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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 은행 기업대출 담보로 긴급자금 빌릴 수 있게 한다

뉴스1

입력 2025.12.14 12:01

수정 2025.12.14 12:01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은행 2017.12.13/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은행 2017.12.13/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서울=뉴스1) 이강 기자 = 시중은행이 기업에 빌려준 대출을 담보로 한국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릴 수 있게 된다.

스마트폰 뱅킹과 SNS 확산으로 예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갈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해, 은행들이 위기 때 사용할 수 있는 '비상 자금 창구'를 하나 더 마련한 것이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이 같은 내용의 '금융기관 대출채권을 담보로 하는 긴급여신 지원체계 구축 방안'을 의결했다고 14일 밝혔다.

긴급여신은 금융기관이 자금조달·운용 불균형이나 전산장애 등으로 일시적인 지급자금 부족에 직면할 경우 중앙은행이 담보를 받아 유동성을 공급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기존 유동성 공급 수단이 시장성증권을 담보로 한 상시대출제도(자금조정대출) 중심이었다면, 이번 조치는 금융기관이 보유한 대출채권을 담보로 활용하는 긴급여신 체계를 새로 도입한 것이 특징이다.



한은은 디지털 환경에서 유동성 위기가 과거보다 빠르게 확산할 수 있다는 점을 제도 도입 배경으로 제시했다.

실제로 2023년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경우 SNS 등을 통한 불안 심리 확산으로 이틀 만에 예금의 85%가 인출됐고, 영국법인에서도 하루 만에 예금의 30%가 이탈한 사례가 있었다.

이번 제도에서는 필요시 신속한 담보 활용을 위해 금융기관이 제공한 대출채권 정보를 사전에 수취해 적격성 심사와 담보인정가액 산정 등을 미리 진행한다.

김범서 한은 여신기획팀장 "대출채권은 시장성증권과 달리 담보 활용 절차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프리포지셔닝(사전수취) 방식으로 사전 절차를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긴급여신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대상기관, 대출한도, 금리, 기간 등은 금융통화위원회 의결로 결정된다.

우선 법인기업의 부동산담보대출(주택담보대출 제외)과 신용대출 가운데 차주의 신용등급이 BBB- 이상이거나 예상부도확률이 1.0% 이내인 대출채권으로 담보 범위를 한정하고, 향후 점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봉관수 한은 신용정책부장은 "한국은행은 은행의 은행인 만큼 금융기관에 대출을 할 수 있지만, 중앙은행은 손실을 봐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있어 반드시 양질의 담보를 수취해야 한다"며 "은행 자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출채권 가운데 양질의 대출채권을 담보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이번 제도 도입으로 높였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한은은 대출채권 담보 긴급여신이 금융기관의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성증권 담보 대출과 달리 대출채권 담보 대출은 유동성비율을 높이는 효과가 있어, 유사시 금융기관이 시장성증권을 투매하지 않고도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한은은 내년 1월 2일이 '즉시 긴급여신을 발동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봉 부장은 "1월 2일부터는 금융기관으로부터 담보 관련 정보를 수취해 예비 담보가액을 산정하고, 유사시 어느 정도까지 지원이 가능한지 세팅해 나가는 과정이 시작되는 것"이라며 "실제 긴급여신은 한은법 65조 요건에 해당하는 상황에서 금통위가 의결할 때 발동된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 제도를 '발권력 지원'으로 볼 수 있냐는 질문에 봉 부장은 "추가 유동성을 무제한으로 공급하는 개념이 아니라, 유동성이 일시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최종대부자로서 대응하는 차원"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긴급여신은 금통위 의결로 조건이 정해지고, 자금조정대출처럼 기준금리보다 높은 페널티 금리 등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한 장치들이 부여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