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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AI법 세계 첫 시행, 산업 위축없게 규제는 신중히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14 19:01

수정 2025.12.14 19:01

EU, 美에 뒤처지지 않게 규제 유예
준비 어려운 중소업체 호소 감안을
AI 기본법 인지도 및 준비현황./사진=스타트업얼라이언스 제공
AI 기본법 인지도 및 준비현황./사진=스타트업얼라이언스 제공

인공지능(AI) 기본법을 제정한 것은 우리나라가 세계 두번째이지만 시행은 세계 첫번째 국가가 될 전망이다. 우리 국회가 지난해 말 통과시킨 이 법의 시행일은 내년 1월 22일이다. 앞서 법을 제정한 곳은 유럽연합(EU)이 유일했다. 하지만 EU는 지난달 AI 규제 완화안을 담은 디지털 간소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규제 전면 적용 시기를 16개월 후로 늦췄다.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가 AI법 시행 첫번째 국가로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다.

법의 취지는 살리되 현장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반영해 산업이 위축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다.

국내 AI 기본법은 AI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정부의 총괄적인 법적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빗발치면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법 제정 당시부터 산업 진흥보다 규제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지난달 중순에야 시작된 시행령 입법예고는 이달 22일까지다. 법제처, 규제개혁위 심사도 남았는데 결국 시행령은 시행 직전에야 확정되는 것이다. 업계가 규제에 대응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

업계 설문조사에 따르면 AI 기본법 시행에 따른 실질적 대응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밝힌 스타트업이 전체의 98%에 이른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준비를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중 "내용조차 잘 모른다"고 답한 업체가 절반이었고, 나머지가 "법령은 인지하지만 대응이 미흡하다"는 입장이었다. 법 전면 시행 후 현장이 큰 혼란을 겪을 수도 있다.

AI에 의한 생성물임을 표시하는 워터마크 의무화가 과잉규제가 되지 않도록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 정부는 AI 투명성 확보를 위해 사업자가 고영향 AI나 생성형 AI를 이용한 제품·서비스를 제공할 때 AI에 기반해 운용된다는 사실을 사전에 이용자에게 고지하도록 의무화했다. AI가 딥페이크물 범죄나 무분별한 의료광고 등에 악용되지 않기 위해선 이를 막을 규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콘텐츠업체 등 업계 전반에 획일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선 생각해볼 문제다. 당장 AI를 활용했다는 이유로 밤새워 일한 수많은 창작자들의 작품에 'AI 생성물' 딱지가 여기저기 붙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콘텐츠업계는 급속히 위축될 수 있다. 업계는 고영향 AI의 정의에 대해서도 정리된 의견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법은 '개인의 생명, 신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AI'로 규정하지만 해석하기 나름이다. 두루두루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EU가 먼저 법을 만들고도 전면 시행을 늦춘 이유를 감안해야 할 것이다. 미국 빅테크 업체의 끈질긴 요구를 받아들인 측면도 있지만 속사정은 따로 있다. 무엇보다 AI 경쟁에 뒤처지고 있는 회원국들의 사정을 감안한 탓이 크다. 유럽 국가들의 AI 경쟁력은 지금도 미국, 중국에 밀리는데 과도한 규제까지 보태면 기술추격은 더 늦어진다. AI 규제 선봉에서 발을 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일본도 비슷한 기류다. 일본은 지난 9월 'AI 적정성 확보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자율규제를 분명히 했다. 과태료 부과, 정부의 사실 조사권 등을 강제한 우리와 차이가 있는 것이다.
국내 AI 스타트업이 일본 사업을 확대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시각이 많다.

진화하는 기술에 걸맞은 적절한 규제는 필요하지만 산업의 발목을 잡는 수준이 돼선 곤란하다.
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기술진흥과 규제 사이 균형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