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기아의 뿌리, '경성정공'에서 '브리사'까지[기아 80년 결정적 순간①]

뉴시스

입력 2025.12.13 09:01

수정 2025.12.13 09:01

1944년 자전거 부품사 경성정공이 모태 피란지 부산 '기아' 탄생…"세계로 간다" 오토바이 이어 사륜 시도…브리사 성공 창업자家 이선 후퇴…전문경영인 체제
[서울=뉴시스] 경성정공 직원들이 서울 영등포 공장에서 자전거 부품을 조립하고 있다. (사진=기아80년 사사) 2025.12.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경성정공 직원들이 서울 영등포 공장에서 자전거 부품을 조립하고 있다. (사진=기아80년 사사) 2025.12.13.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기아의 역사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역사였다"는 정몽구 명예회장 말처럼, 기아는 80년 동안 수많은 위기와 도약을 반복하며 성장했다.

미래 모빌리티 시대를 선도하고 있는 기아의 현재 혁신 동력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창업 이래 회사의 존립과 정체성, 미래 방향을 근본적으로 뒤바꾼 가장 결정적인 순간 톱3를 꼽아본다.

[서울=뉴시스] 류인선 기자 = "자전거 생산, 볼트·너트, 인발(引拔) 샤프트 제작"

해방 직전인 1944년 12월1일. 경성지방법원에 접수된 '경성정공'의 설립 등기부등본상 사업 목적에는 이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지금은 글로벌 모빌리티 회사인 기아가 자전거 부품 회사로 첫 발을 내딛은 순간이었다.

김철호 창업자는 임직원 50명과 서울 영등포에 자전거 부품 공장을 세웠다.

해방 전후 한국의 도로 상황에 가장 적합한 운송 수단은 자전거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한국 모빌리티에 대한 야심 찬 도전은 불과 6년 만에 벌어진 1950년 6·25 전쟁으로 위기를 맞았다. 피난 행렬과 함께 부산까지 내려온 김 창업자는 전쟁 한복판에서도 국산 자전거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았다.

◆기아의 탄생…"아시아에서 세계로"
1952년 피란지 부산에서 경성정공은 기아산업으로 이름을 바꿨다. 기아는 '아시아에서 일어나 세계로 간다'는 의미를 담았다. 자동차의 '기어'와 발음도 유사하고, 영문 표기(Kia)가 간결하다는 장점도 있었다.

기아의 모빌리티 사업은 이륜 오토바이와 삼륜 자동차로 발전했다. 전후 다시 서울로 올라온 기아산업은 1955년 경기 시흥공장 건설을 시작했다.

이를 기반으로 기아는 첫 국산 삼륜차 K-360을 1962년 출시했다. 대중화에는 실패했지만, 중형급 삼륜차 T-2000을 생산하는 기반이 됐다. T-2000은 출시 첫해 1299대를 팔며 성공의 문을 열어 제쳤다.

본격적인 사륜차는 2.5톤 타이탄 E-2000, 4톤 복사 E-3800이다. 자전거 공장에서 시작해 진정한 자동차라고 할 수 있는 사륜차 생산에 돌입한 것이다.

[서울=뉴시스] 기아산업 소하리공장에서 브리사 S-1000이 조립되고 있다. (사진=기아 80년 사사) 2025.12.1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기아산업 소하리공장에서 브리사 S-1000이 조립되고 있다. (사진=기아 80년 사사) 2025.12.1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김철홍, 병상 경영…10년 뒤 전문경영인 도입
기아는 다시 한번 소하리 공장에서 승부수를 던졌다. 김 창업자는 당시 지병으로 거동이 불편했지만 "외국의 심장을 단 자동차가 무슨 국민차인가"라며 엔진 국산화를 위한 공장 건립에 나섰다.

1973년 4월 한국 최초로 2,000cc 4기통의 VA 가솔린 엔진을 생산하는 성과를 냈다.

그 이듬해 이 공장에선 985cc 승용차인 브리사 S-1000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브리사 S-1000은 1975년 1만757대가 팔렸고, 승용차 시장 점유율 55%를 차지하는 성과를 냈다.

이 시기 김 창업자는 병상에서 업무를 보고 받아야 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다. 김 창업자의 장남인 김상문 사장이 1973년 11월 경영 바톤을 넘겨받았다.

하지만 경영 위기를 넘기지 못하며 기아는 전문 경영인 체제를 맞았다. 민경중 아시아자동차 회장을 추대하고, 김선홍 사장이 사업을 이끌었다.
김선홍 사장은 김 창업자를 보좌하며 기아의 내실을 다진 인물이다.

김상문 전 사장은 부도 위기 속에 기아산업 지분 25%를 내놓으며 책임 경영을 실천했다.


업계 관계자는 "당시는 자동차산업 통폐합으로 기아의 존립이 위태로웠던 시기"라며 "기술에 집중한 기아는 국민 승합차 봉고, 베스타, 세레스 등을 연속으로 성공시키며 위기를 극복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ryu@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