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기후변화는 인류의 위기다. 이제 모두의 '조별 과제'가 된 이 문제는 때로 막막하고 자주 어렵다. 우리는 각자 무얼 할 수 있을까. 문화 속 기후·환경 이야기를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을 끌고, 나아갈 바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다카마쓰=뉴스1) 황덕현 기후환경전문기자 = 비행기가 일본 오사카 인근 시코쿠 상공에 들어서자, 창밖으로 수십 개의 저수지가 눈에 들어왔다. 바다와 육지의 경계가 흐릿한 내해 곳곳에, 반짝이는 사각형들이 떠 있었다.
일본의 수상 태양광은 특정 기술이기보다 공간 전략에 가깝다. 농업용 저수지와 조정지, 소규모 댐을 활용해 태양광을 얹는 방식은 2011년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재생에너지 붐에 가속됐다.
2010년대 중반부터 민간 기업과 지자체가 주도해 수백 곳의 저수지에 설비를 설치했다. 태양광 패널만 축구장 25개 크기에 달하는 13.7메가와트(㎿)급 당시 세계 최대급 지바현 야마쿠라댐 수상태양광처럼 상징적 사례도 등장했다.
일본 정부는 수상태양광을 별도의 대규모 산업으로 키우기보다는, 지역 분산형 전원과 재해 대응형 전원으로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춰 왔다. 태풍과 지진이 잦은 환경에서 송전망 부담을 줄이고, 지역 단위에서 전력을 생산·소비하는 구조를 염두에 둔 선택이다.
한국도 수상태양광을 모르는 나라는 아니다. 합천댐과 보령댐, 충주댐을 거쳐 최근에는 임하댐 등 대형 다목적댐을 중심으로 수십 ㎿급 설비가 잇따라 들어서고 있다. 올해는 수력발전과 결합한 하이브리드 모델, 지역 주민이 수익을 공유하는 방식까지 도입되며 제도적 실험도 이어지고 있다.
다만 속도와 밀도는 일본과 다르다. 한국의 수상태양광은 여전히 '대형 프로젝트 중심'이고, 다수의 중소 저수지를 촘촘히 활용하는 단계까지는 가지 못했다. 재생에너지 정책이 여전히 기후에너지환경부나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처럼 중앙 정부가 주도하는 방식인 탓이다.
정부는 최근 해상풍력 확대를 재생에너지 전환의 핵심 축으로 다시 꺼내 들었다. 2030년까지 해상풍력 설비용량을 10.5기가와트(GW)로 늘리고, 2035년에는 25GW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연간 설치 목표는 4GW지만, 현재 상업 운전 중인 해상풍력은 0.35GW에 불과하다. 허가를 받은 사업과 실제 가동 사이의 간극은 크다.
정부는 해상풍력 부진의 원인으로 기반 시설 부족을 지목했다. 해상풍력 기자재를 조립하고 설치할 수 있는 지원 항만은 사실상 목포신항 하나뿐이고, 설치 선박도 손에 꼽힌다. 이에 이재명 정부는 항만 확충과 전용 설치선 확보, 인허가 절차 단축 등을 대책으로 내놨다. 계획입지제도를 도입해 사업 기간을 줄이고, 부유식 해상풍력과 20㎿급 초대형 터빈 개발에도 나선다는 구상이다. 밤과 겨울에도 발전이 가능한 해상풍력이 태양광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는 논리도 덧붙였다.
그러나 이 역시 '대규모 공급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모든 과정과 준비가 척척 진행된다면 잘될 것이다. 그러나, 국내외 산업 환경과 정세는 '한국만의 청사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아울러 이런 과정은 환경 영향 논란과 주민 수용성 문제, 민간 중심 구조에 대한 우려를 포함한다. 해상풍력의 경우 어업 피해와 해양 생태계 영향에 대한 정교한 대책은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 기후와 에너지를 앞에 밀면서, 정작 전신이자 근원인 '환경부'의 주요 역할을 잊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일본의 크고 작은 저수지 위 태양광 패널은 거창한 선언 없이도 많은 것을 말해 준다. 재생에너지 전환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공간을 어떻게 쓰고, 속도를 어떻게 조절하느냐의 문제라는 점이다. 물 위 태양광이든 바다 위 풍력이든, 한국식 재생에너지 확대 방안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간 그 이색적인 풍경이 낯설게 느껴졌다면, 제12차 전력수급계획과 신규 원전 여부의 첫발을 떼는 지금, 전환 속도와 방향도 다시 점검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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