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재찬 보험전문기자 = 이지스자산운용 경영권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중국계 사모펀드(PEF)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가 선정되면서 이와 관련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유력한 인수 후보로 거론됐던 흥국생명은 이지스운용 최대 주주 손화자 씨와 주주대표 김애미 씨, 매각주관사 관계자 등 5명을 고소했다. 또 금융권에서는 국내 최대 부동산운용사가 중국 자본에 넘어가는 데 대한 우려가 증폭되면서, 이지스운용 성장에 발판이 됐던 핵심 투자자 국민연금은 투자금 회수를 검토 중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금융감독원도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최악의 경우 이지스운용의 경영권 매각이 무산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흥국생명, 이지스운용 최대주주·모건스탠리 고소…공정 입찰 방해
1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흥국생명은 이지스자산운용 매각과 관련해 최대주주 손화자 씨와 주주대표 김애미 씨, 공동 매각주간사인 모건스탠리 한국 IB부문 김세원 대표 등 5명을 공정 입찰 방해 및 사기적 부정거래(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지난 11일 경찰에 고소했다.
손 씨는 이지스운용 발행 주식의 12.4%를 보유한 최대 주주이고, 김 씨는 손 씨의 딸로 주식 매각에 참여하는 이지스운용 주주들의 위임을 받아 주주대표 지위로 본건 입찰에서 주식 매각을 주도하고 있는 당사자다. 또 김 대표 등은 매각 주간사 모건스탠리의 임원으로 이번 입찰 진행의 실무를 담당했다.
흥국생명은 "최대주주 손 모 씨와 김 모 대표 등 피고소인들은 소위 '프로그레시브 딜' 방식으로 입찰 가격을 최대한 높이기로 공모했으면서도 표면적으로는 프로그레시브 딜 방식으로 진행하지 않는 것처럼 가장했다"고 주장했다.
국민연금, 이지스운용 투자금 회수 방안 검토…"민감한 부동산 정보 유출"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는 지난 10일 투자위원회를 열고 이지스운용에 위탁한 투자금을 회수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지스운용이 경영권 매각을 위한 실사 과정에서 국민연금 출자 내역을 힐하우스, 흥국생명, 한화생명 등에 유출한 정황이 포착된 데 따른 조치다. 국민연금은 이를 '국가 기밀 유출에 준하는 중대한 사안'으로 보고 있다.
이지스운용이 원매자에게 제공한 정보는 서울 역삼동 센터필드빌딩과 마곡 원그로브 개발사업 등 핵심 자산을 담은 6개 펀드의 설정액, 평가액, 자산 이슈 등 민감한 정보가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정보들은 국민연금의 사전 승인을 거치지 않고 정보를 유출할 수 없도록 약정돼 있다.
이에 대해 이지스운용은 "펀드 실사 과정에서 일부 기본 정보가 투자자가 특정되지 않은 채 회계법인에 제출된 것은 맞고, 대표이사가 9일 국민연금을 방문해 설명했다"며 "아직 연금 자금 회수 검토에 대해선 공식적으로 통보를 받은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공적 자금 발판 삼아 성장한 이지스운용…500억 원 차이로 중국 자본에 넘어가나
이번 사태는 지난 8일 이지스운용 매각 주관사인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가 중국계 사모펀드 힐하우스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면서 시작됐다. 지난달 11일 이지스운용 본입찰에서 흥국생명은 1조 500억원의 최고가를 입찰 가격으로 제시했고,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와 한화생명은 각각 9000억 원대 중반의 입찰 가격을 제시했다.
그러나 매각주관사 모건스탠리는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주겠다는 취지로 제안했고, 이에 힐하우스는 다시 1조 1000억 원의 입찰가격을 제시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금융권에서는 국민들의 노후 자금인 국민연금 등 공적 자금을 발판으로 성장한 이지스운용이 단 500억 원 차이 때문에 중국계 자본으로 인수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중국계 사모펀드가 국내 최대 부동산 자산운용사인 이지스운용 경영권을 쥘 경우 국내 금융·부동산 정책과의 정합성 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힐하우스가 이지스운용을 통해 얻은 국내 공공 성격의 자산 정보를 중국 자본으로 유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운용은 국토교통부 차관을 지낸 고(故) 김대영 창업주가 2010년 설립한 부동산 전문 투자사로, 누적 운용자산은 65조 8000억 원 국내 1위, 아시아 3위권 운용사다. 이지스운용의 부동산펀드 설정액은 약 26조 2000억 원이며, 이 중 14조 3000억 원이 국내 자산이다. 국민연금이 출자한 금액은 2조 원 수준이고, 현재 시장 가치는 7조~8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자본' 힐하우스, 이지스운용 불투명…금감원 "매각 과정 문제 정리 필요"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최악의 경우에는 이지스운용의 경영권 매각도 무산될 수 있다. 만약 국민연금이 투자액 회수에 나선다면 우선협상대상자인 힐하우스도 이시스운용의 기업가치를 재산정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거래 재협상이나 무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힐하우스가 이지스운용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거쳐야 한다. 금융위는 심사 과정에서 재무 건전성, 사회적 신용, 자금 조달 방식의 투명성 등을 검토하는데, 외국계 사모펀드라는 점에서 한층 까다로운 심의가 예상된다.
특히, 힐하우스의 경우는 '중국계 자본'이라는 꼬리표가 대주주 적격성 심사의 최대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금융시장 안정성과 공익적 고려 등과 같은 정성적 항목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도 이번 이지스운용 경영권 매각 과정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금감원은 당연히 경영권 매각과정에서 매도자와 원매자 간의 계약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면 정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경영권 매각을 위해서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거처야 하고, 심사 신청 전 금융당국에 서류 등을 제출해 관련 내용을 사전 협의한다"며 "심사 전 매각 과정에서 논란이 생겼기 때문에 심사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더 신중하고 까다롭게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지스운용 매각 주관사인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는 흥국생명을 차순위협상대상자로 지정했다. 모건스탠리 관계자는 "인수희망가 최고액을 제시한 힐하우스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고, 두번째로 높은 인수희망가를 제시한 흥국생명이 차순협상자라는 의미로 보면 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흥국생명은 "차순위협상대상자 선정은 별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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