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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불참러' 트럼프… 다자외교 무대에 미국은 없다 [글로벌 리포트]

홍채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14 18:53

수정 2025.12.14 18:52

美 빈자리, 필승전략인가 자충수인가
10월 경주 왔지만 APEC 본회의 불참
기후회의·G20 정상회의 연이어 보이콧
'세계의 경찰' 한발 물러나 지지층 결속
자국 석유·가스산업 이익 최우선 메시지
외교가, 당장에 원하는 결과는 얻었지만
"美 평판 훼손… 中으로 시선" 실책 평가
주요 20개국(G20) 정상 및 국제기구 관계자들이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나스렉 엑스포센터에서 열린 정상회의에 참석해 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G20에 미국 대통령이 불참하기는 이번이 창설 이래 처음이다. 연합뉴스
주요 20개국(G20) 정상 및 국제기구 관계자들이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나스렉 엑스포센터에서 열린 정상회의에 참석해 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G20에 미국 대통령이 불참하기는 이번이 창설 이래 처음이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월 31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본회의에 이어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도 연이어 보이콧하면서 미국의 '자리 비움'이 국제 정치의 '변수'를 넘어 '상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위기 논의를 '사기'라고 규정하며 지난달 10일(현지시간)부터 시작된 COP30에 고위급 대표단을 보내지 않았다. 이후 그는 지난달 22일 개최된 G20 정상회의에도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정부가 백인에 대한 '학살'을 방조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며 불참했다.

■"욕 먹느니 안간다" 비용·효용 계산이 먼저

미국의 불참은 '비용 대비 효용 계산'의 산물로 풀이된다. 기후·환경 의제 등이 집중되는 국제무대에 참석할 경우, 감축 책임·탄소세 등 문제에서 거센 비판의 한가운데 서게 되는 반면, 얻을 수 있는 실질적 외교 성과는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산은 미국 내 여론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지지층을 비롯한 보수 유권자들은 '왜 미국이 세계 경찰을 해야 하느냐', '왜 남의 나라 지키려고 미국 젊은이가 피를 흘려야 하느냐' 등의 정서를 내놓고 있다. 기후·탄소감축 논의 역시 석유·가스 산업과 밀접한 지역에서는 미국 산업을 옥죄는 '족쇄'로 인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국내 피로감과 반개입주의 정서를 정치적으로 대변해온 인물이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문제에서도 "동맹국들이 방위비를 제대로 내지 않으면 미국은 방어하지 않겠다"며 동맹을 '회비 클럽' 취급해왔다. 결국 실리적 관점에서 트럼프 정부의 선택은 명확했다.

COP30 불참 당시, 영국 언론은 "미국 최고위 관료들이 그리스에서 미국 대형 정유 업체 '엑슨모빌'과 신규 계약을 체결하는 자리에 참석해 있었다"고 전했다. 국제 무대에 공개적으로 불참함으로써 세계 경찰의 자리에서 한발 물러나고, 동시에 자국 산업과의 결속·경제적 이익 확보를 우선시한 결정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美 없는 다자외교…드러난 가능성과 한계

미국이 보이콧한 가운데 열린 G20 정상회의는 다자주의가 미국 부재 속에서도 일정 부분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실제로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대부분 정상들의 지지를 확보했다. 채택된 공동선언문은 △기후변화의 심각성 △관련 조치의 필요성 △재생에너지 확대 △빈곤국 부채 부담 완화 등 미국 정부가 오랫동안 꺼려온 내용들을 포괄했다. 아르헨티나만 선언문 채택 과정에 공식 참여하지 않았지만, 선언문 채택 자체를 막지는 않았다.

이에 지난달 23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COP30, G20 모두 다자주의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같은 날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역시 "이번 G20에서 미국이 거의 언급되지 않았고 영향력도 미미했다"며 "세계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있다"고 거들었다. 그는 "미국 정부가 불참을 선택한 건 좋은 결정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 같은 성과가 다소 제한적인 수준에 그쳤다고도 평가했다.

지난달 24일 유럽 개발·부채 네트워크(Eurodad) 등 국제단체들은 공동 서한에서, 부채 구조조정 등 핵심 의제에서 실질적 진전이 없었다고 이쉬움을 표했다. 이들은 "구조조정은 지나치게 느리고 감축 폭은 얕으며, 채권자 간 부담 분담도 여전히 불평등하다"며 눈에 띄는 성과가 부재했다고 짚었다.

이 같은 구조적 한계는 사실 그보다 앞서 있었던 COP30에서도 보여진 바 있다. 유럽연합(EU)과 개발도상국 등 약 80개국은 '화석연료 퇴출 로드맵'을 최종 합의문에 포함할 것을 촉구했으나 산유국들의 반대를 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세계자원연구소(WRI)의 아니 다스굽타 소장은 "COP30은 어려운 지정학적 배경 속에서도 국제 기후협력이 여전히 성과를 낼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평가한 반면, 영국 BBC는 "지구온난화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합의가 점점 약화하고 있는 현실이 드러났다"고 아쉬움을 드러냈었다.

■美가 거둔 성과와 감수해야 할 대가는?

트럼프식 '프로 불참러 외교'는 단기적으론 자국이 원하는 방향의 결과를 일정 부분 이끌어낸 전략이었다.

기후 분야에서는 화석연료 단계적 폐지 문구가 최종 문서에서 빠지면서 미국 보수층과 화석연료 산업 입장에선 가장 부담스러운 국제 의무를 피해간 셈이 됐다. G20에선 보이콧을 통해 남아공과의 갈등을 부각시키고, 백인 소수자 학살 프레임을 국내 정치용 이슈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비용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APEC 본회의에 불참했을 때부터 이미 미국 AP통신은 "그의 이번 행보가 미국의 평판을 훼손했으며, 이는 APEC 본회의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대비되면서 중국이 영향력을 확대할 기회를 열어줬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AP는 "트럼프 대통령의 부재가 미국의 '일방주의'를 비판해 온 시 주석에게 관심을 집중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평가했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G20 불참 당시 지춘주 버크넬대학교 정치외교학 교수 또한 "미국은 중국이 글로벌 영향력을 확장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미국이 부재한 가운데 중국과 EU 국가들이 정상회의의 중심이 될 것이며, 다른 국가들은 이들로부터 리더십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영국 개발연구소의 정치경제학자 징구 역시 "미국이 불참한다고 해서 중국이 자동으로 새로운 지도자가 되는 건 아니지만, 중국이 더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통치 파트너로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가시적 공간을 만든다"고 거들었다.
그러면서 "이는 미국이 다자주의와 글로벌 문제 공동 관리에서 물러나고 있다는 인식을 강화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뮌헨안보회의(MSC)가 최근 유럽과 글로벌 사우스의 G20 9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이 같은 인식이 보여지고 있다.
응답자 상당수는 '미국이 여러 정책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 역할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고 평가했으며, 그 비율은 국가별로 터키 47%에서 인도 78%까지로 나타났다.

홍채완 국제부
홍채완 국제부


whywani@fnnews.com 홍채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