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건강

의정갈등 필수의료 공백, ‘인적네트워크’가 막았다

변옥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14 10:29

수정 2025.12.14 10:31

심근경색·뇌출혈 응급환자, 병원끼리 협진으로 생명 지켜
온병원-부산대병원-백병원 등 ‘심뇌혈관 인적네트워크’ 효과
온병원 전경. 온병원 제공
온병원 전경. 온병원 제공


[파이낸셜뉴스]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의정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필수의료 현장은 전례 없는 인력난을 맞았다. 전공의 이탈과 진료 축소가 이어지면서 응급실과 중환자실의 공백이 커졌고, 특히 심근경색과 뇌졸중 환자를 다루는 심뇌혈관 분야가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보건복지부가 시행한 ‘심뇌혈관질환 인적네트워크’가 상당 한 효과를 보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14일 부산 온병원이 밝혔다.

이 제도는 심장내과, 신경외과, 흉부외과 등 필수 전문의를 권역 단위로 묶어 하나의 팀처럼 운영하고, 병원 간 환자 정보를 모바일 플랫폼으로 실시간 공유해 신속하게 시술 주체를 정하는 구조다. 네트워크에 참여한 스텝에게 개별지원금을 지급하는 보상 체계도 함께 도입됐다.



부산 온병원은 심혈관센터 이현국 센터장(심장내과전문의), 뇌혈관센터 최재영 센터장과 김수희 신경외과 과장은 지난 2024년 한해 동안 부산권 심뇌혈관질환 인적네트워크 소속으로 심뇌혈관 응급 시술을 여러 건 수행했다. 병원 간 인력 공유 덕분에 환자는 “어느 병원 소속이냐”보다 “누가 먼저 도착하느냐”에 따라 살 수 있었다.

지난해 10월, 47세 남성 A씨는 극심한 두통으로 영도구의 한 지역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 결과 거미막하 출혈이 확인됐고, 곧바로 ‘심뇌혈관 인적네트워크’ 협의 메시지방에 전원 요청이 올라왔다. 이 신호를 받은 온병원 최재영 뇌혈관센터장이 즉시 환자 이송을 수락했고, 20분 뒤 환자는 119 구급차로 온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최 센터장은 도착 직후 뇌혈관 조영술(TFCA)을 시행해 뇌저동맥에 코일 8개를 삽입했다. 시술 중 혈전이 발생했지만, 신속한 대처로 안정적으로 마무리됐다. 지 씨는 이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한 달 뒤 회복해 퇴원했다. 만약 이송과 시술이 30분만 늦었더라면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지난해 12월 초에는 65세 남성 B씨가 흉통을 호소하며 부산 사하구의 한 병원을 찾았다. 심근경색이 의심됐고, 담당 의료진은 곧바로 심뇌혈관질환 인적네트워크 단체방을 통해 온병원으로 전원을 의뢰했다. B씨는 보호자 차량으로 직접 병원을 찾아왔고, 도착 즉시 온병원 이현국 심혈관센터장이 응급 관상동맥 조영술 및 중재술을 시행했다.

검사 결과 우관상동맥 완전 폐색이 확인돼 즉시 혈류를 재개통했고, B씨는 입원 6일 만에 퇴원했다. 환자 이송과 시술 결정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덕분에 골든타임을 지킬 수 있었다.

부산 온병원 김동헌 병원장(전 부산대병원 병원장)은 “골든타임을 다투는 심뇌혈관질환을 진료하는 의사가 줄어든 상황에서 환자를 살릴 방법은 병원 간 인력을 공유하는 것”이라며 “병원끼리 서로의 전문의를 빌려 쓰는 구조가 아니면 지역병원은 심뇌혈관 응급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지역의 필수의료 인력난을 털어놨다. 실제로 복지부의 심뇌혈관질환 인적 네트워크 참여하는 온병원을 비롯한 부산대병원, 부산백병원 등은 ‘부산 서구권역’ 권역망 안에서 환자 정보를 주고받고, 가장 빠른 응급대응이 가능한 의료진이 바로 시술을 맡도록 하고 있다.

최근 2024년 시범 시행한 복지부의 심뇌혈관질환 인적네트워크 실적은 나름 괜찮았다는 평가다. 평가 결과, 온병원이 포함된 팀에는 약 1,180만 원의 사후지원금이 참여한 각 의료기관 소속 의사들에게 책정됐다. 응급 시술과 대기, 야간 근무 부담을 고려하면 결코 큰 금액은 아니지만, 의료진들은 “평소 심뇌혈관 질환 관련 전문의들은 SNS상 단체 공유방을 개설해 골든타임 환자들을 대처해왔는데, 의정갈등 당시 보건당국에서 이런 시범사업의 도입을 통해 보상지원이 이뤄짐으로써 누적된 진료에 지친 참여 의료진에게 격려가 됐을 것”이라고 자평했다.

대한종합병원협회는 “심뇌혈관 인적네트워크를 ‘한국형 필수의료 모델 실험실’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기존의 병원별 경쟁 구조를 넘어, 권역 단위 협력과 팀 단위 성과 보상을 도입했다는 점에서다.
하지만 대한종합병원협회는 “예산 규모가 작고 시범사업으로서 사업 지속 여부가 불확실해, 의료진들이 안정적으로 참여하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대형병원 중심의 환자 집중을 완화할 제도적 장치 역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lich0929@fnnews.com 변옥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