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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나 마동석이야" '리얼 주먹'이 만든 복싱 신드롬 [한승곤의 인사이트]

한승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13 10:01

수정 2025.12.13 10:00

"한 대 맞으면 간다"…도파민 나오는 마동석표 예능
챔피언부터 국가대표까지… '어벤져스 자문단'이 만든 현장
"마이크 숨겨 숨소리까지"… 제작진이 밝힌 리얼리티 비밀
배우 마동석. 사진=tvN 예능 프로그램 '아이 엠 복서'
배우 마동석. 사진=tvN 예능 프로그램 '아이 엠 복서'

‘충무로 액션 장인’ 마동석이 이번에는 링 밖의 멘토로 나섰다. 그가 이끄는 리얼 복싱 서바이벌 프로그램 ‘아이엠복서(I Am Boxer)’가 방송가 안팎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방영 직후부터 각종 화제성을 보여주며, 복싱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단순한 경쟁을 넘어, 땀과 투혼이라는 스포츠의 본질을 예능 문법으로 세련되게 풀어냈다는 평이다. 시청자를 열광케 한 결정적 명장면, 제작진이 밝힌 기획 의도를 통해 진화하고 있는 스포츠 콘텐츠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편집자주]


화제성 1위·9800만 뷰… 수치로 증명된 ‘복싱 신드롬’

[파이낸셜뉴스] ‘아이엠복서’의 돌풍은 수치로 증명되고 있다. tvN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은 30년 경력의 복싱 체육관 관장인 마동석이 직접 제작에 참여한 초대형 프로젝트다. 지난달 21일 첫 방송 이후, 화제성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 펀덱스(FUNdex) 조사 결과, ‘아이엠복서’는 11월 4주 차 TV 비드라마 화제성 부문 1위, 금요일 비드라마 부문에서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이는 올해 등장한 TV 스포츠 예능 중 첫 주 화제성과 주 평균 화제성 모두 1위를 기록한 수치다. 글로벌 반응도 뜨겁다. OTT 플랫폼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 기준, 지난 1일 디즈니플러스 TV쇼 부문 월드와이드 7위에 올랐으며, 11월 24일부터 30일까지 집계된 주간 동영상 조회수는 무려 9800만 뷰를 돌파했다.

사진=tvN 예능 프로그램 '아이 엠 복서'
사진=tvN 예능 프로그램 '아이 엠 복서'

명현만 vs 줄리엔강, 상상이 현실이 된 ‘거인들의 데스매치’

프로그램의 백미는 단연 각본 없는 드라마가 펼쳐지는 링 위다. 지난 12일 방송된 4회에서는 격투기 팬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봤을 ‘꿈의 대결’이 성사됐다. 바로 ‘연예인 싸움 1위’로 불리는 줄리엔강과 ‘전 킥복싱 헤비급 챔피언’ 명현만의 데스매치였다. 압도적인 피지컬을 자랑하는 두 사람의 등장에 다른 참가자들조차 “빅 매치네”, “거인 대전이다”, “상상만 하던 매치”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긴장감이 감도는 링 위에서 마동석은 특유의 재치로 분위기를 환기했다. 그는 “시청자분들도 이 경기를 많이 기다리실 것 같은데, 돈 내고 봐야 하는 경기인데 돈 좀 거둘까요?”라고 농담을 던지며 경기에 쏠린 뜨거운 관심을 대변했다. 하지만 농담도 잠시, 공이 울리자 링 위는 살얼음판으로 변했다. 참가자들은 “한 대 맞으면 간다”, “내가 다 떨린다”, “유효타가 없어도 긴장된다”며 숨을 죽였다.

줄리엔강은 “자신 있다. 끝까지 해보자는 생각”이라며 비장한 각오를 다졌고, 명현만은 “빨리 이기고 올라가야 하는 상대라고만 생각했다”며 챔피언 출신다운 여유를 보였다. 경기는 예상대로 치열했다. 줄리엔강은 “헤비급 선수들은 한 방만 맞으면 끝이다. 내 거리에 들어오면 오른손 아니면 잽으로 때려야 했다”며 전략적으로 접근했지만, 명현만의 묵직한 주먹을 허용하며 다운되는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줄리엔강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투지를 불태웠다.

