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 북한이 지뢰 제거 임무 등을 위해 러시아에 파병된 공병부대의 귀환 환영 행사를 대대적으로 개최했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행사를 직접 챙기며 전사자를 두고 "국가에 목숨을 바치는 건 희생이 아니라 영광"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현재 북한이 희생된 군인들을 국가 선전사업의 도구로 보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라는 비판이 14일 제기된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등은 인민군 제528공병연대의 귀국 환영식이 지난 12일 평양 4·25문화회관 광장에서 열렸다고 13일 보도했다. 신문은 이들이 지난 5월 27일 조직돼 8월 초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으로 출병했으며, 공병전투 임무 수행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치켜세웠다.
특히 조선중앙TV는 이날 환영식을 약 40분 분량의 영상으로 대대적으로 방영했다.
이후 당 중앙위원회와 국방성 간부들, 인민군 지휘관들이 광장에 들어섰고 가장 마지막으로 검은색 가죽코트를 입은 김정은 당 총비서가 등장하며 큰 환호를 받았다.
김 총비서는 비장한 표정으로 연단 위에 올라섰다. 그는 연설을 통해 귀국한 병사들을 환영하고 파병부대의 치적을 부각했다.
또한 김 총비서는 이번 임무 과정에서 9명의 군인이 사망한 사실도 처음 공개했다. 이들은 지뢰 제거 작업 과정에서 폭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지난달 14일(현지시각) 러시아 국방부 기관지와 현지 일간지 등은 북한 공병들이 러시아 공병들과 함께 쿠르스크 최전선에서 지뢰 제거를 위해 합동 작전을 진행하는 현장 영상을 공개한 바 있다.
김 총비서는 "사소한 실수나 해이도 허용되지 않는 전장터에서 전우를 먼저 생각하며 한 몸으로 파편을 막아 나서고, 치명상을 입은 최후의 순간에도 임무를 끝까지 수행한 희생성은 누구나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전사한 이들이 '영웅적' 모습을 보였다고 치하했다. 그러면서 이를 '대중적 영웅주의'라고 규정했다.
연설을 마친 김 총비서는 연단 밑으로 내려가 전투원들과 한명씩 악수하고, 특히 휠체어에 앉아있는 군인에게는 직접 허리를 굽혀 포옹했다. 이후 그는 전투병 전원과 단체사진을 촬영했는데, 김 총비서 옆에 선 장병들은 전사자 9명의 영정을 나눠들고 있었다.
중앙TV는 김 총비서가 4·25문화회관 중앙홀에 위치한 '추모의 벽'을 찾아 벽에 걸린 전사자의 초상에 훈장을 달아주고 무릎을 꿇고 헌화한 뒤 묵념하는 모습도 조명했다. 조선중앙TV에 따르면 이번에 희생된 9명의 전투원들에게는 공화국 영웅 칭호와 국기훈장 제1급, 전사의 영예훈장 제1급이 수여된다.
전사자의 유가족은 추모의 벽 앞에서 흐느끼며 사망한 가족의 사진을 어루만지기도 했다. 그러나 잠시 후 군인들의 헌화 순서가 되자 군인들이 유가족을 억지로 끌고 나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김 총비서가 유가족을 위로하는 순서가 되자 유가족들은 슬픔 속에서도 일렬로 도열해야 했다. 김 총비서는 유가족의 손을 일일이 잡으며 한 명씩 위로했는데, 이 중 소년단원 소속으로 추정되는 한 학생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김 총비서를 향해 허리를 바짝 세우고 경례를 해 눈길을 끌었다.
또 김 총비서 앞에서 오열하다 주저앉은 이가 김 총비서를 수행하던 현송월 당 부부장이 다가가 일으켜 세우며 귓속말을 하자 이내 자세를 바로잡는 모습도 확인됐다. 한 탈북자는 현 부부장의 귓속말 내용이 '최고지도자 앞에서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주문이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국가에 의해 강제로 파병되고 전사한 이들의 유가족도 고압적 통제를 피할 수 없었던 셈이다.
이들 유가족들은 김 총비서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장병들의 귀환 축하공연에도 '초청'됐다. 무대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전사한 이들이 나올 때 유가족들은 다시 오열했고, 이 모습이 TV를 통해 그대로 공개됐다. 북한이 파병군과 전사자들을 국가의 결속과 체제 우월성을 위해 필요 이상으로 선전도구로 삼는 모습이 재차 확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가정보원은 작년 10월부터 북한군 전투병력 약 1만 5000명이 러시아에 파병됐고, 이 가운데 200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북한이 아직 파병 전투부대의 전원 귀국 소식을 알리지 않은 만큼 전사자는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올해 수시로 파병군 및 전사자를 '국가적 영웅'이라고 부각해 인민들의 애국심과 충성심을 끌어올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북한은 내년 초 9차 노동당 대회를 앞두고 정치적 효과 견인을 위해 이같은 선전선동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북한이 파병군 관련 행사를 대대적으로 치르고, 이를 국가의 정체성과 연결하는 것은 김 총비서가 러시아를 향해 '더 큰 보상'을 요구하기 위한 포석을 두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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