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경제

AI 실적 줄며 주가 폭락하는데… 기업들 투자금 더 늘린다

박종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15 18:17

수정 2025.12.15 18:16

다시 고개드는 ‘AI 거품론’
오라클·코어위브 CDS 거래 급증
9~11월 매출 줄자 회사채 매도↑
설비 투자금에 비해 매출 적은 탓
업계 "수요 탄탄해 닷컴과는 달라"
CEO 68% "내년 AI 투자 확대"
지난 10월 31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촬영된 휴대폰 화면에 미국 오픈AI의 인공지능(AI) 서비스인 '챗GPT'의 어플리케이션(앱) 아이콘(왼쪽 상단)이 구글 '제미나이' 등 다른 경쟁사들의 AI 앱 아이콘들과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10월 31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촬영된 휴대폰 화면에 미국 오픈AI의 인공지능(AI) 서비스인 '챗GPT'의 어플리케이션(앱) 아이콘(왼쪽 상단)이 구글 '제미나이' 등 다른 경쟁사들의 AI 앱 아이콘들과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EPA연합뉴스
올 한해 미국 증시를 달구었던 인공지능(AI) 기업들의 주가가 이달 갑작스레 출렁이면서 또 다시 'AI 거품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설문조사 결과 다국적 대기업 경영자들의 절반 이상은 수익이 불안한 상황에서도 AI 투자를 계속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AI 실적 실망" CDS에 투자자 몰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5일(현지시간) 보도에서 미국 중앙예탁청산기관(DTCC) 자료를 인용해 미국 IT 기업과 연계된 신용부도스와프(CDS) 거래량이 지난 9월부터 이달 사이에 90% 증가했다고 전했다. CDS는 대출채권이나 국채, 회사채 등의 부도 가능성이 있는 자산의 지급을 보증하는 파생상품으로 보험과 비슷하다. CDS 구매자가 판매자에게 수수료를 내면, 판매자는 구매자의 채권 등이 지급불능 상태에 빠졌을 때 해당 자산의 액면가를 보전해 준다.

일반적으로 위험한 채권일수록 CDS 수수료가 높다.

기업별로 살펴보면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 오라클과 코어위브의 CDS 거래량이 급증했다. 두 기업 모두 데이터센터를 비롯한 AI 설비 투자를 위해 수십억달러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다. 자체 AI 모델을 운영하고 있는 메타플랫폼도 올해 10월 AI 사업의 자금 조달을 위해 300억달러 규모의 채권을 발행한 뒤 관련 CDS 거래가 대폭 늘었다.

FT는 미국 IT 기업 관련 CDS 거래가 올해 초에 매우 적었지만, IT 기업들이 AI 시설 투자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으면서 함께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FT에 따르면 메타플랫폼과 아마존,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 오라클을 포함한 4개 미국 IT 대기업들이 올해 가을 AI 사업을 위해 융통한 자금은 880억달러(약 129조7000억원)에 달한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은 투자 적격 등급의 기업들이 조달하는 AI 관련 자금이 2030년 무렵에는 1조5000억달러(약 2210조원)에 이른다고 관측했다.

기업들의 막대한 투자를 불안하게 바라보던 투자자들은 최근 3·4분기 실적보고서에 실망해 서둘러 CDS 시장으로 향했다. AI 관련 매출이 투자에 비해 빈약했기 때문이다.

오라클은 지난주 발표한 올해 9∼11월 실적에서 클라우드 기반 시설 매출과 클라우드 판매 매출이 모두 시장 예상치를 밑돌면서 주가가 폭락했다. 회사채 매도량도 급증했다. FT는 오라클의 CDS 수수료가 2009년 이후 최고 수준이라고 전했다.

미국 AI 반도체 업체 브로드컴의 주가 역시 향후 제품 수주 잔고가 실망스럽다는 평가에 지난 11∼12일 하루 사이 약 11.4% 급락했다. 세계 AI 반도체를 선도하는 엔비디아의 주가 또한 AI 거품 논란에 지난 8∼12일 사이 5.7% 빠졌다.

■AI 수요 여전히 건재… 일단 투자

앞서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9일 보도에서 현재 AI 산업과 2000년 인터넷 기업 주도의 '닷컴 버블' 시대를 비교하며 AI 업계가 그러한 거품 수준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매체는 기업의 주가를 순이익으로 나눈 주가수익비율(PER)을 예로 들었다.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 기업들의 지난 10년 동안 PER 값은 평균 22배 수준이지만 올해는 27배 수준으로 닷컴 버블 붕괴 직전인 1999년(29배)와 비슷하다. PER 값이 높다는 것은 해당 기업의 주가가 순이익 대비 고평가되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NYT는 AI 기업들의 PER 값이 점차 내려가는 중이라고 지적했다. 엔비디아의 PER 값은 2023년에 200배에 달했으나 이달 기준 약 45배까지 내려갔다. NYT는 AI 기업들이 과거 인터넷 기업과 달리 실제로 매출을 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AI 업계가 △대기업이 주도하는 투자 △탄탄한 AI 수요 △ 규제 당국의 지원이라는 면에서 닷컴 버블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4일 미국 컨설팅 업체 테네오의 설문조사를 인용해 여전히 수많은 최고경영자(CEO)들이 AI 투자에 적극적이라고 분석했다. 테네오가 최소 350개 다국적 상장 기업 CEO를 상대로 실시한 설문 결과 응답자의 68%는 내년에 AI 투자금을 더 늘리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응답자들은 현재 투자한 AI 사업 가운데 흑자를 내는 사업이 전체 절반에도 못 미친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AI 사업 중 마케팅과 고객 서비스 부문이 가장 성공적이며 증권이나 법률, 인사 부문에서는 AI를 쓰기 어렵다고 답했다.


테네오는 이와 별도로 약 400명의 기관 투자자들에게 향후 6개월 내 AI 투자가 흑자로 돌아설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응답자의 53%는 그렇다고 답했다.
반면 매출액 100억달러 이상 대기업 CEO들의 84%는 AI로 흑자를 보기 위해 앞으로 6개월 넘게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