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늘어나는 정신 응급 사건…940만 서울의 밤 지키는 '합동대응팀'

뉴스1

입력 2025.12.14 06:01

수정 2025.12.14 06:01

9일 밤 서울 정신응급합동대응팀의 차량이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 앞에 도착해 있다.
9일 밤 서울 정신응급합동대응팀의 차량이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 앞에 도착해 있다.


10일 오전 4시 야간 근무 중인 서울시 정신응급합동대응센터 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다.
10일 오전 4시 야간 근무 중인 서울시 정신응급합동대응센터 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다.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요. 많은 걸 바란 건 아니잖아. 평범하게 살자고 했는데…."
지난 9일 밤 서울 중구 남대문파출소. 술에 취한 50대 여성 A 씨가 소파에 얼굴을 묻은 채 오열했다. 11년간 교제한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받고 "죽어버리겠다"며 112에 신고한 직후였다.

파출소 경찰관들의 표정에는 난감함이 역력했다. 단순히 술주정으로 치부해 귀가시키자니 혹시 모를 자살 시도가 우려되고, 입원시키자니 뚜렷한 병력이나 명확한 자해 흔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판단이 어려운 순간 '정신응급합동대응팀'이 투입됐다.

현장에 도착한 정신건강전문요원은 20여 분간 A 씨와 눈을 맞추며 심층 면담을 진행했다. 자해 위험이 급박한 정신질환으로 추정되면 의사 진단을 거쳐 3일간 응급입원이 가능하다.

다행히 면담 결과 '정신과적 응급 상황은 아니다'라는 판단이 나왔고 A 씨는 응급입원 대신 파출소에서 보호 조치를 받게 됐다.

급증하는 응급입원… 서울의 밤 지키는 '합동대응팀'

합동대응팀이 근무하는 '정신응급합동대응센터'는 A 씨처럼 정신적 위기를 호소하는 이들에게 전문 상담과 병원 입원을 연계하기 위해 설립된 조직이다. 현직 경찰관과 정신건강복지센터 소속 전문요원이 한 팀이 돼 손발을 맞춘다.

서울에는 현재 동부와 서부 두 곳의 합동대응센터가 운영되지만, 야간과 휴일에는 마포구 소재 서부센터 한 곳만이 문을 연다.

특히 야간 근무 인력은 경찰관 3명과 전문요원 3명, 총 6명에 불과하다. 6명이 야간에 발생하는 인구 940만 서울시 전역의 정신응급 상황을 도맡아야 하는 실정이다.

최근 정신질환 관련 신고가 폭증하면서 센터로 향하는 일선 경찰관서의 지원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 한해 11월까지 경찰의 응급입원 의뢰 건수는 1만 9124건으로 전년 동기(1만 6667건) 대비 14.7% 증가했다. 서울 합동대응팀이 직접 현장에 나가 처리한 건수 역시 약 30% 늘었다.

9일 마포 센터의 야간 근무 조장인 이승건 서울경찰청 경위는 "그나마 겨울철이라 계절적 영향으로 출동이 적은 편"이라고 말했지만, 센터 전화기는 전문가의 판단을 요청하는 일선 경찰관서의 연락으로 쉴 새 없이 울렸다.

단순 주취냐 정신질환이냐… 회색지대 '판단'이 핵심

합동대응팀의 핵심 역할은 '상황 판단'이다. 현장에서 접수되는 사건들은 단순 주취 소란인지, 자살 시도가 임박한 고위험 상황인지 구분이 모호한 이른바 '회색지대'가 대부분이다.

판단은 신중해야 하고 절차는 복잡하다. 대상자 면담, 병력 조회, 보호자 통화, 입원 결정, 병원 이송까지 통상 3~4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이송지가 멀거나 병상을 구하지 못하면 처리 시간이 7시간을 넘기기도 한다.

설상가상으로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해도 입원이 어려운 경우가 부지기수다. 대상자가 만취 상태이거나 외상이 있으면 정신과 입원이 거부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날 밤 사업 문제로 다투다 흉기로 팔을 자해한 30대 남성 사건이 접수됐지만, 대응팀은 즉시 출동할 수 없었다. 우선 상처 봉합이 되지 않으면 정신과 진료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1차 판단 때문이다.

센터에서 '입원은 어려울 것 같다'는 의견을 보냈으나 남성을 보호하고 있던 종로2가파출소에서는 추가적인 자해 위험이 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외과 진료 후 다시 한번 출동을 요청했다.

현장에 출동한 대응팀은 남성의 과거 병력과 면담 상태 등을 보고 정신과 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진료가 가능할 것 같은 병원에 전화를 걸어 10분 넘게 상황을 설명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응급 상황으로 보기 어려우니 입원을 위해서는 가족들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 남성은 가족들에게 인계됐다.

입원 병원 찾아 도로서 밤샘…"그래도 현장에 도움 된다니 보람돼"

이 경위는 대상자가 몰리는 경우 진료를 하고 입원을 시킬 수 있는 병상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했다.

그는 출동을 나섰다가 대상자를 받아줄 병원을 찾지 못해 도로에서 7시간 넘는 시간을 기다리며 꼬박 밤을 새운 적도 있었다고 했다.

경찰은 대응팀의 격무를 해소하고 늘어나는 정신질환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내년부터 관련 인력을 증원할 계획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인력 증원뿐만 아니라 지자체의 공공병상 확충 등 인프라 개선도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 경위에겐 언제 돌발 행동을 할지 모르는 정신응급환자를 매일 마주하고, 병상을 찾아 헤매는 일이 반복되는 고단한 일상에서도 팀원들을 버티게 하는 건 '현장에 도움이 된다'는 자부심이다.


그는 "현장 경찰관들 판단을 내리지 못하지만 전문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이 면담을 해주니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것 같다"라며 "그런 부분에서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