기 사용 문제로 다시 격화되고 있다. 의협은 한의사의 레이저·고주파·초음파 등 미용기기 사용이 “명백한 면허범위 침탈이자 국민 안전 위협”이라고 강하게 반발하는 반면, 한의협은 “법적·행정적 근거가 명확하며 한의사는 이미 피부미용 전문가”라며 맞서고 있다.

양측의 충돌은 기존의 초음파 진단기기 논란, 의약품 사용 논쟁 등과 연결된 구조적 갈등으로, 의료계 내 직역 간 권한 다툼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모습이다.

12일 의료계에 따르면 이번 피부미용 의료기기 사용 문제 갈등의 불씨는 한의협이 최근 회원 대상 보수교육을 시작한 데서 비롯됐다. 교육 내용에는 △레이저·고주파 등 에너지 기반 의료기기 사용법 △시술 부위·기구 소독 △마취약물 이해 및 부작용 관리 등이 포함됐다.



한의협은 “한의과대학에서 이미 피부미용 관련 교육과 실습이 충분히 이뤄지고 있으며, 임상에서도 한의사가 다양한 의료기기를 활용해 왔다”며 “이번 보수교육은 안전성을 강화하고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정당한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한의협은 또 법적 정당성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최근 경찰의 불송치 결정, 일부 행정해석, 서울행정법원 판결 등을 근거로 “한의사가 초음파·레이저를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한의협은 “현대 의료기기가 양의사만 사용할 수 있다는 주장은 과거적 관념일 뿐”이라며 “피부미용 분야에서 한의사의 참여 확대는 경쟁과 발전을 촉진하고, 국민의 진료 선택권을 넓힌다”고 말했다.

반면 의협의 입장은 정반대다. 의협 한방대책특별위원회는 한의협 보도자료가 나오자 즉각 성명을 내고 “법리를 왜곡하고 국민을 현혹하는 위험한 선동”이라고 비판했다.

의협은 “레이저·고주파 등 피부미용 의료기기는 현대의학에 기반해 만들어졌으며, 기본적으로 의사 면허가 있어야 사용할 수 있다”며 “한의사가 이를 사용하려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라고 주장한다.

의협은 특히 한의협 보수교육에 포함된 ‘마취약물’ 관련 내용에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한의사는 의약품 투여 권한이 없고, 마취약물은 고난도 전문의약품”이라며 “관련 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사용 권한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지난 6월 한의사가 리도카인을 봉침액과 혼합해 주사한 사건에서 법원은 1·2심 모두 ‘무면허 의료행위’로 유죄를 선고한 바 있다.

의협은 한의계가 판례를 왜곡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대법원 판례 어느 것도 한의사의 레이저·고주파 의료기기 사용을 인정한 적이 없다”며 “일부 불송치 결정은 기기 사용의 적법성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 법적 판단이 유보된 상태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의협은 또한 “초음파·레이저 시술로 인해 한의계에서 발생한 화상·흉터·조직 손상 등의 피해 사례가 계속 보고되고 있다”며 환자 안전을 최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논쟁은 단순히 한의사가 특정부위를 시술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넘어, 의료기술의 발전·미용수요 증가·직역 간 역할 재정립이라는 보다 큰 문제와 맞물려 있다.

특히 미용·피부 분야는 비급여 시장이 커지고 수익성이 높아 직역 간 이해관계가 충돌하기 쉬운 영역이다. 그동안 정부는 기기별 위험도와 면허범위 해석 기준을 명확히 정립하지 못해 분쟁이 반복된 측면도 크다.

전문가들은 갈등의 재점화를 예견된 흐름으로 본다. 초음파 사용 논란, 보톡스·필러 시술 문제, 현대의약품 사용 관련 고발전 등 오랜 갈등의 연장선이기 때문이다. 법적·제도적 기준이 모호한 상태에서 양측은 각자 유리한 판례와 판단만을 근거로 들며 대립을 강화하고 있다.

한의협은 “피부미용 분야에서 한의사는 충분한 교육과 임상 경험을 갖추고 있으며, 국민은 다양한 선택권을 가질 권리가 있다”며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다.

반면 의협은 “의학적 전문성과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은 의료기기 사용은 국민 위험을 초래할 뿐”이라며 한의계의 행보를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결국 이번 사안의 핵심은 피부미용 의료기기의 사용 권한을 둘러싼 직역 간 근본적 갈등, 그리고 현대 의료기술의 변화 속에서 기존 면허 체계를 어떻게 재해석해야 하는가라는 구조적 문제다.


의료계 내부에서는 환자 안전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은 명확한 법적 기준 마련과 직역 간 합의가 없이는 갈등이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vrdw88@fnnews.com 강중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