이를 지켜보던 마동석은 “최대한 잘 버텼다”며 줄리엔강의 정신력을 높이 샀고, 참가자들 역시 “줄리엔강이니까 버텼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이미 끝났을 것”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결국 심판 2인의 만장일치로 명현만이 승리했다. 경기 후 줄리엔강은 “솔직히 말하면 이게 내 인생의 첫 리얼 경기다. 명현만 오늘 너무 잘했다. 그래서 너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패배를 깨끗이 인정했다. 이에 MC들과 참가자들은 “멋진 경기였다”라며 두 선수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승패를 떠나 서로를 존중하는 스포츠맨십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사진=tvN 예능 프로그램 '아이 엠 복서'
사진=tvN 예능 프로그램 '아이 엠 복서'

장혁의 부상 투혼부터 육준서의 아쿠아 링 혈투까지

‘아이엠복서’에는 전 한국 챔피언, 개그맨 윤형빈, 배우 장혁, UDT 출신 육준서 등 다양한 직업군의 도전자들이 모여 계급장 떼고 오직 주먹으로만 승부한다. 이들의 진정성은 프로그램의 핵심 동력이다.

특히 맏형 격인 배우 장혁의 투혼은 프로그램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첫 방송 스파링에서 장혁은 배우 후배 이도운과 맞붙어 이마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그는 경기를 중단하지 않고 끝까지 이어갔고, 독특한 리듬의 스텝과 흐트러지지 않는 중심축을 선보이며 “배우가 아니라 복서 같은 몰입도였다”, “이건 예능이 아니고 진짜다”라는 시청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UDT 출신 화가 육준서의 활약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2일 방송된 4회에서 극한의 환경인 ‘아쿠아 링(Aqua Ring)’ 대결을 펼쳤다. 발목까지 차오른 물과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도 그는 지치지 않는 체력을 과시하며 이도운과 처절한 승부를 벌였다.

사진=tvN 예능 프로그램 '아이 엠 복서'
사진=tvN 예능 프로그램 '아이 엠 복서'

유명우부터 신종훈까지… ‘어벤져스’ 자문단과 제작진의 디테일

프로그램의 높은 완성도 뒤에는 대한민국 복싱계를 대표하는 ‘어벤져스급’ 자문단이 있다. 제작진에 따르면 전 WBA 주니어플라이급 챔피언이자 국제복싱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유명우를 필두로,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신종훈과 김형규, 전 복싱 국가대표 김지훈과 김도현, 전력분석관 이병규, 전 한국 챔피언 이규원 등 총 8명의 자문위원이 마동석과 한 팀을 이뤘다. 여기에 대한복싱협회, KBF, KBM 소속 18인의 심판진이 합심해 승부의 공정성을 담보한다.

연출을 맡은 이원웅 PD는 단순한 중계를 넘어선 ‘영상미’에 대한 철학을 밝혔다. 그는 “링에서는 오직 승패만이 결정되기에, 복서들의 미세한 표정과 떨리는 호흡을 담으려 최선을 다했다”며 “방송에서 잘 쓰지 않는 촬영 방식을 택하고, 말도 안 되는 곳에 마이크를 설치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생중계 중심의 시합보다 훨씬 표현력이 강한 드라마틱한 복싱을 구현했다고 확신한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러한 제작진의 집요함은 시청자들이 종합격투기나 일반 중계와는 차원이 다른 생생함을 느끼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사진=tvN 예능 프로그램 '아이 엠 복서'
사진=tvN 예능 프로그램 '아이 엠 복서'

헝그리 정신에서 라이프스타일로…복싱의 재발견과 확산

‘아이엠복서’의 흥행은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하던 복싱 트렌드에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복싱은 1970~80년대 국민 스포츠의 영광 이후 침체기를 겪었으나, 최근 몇 년 사이 생활체육으로서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왔다. 실제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 인증샷으로 복싱 글러브를 낀 사진들이 늘고 있으며, 무인 복싱장까지 등장할 만큼 2030 세대의 힙(Hip)한 운동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등장한 ‘아이엠복서’는 복싱의 대중화를 가속할 촉매제가 될 전망이다. 프로그램 속 출연자들이 땀 흘리며 샌드백을 치고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모습은 현대인들에게 강렬한 동기 부여를 제공한다. 과거 칙칙했던 체육관 이미지가 화려한 조명과 음악이 흐르는 감각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추세와 맞물려, ‘아이엠복서’가 보여주는 세련된 영상미와 리얼한 승부는 복싱을 더욱 매력적인 라이프스타일로 각인시킬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스포츠 콘텐츠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보여준다고 진단한다. 최동호 스포츠 평론가는 "최근 스포츠는 과거와 달리 엔터테인먼트화되는 경향이 뚜렷하다"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영화나 드라마, 놀이공원처럼 휴일에 스포츠를 선택해 즐긴다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방송 콘텐츠로서 스포츠의 유효성이 증명되면서 방송사마다 제작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시청자의 관심이 커지면 방송사는 다시 프로그램을 만드는 선순환이 지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