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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실적 쌓으려고… 이슈 올라타기·쪼개기·베끼기 '졸속 입법'

이해람 기자,

김형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14 18:18

수정 2025.12.14 20:42

22대 국회 발의만 1만3000건
법제실 1인당 年 251.8건 생산
발의 수로 의정 활동 평가 부작용
상대 비방 정쟁용 법안도 쏟아져
[단독] 실적 쌓으려고… 이슈 올라타기·쪼개기·베끼기 '졸속 입법'

22대 국회가 입법 전쟁에 휘말렸다. 개원 1년 6개월여 만에 2만 건을 상회하는 법안 의뢰가 접수됐고, 같은 기간 1만3000여 건의 법안이 발의됐다.

민생 법안들도 제출되고 있지만 여야 극한 대립으로 인한 정쟁 법안·숙의 없는 '이슈 렉카', 베껴 쓰기 법안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반대로 계엄과 탄핵, 대선 등 여야의 강대강 대치 정국이 이어지면서 실제로 법안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은 사례는 매우 적다는 점에서 '민생을 볼모로 삼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年평균 251.8개 법 만드는 법제인력14일 파이낸셜뉴스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국회사무처 법제실 직원 1인당 연간 251.8건의 법안을 만들어 내고 있다.

22대 국회가 개원한 지난해 5월 30일부터 올해 11월 19일까지 법제실에 2만931건의 법안 의뢰가 접수됐는데 법제실에서 입안을 담당하는 근무자는 57명에 불과하다. 국회의원들이 쏟아내는 정책 아이디어를 뒷받침해 줄 인력이 부족해 업무가 과중되고 그 결과 완성도가 높은 법안이 나오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는 법제실 직원 1인당 연평균 입안 처리 건수는 매 국회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20대 국회에서는 법제인력 57명이 4만3135건(1인당 연평균 189.2건)의 입안을 담당했고, 21대 국회에서는 법제인력 50명이 4만4122건(1인당 연평균 220.6건)의 입안을 처리했다. 법제실에서도 해를 거듭할수록 과중되는 업무량으로 고된 작업을 거듭하고 있다는 볼멘 소리가 나오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쟁용·'렉카 입법' 늘어나

'입법 남발' 국회로 전락한 배경에는 정치 양극화와 법안 발의 수를 기준으로 하는 의정 활동 평가가 지목된다. 특히 여야는 이른바 '추나(추미애·나경원)대전' 당시 각각 '추미애 방지법'과 '나경원 방지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지난 계엄·탄핵 정국에서 민주당은 내란 책임이 있는 정당은 해산토록 하는 정당법 개정안, 국회의원을 폭행하면 가중처벌하는 국회법 개정안 등을 발의했고, 국민의힘은 부정선거 이슈를 띄우기 위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법 개정안과 공직선거법 개정안 등을 제출한 바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본질에 대한 고민 없이 서로를 비방하는 '꼬투리 입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슈에 올라타기 위한 '렉카 입법'도 잇따른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계엄 이후 60여 건이 넘는 계엄법 개정안이 쏟아졌다. 형법·형사소송법·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이 22대 국회에서만 325건 제출된 것도 '정치의 사법화'와 무관하지 않다. 올초 가상자산이 범죄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국회는 여야 가리지 않고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개정안'을 14건 내놨는데, 개별 의원들의 산발적·속도지향적 법안 발의로 통합된 안이 마련되지 않아 정작 한 건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법안 목적인 이용자 보호 보다 이슈 선점과 대외적 홍보 등이 중요하다는 여야의 인식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국회의원 의정 평가 기준에 '법안 발의 수'도 포함되는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하나의 법안으로 제작해도 되는 것을 여러 법안으로 나누는 '쪼개기 입법' 등을 통해 발의 수를 늘리는 방식도 사용된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는 "입법이 성과 위주로 변질돼 자신의 치적 홍보물에 담기 위한 것이 돼 질적 향상보다 양적 팽창만 가져왔다"고 꼬집었다.

■강대강 대치 속 경제법안 378개 처리

그러나 실제 본회의에서 가결돼 정책으로 실현되는 법안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번 22대 국회에서 현재까지 가결된 법률안은 지난 12일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끝에 통과된 은행 개정안을 포함해 901개(대안반영폐기 2196개)다. 21대 국회에서 같은 기간 1550개의 법안이 가결됐다는 점과 비교하면 58%에 불과한 셈이다.

경제법안들도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22대 국회에서 가결된 정무위원회(금융)·기획재정위·법제사법위(상법)·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국토교통위 법안은 378건이다. 21대 국회에선 같은 기간 해당 상임위 법안이 596건 가결된 대비 63.4%로 감소한 수치다.

실제로 민주당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했지만 야당이 합의하면서 본회의에 상정된 가맹사업법 개정안 처리가 한 차례 지연되기도 했다. 국민의힘이 민주당의 사법개혁안 등에 반발해 비쟁점법안을 포함한 모든 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신청했기 때문이다. 지난 11월에는 항공기 보안점검 의무 위반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항공보안법 개정안이 국민의힘 의원들의 본회의 퇴장과 민주당 의원들의 항의성 반대로 부결된 바 있기도 하다. 박성태 정치평론가는 "서로 이견이 없는데도 법안이 진영싸움의 볼모가 돼 있다"고 꼬집었다.

■"법제 인력 충원, 정성평가 해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총체적인 해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과잉 입법'은 의정 활동의 하나로 인정받아야 하는 만큼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법제실 인력을 충원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법제실 정원은 93명이지만 현원은 83명으로 이중 57명이 입안을 지원하며 26명은 행정 및 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하상응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전문성을 늘리기 위해서는 국회 운영 예산을 늘리고 법제실 직원도 늘려야 한다"고 했다.


의원들에 대한 평가 시스템도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법안 발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숙의를 거쳐 법안 처리 및 후속 조치까지 이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상일 정치평론가는 "미국의 사례를 보면 유권자들의 민원과 의견을 얼마나 잘 청취하고 응답했느냐를 중요하게 본다"며 "국민들과의 소통과 그 결과물을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haeram@fnnews.com 이해람 김형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