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제국이던 中, 자국부강만 원해
주변국 커지면 안보 위협으로 여겨
교역국가이던 美, 시장 중시했지만
中 영향력 확장에 연성냉전 돌입
냉전과 달리 시장 안에서 패권경쟁
우린 中편입 막고 첨단산업국 돼야
주변국 커지면 안보 위협으로 여겨
교역국가이던 美, 시장 중시했지만
中 영향력 확장에 연성냉전 돌입
냉전과 달리 시장 안에서 패권경쟁
우린 中편입 막고 첨단산업국 돼야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있는 우리에게 있어서 지금의 미중 관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국가의 미래가 걸린 중차대한 과제이다. 기존의 논의는 그 관계를 패권경쟁 혹은 충돌, 기술패권 경쟁, 신냉전 등으로 규정해 왔지만 이러한 규정이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답답한 지점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핵을 가진 미국과 중국이 패권전쟁을 할 가능성은 매우 낮을 터이고, 양국 간 첨단 기술분야 경쟁을 왜 단순히 기술 및 산업 경쟁이 아닌 패권경쟁으로 표현해야 하는지도 충분한 설명이 없다. 또한 신냉전에 돌입한 국가들이 일상적인 무역을 하다가, 어떤 때는 관세와 경제제재를 동원하여 타격을 주고, 또 갑자기 협상을 통하여 정상화의 길로 돌아오는 갈지자 행보를 보인다. 이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 특성으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미중 관계는 서로 시장으로 연결된 상태에서 충돌하고 부분적 디커플링도 하는 유사한 패턴을 보였다.
전근대 농경시대의 대륙에서 거대 제국을 건설했던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국가는 제국의 영토적 확장이나 영토보전이 매우 중요한 국가적 과제였다. 제국의 영토를 노리는 주변 세력을 제압하기 위하여 대륙 제국은 중앙집권화된 정부와 강력한 군사력이 필요했고, 제국 주변을 군사적 완충지대인 영향권(sphere of influence)으로 만들어야 했다. 전근대 시기에는 충성을 맹세한 조공국가가 영향권을 형성했다면, 20세기 냉전기에는 대륙의 사회주의 위성국가가 영향권을 구성했고, 국제 시장질서인 지금은 접경국가들의 정치와 경제를 자국에 의존적으로 만들어 영향권을 구축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중국과 러시아의 접경국가는 공히 14개국이다. 그중 언제 어느 국가가 위협이 될지 알 수 없다. 따라서 대륙 제국의 유전자를 가진 중국과 러시아는 아무리 국제 시장질서 안으로 진입했다 해도 영향권을 구축하려는 관성을 갖게 된다.
이에 반해 미국은 전근대 대륙 제국의 역사가 없는 교역국가이다. 접경국가도 둘뿐이고, 대양에 둘러싸여 있어 지정학적 조건도 월등히 좋다. 위성국가를 만드는 것보다 자국 경제와 보완관계를 가진 자유롭고 열린 시장 국가가 많은 것이 더 좋다. 시장이 넓어진다는 이유로 중국의 개혁·개방도 지원해 왔다.
즉 미국은 다른 국가가 기존 시장질서 안에서 번영하는 것을 환영하지만, 대륙 제국이었던 중국과 러시아는 시장질서에서 자신들만 부강해지는 것을 원한다. 왜냐하면 주변 국가가 부강해지면 안보 위협이 된다는 역사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국제 시장질서인 자유주의 국제질서에서 패권국이 되는 방법은 과거 영국과 미국이 그랬듯이 당대 선도산업과 첨단기술에서 세계시장을 제패하는 것이다. 중국은 지난 약 30년간 이 길을 따라와서 미국의 국력을 넘어설지도 모르는 수준에 와 있다. 만약 미래 산업 경쟁력의 핵심인 인공지능 기술에서 미국을 능가하면 국력이 미국을 추월할 수도 있다. 30년 전에 비해 막강한 국력을 갖게 된 중국은 당연히 그 국력을 사용하여 영향권을 확장하려 할 것이고, 더 많은 주변의 국가를 정치 및 경제적으로 중국에 의존적인 국가로 만들고자 할 것이다.
시장 안에서 영향권을 구축해야 하니 이들 국가에 대해 공급망을 무기화하고, 의존적 통상구조를 만들고, 주종의 외교관계를 구축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구상은 당연히 미국의 우방과 주요 시장을 건드리게 된다. 중국 경제와 시장이 커지는 것을 반기던 미국이 이제는 중국을 견제하지 않을 수 없다. 미래 기술을 통제하고, 중국의 현상변경을 억지해야 한다. 중국의 영향권 확장은 미국에는 시장을 잃는 것이고, 중국은 안보와 영향력을 확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양국 모두 국력유지와 경제에 필수적인 시장경제는 끊어버리지 못하고, 그 안에서 서로 확장과 억지, 제재와 정상화를 반복하면서 미래 기술 패권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연성 냉전이다. 패권경쟁이지만 서로를 질식시키는 냉전형 경쟁이 아니라 연결된 시장 안에서 첨단기술과 영향권 경쟁을 하는 경쟁이기에 신냉전보다는 연성 냉전이라는 이름이 걸맞는다. 이 연성냉전에서 한국의 길은 중국 영향권으로의 편입을 막고 첨단 산업국가가 되는 길이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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