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항상 베풀며 살아라"…영철 아저씨가 남긴 '나눔의 미학'

뉴스1

입력 2025.12.15 15:14

수정 2025.12.15 15:14

15일 서울 성북구 소재 '영철버거' 앞에서 한 고려대학교 대학원생이 헌화하고 있다. 2025.12.15/ⓒ 뉴스1 권진영 기자
15일 서울 성북구 소재 '영철버거' 앞에서 한 고려대학교 대학원생이 헌화하고 있다. 2025.12.15/ⓒ 뉴스1 권진영 기자


(서울=뉴스1) 권진영 기자
"항상 베풀며 살아라"하셨던 게 기억에 남아요.

이제 안 아프셨으면 좋겠습니다.

고려대학교 새내기 시절부터 '영철버거' 10년차 단골인 정대영 씨(28)는 문이 닫힌 가게 앞에 국화 꽃을 바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 13일 작고한 고(故) 이영철 씨를 떠올리며 "안 아프셨으면 좋겠다. 올해는 제가 바빠서 못 오고 지난해는 자주 뵀는데 항상 아프셨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영철버거 대표 고 이영철 씨는 고대 학생들에게 '아저씨', '삼촌' 등 애칭으로 불린다.

쉰 여덟. 아직 한창일 나이에 눈을 감은 그는 암 투병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00년 리어카 노점으로 장사를 시작한 이 씨는 호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값싼 한 끼를 만들어 왔다. 개점 당시 햄버거 가격은 단돈 1000원. 마진은커녕 적자가 날 때에도 저가 정책을 고수했고 수익이 나면 매년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그는 2005년쯤에는 가맹점 수를 40개까지 늘리며 사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뒀지만 2015년쯤 경영난으로 장사를 접게 됐다. 하지만 이 소식을 들은 고려대 학생들이 모금에 나서며 재기할 수 있었다. 이씨와 고대의 인연은 나눔의 선순환이었던 셈이다.

이 씨의 발인식이 엄수된 15일 뉴스1 취재진이 방문한 서울 성북구 영철버거 매장 앞에는 고인을 추모하는 꽃다발 스무개와 초록색 소주병 하나가 놓여 있었다.

꽃다발 속 편지지에는 이 씨가 생전 실천한 '나눔의 정신'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재학생·졸업생 등은 "배고픈 학생들 곁을 지켜주셔서 고맙습니다. 남겨주신 은혜 저희도 잊지 않겠습니다. -우리도 영철버거처럼", "입학때부터 졸업 때까지 덕분에 많이 도움 받고 행복했습니다. 말씀대로 베풀며 살겠습니다" 등의 메시지를 남겼다.

행인들은 물끄러미 간판을 바라보거나 편지지를 찬찬히 읽으며 조용한 추모를 이어갔다. 시간을 쪼개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이들도 있었다.

평소 자주 가게에 들렀다는 고대 대학원생 신 모 씨(26)는 "평소 안심 치즈 메뉴를 먹곤 했다"며 "많이 오랫동안 감사했던 분이라 제가 본받아야겠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01학번 졸업생인 강주희 씨(40대)는 "리어카 장사 시절부터 다녔다"며 눈물을 보였다.

강 씨는 "(사장님은) 늘 인자한 표정으로 많이 먹으라고 하셨다. 학생들을 진심으로 생각해 주신 분이었다. 없어도 기부하고…이렇게 좋은 분이 없다"며 "좋은 곳에서 평안하시길 바란다"고 했다.

영철 아저씨는 떠났지만 나눔의 정신은 이어진다.
김동원 고려대 총장은 지난 14일 오후 이 씨의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기자들과 만나 "수십 년간 매우 깊은 관계를 맺어온 분"이라며 "고인은 떠났지만, 고려대 공동체 안에는 오래도록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씨의 이름을 딴 장학금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김 총장은 "입학식이나 졸업식 때 개인의 성공보다 타인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삶의 가치를 강조해 왔다"면서 "이영철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귀감이 돼, 사회를 위해 힘쓰는 인재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