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매일 경찰관 5명이 다칩니다. 목숨을 잃는 이들은 매년 10명이 넘습니다. 공상·순직 승인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치안현장 최일선에서 시민들을 지키지만, 일을 하다 다친 경찰관은 정작 국가로부터 온전히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뉴스1>은 창경 80주년을 맞아 공무 수행 중 다치거나 숨진 경찰관과 유족들을 만나 그 현실을 들여다보고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해결책을 모색해봤습니다.
(서울=뉴스1) 김종훈 박응진 강서연 기자
"동료들이 서로 마음을 합쳐 우리의 뜻을 세상에 알렸고, 판사들의 마음도 움직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난 2019년 6월 18~19일 이틀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 앞 법원삼거리에서 경찰관들의 릴레이 1인 시위가 열렸다. 취객 난동 진압을 위해 현장에 출동했다 뇌동맥류 파열로 숨진 고(故) 차정후 경사를 국가유공자로 인정해달라고 유족이 청구한 재심을 응원하는 취지였다.
한 달 뒤 열린 선고에서 법원은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앞서 사망과 업무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고 본 보훈지청의 결정과 1심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당시 경찰 내부망인 현장활력소를 통해 1인 시위에 동참할 동료를 모은 사람이 울산지방경찰청 소속 안성주 이젠아픈우리동료를위해(이아동) 대표다.
그는 지난 2018년 가까운 동료들과 함께 경찰 내 아픈 동료를 찾아 도움을 주는 단체 이아동을 만들어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8년간 이아동에서 성금을 전달한 경찰관은 80명이 넘고, 누적 성금은 2억 7000만 원에 달한다.
지난 10월 10일 울산 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안 대표는 "전국 13만의 경찰관이 있는데 그중에는 말하지 못하고 홀로 아파하는 동료들이 정말 많다"며 경찰관들이 건강한 상태로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매달 1500명 후원금으로 성금 마련…아픈 동료 제보 '속출'
이아동은 매월 1500여 명의 경찰관으로부터 정기 후원을 받아, 아픈 동료나 유족을 직접 찾아가 성금을 전달한다. 안 대표는 처음 단체가 만들어졌을 때만 해도 지원할 동료를 찾는 일도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아픈 동료가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제보가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그는 "초창기에는 수소문해서 겨우 후원 대상자를 찾는 입장이었다"며 "지금은 단체가 어느 정도 알려져서 주변 동료가 문자나 전화를 통해 직접 제보를 준다. 후원을 앞둔 분만 10명 정도 된다"고 귀띔했다.
안 대표는 경찰이 맡은 업무 특성상 근속연수가 길어지면서 건강이 악화할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급작스럽게 마주하는 타인의 시신, 주취 상태 민원인의 욕설 등 탓에 건강한 사람이라도 장기간 노출되면 마음의 병이 찾아오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는 "매년 경력이 쌓이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나 우울증을 호소하는 동료들이 많다"며 "심한 경우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고 암 같은 질병을 얻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이어 "아프고 다치면 쉬고 싶어도 '내가 빠지면 동료가 더 힘들어진다'는 생각 때문에 참고 견디다가 병을 키우는 경우도 많다"면서 "아파서 빠지는 사람이 생기면 그 자리를 채울 대체 인력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다른 기관 공무원의 경우 결원이 생기면 일시 대체인력을 채용하는 등 방식으로 빈자리를 메꾸지만, 경찰관은 남은 동료들이 업무를 'N분의 1'로 나눠 맡게 되는 게 일반적이다. 프랑스 경찰은 지난 2003년 치안법을 개정해 휴직으로 업무대체가 필요하면, 퇴직자 등 인력풀을 구축해 업무공백을 해소하고 있다.
"정당한 업무가 '과잉진압' 되지 않길…제때 회복할 환경 필요"
아픈 경찰관에 대한 지원과 동시에 정당한 업무를 하고도 피해 보는 동료가 없도록 조직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범죄자를 제압하는 상황에서 자칫 '과잉대응'으로 몰리게 되면 업무 스트레스가 늘고, 치안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안 대표는 "아무도 안 다치는 게 최선이지만 가끔 불상사가 생겼을 때 경찰 잘못이 돼버리는 경우가 많다"며 "내부 조사를 받는 등 시달리다 보면 그 이후엔 적극적인 경찰도 소극적으로 바뀌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효율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고통에 시달리는 경찰관을 방치하기보단, 아픈 경찰관이 제때 회복해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매번 새로운 인력을 뽑은 뒤 교육하고 경험을 쌓은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이아동이 경찰관들을 대상으로 한 '심신안정힐링센터' 건립을 목표로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안 대표는 "경찰관들이 (센터에) 갔다가 치료하고 나오면 국민들에게 더 좋은 치안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금전적으로 계산해도 길게 보면 효과가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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