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테헤란로]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 ‘딜레마’

예병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2.15 18:48

수정 2025.12.15 18:47

예병정 금융부 차장
예병정 금융부 차장
지난 2021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는 한 제안이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 국민연금이 주요 기업에 사외이사를 직접 추천하자는 내용이었다. 라임·옵티머스사태 이후 "감시 기능이 제대로 작동했는가"라는 문제의식이 출발점이었다. 논의는 정책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공적 성격이 강한 기관이 이사회 구성에 영향력을 미치는 구조에 대한 부담이 컸고, 이사회 독립성에 대한 걱정도 나왔다.

결국 반대에 부딪혀 일종의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다만 국민연금이 사외이사 추천이라는 방식으로 경영 참여를 검토한 첫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를 남겼다.

당시 문제를 제기한 인물은 이찬진 변호사로,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민간위원이었다. 4년이 지난 지금 그는 금융감독원장으로서 같은 화두를 다시 꺼냈다. 이 원장은 최근 금융지주 회장단 간담회에서 "사외이사 추천 경로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며 '전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의 주주 추천도 검토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금융권이 이 발언을 예사롭게 넘기지 않는 이유다. 개인의 문제 제기가 아니라 감독당국 수장의 정책 신호로 읽히기 때문이다.

사외이사는 경영을 직접 하지 않지만 회장 선임과 연임, 주요 투자와 전략을 감시·견제하는 핵심 축이다. 따라서 독립성은 지배구조의 출발점으로 여겨진다. 국민연금은 법적으로는 주주이지만 시장에서는 공적 성격이 강한 기관으로 인식된다. 주주 추천 자체는 가능하더라도 특정 공적 주체가 전면에 등장하는 순간, 이사회 판단이 얼마나 독립적으로 보일 수 있느냐는 질문이 뒤따른다. 특정 기관에 대한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 설계와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금융권에서는 해외 투자자의 시선을 우려한다. 외국인 지분 비중이 높은 금융지주에서 지배구조 변화는 곧바로 밸류에이션에 반영된다. 특히 공적 성격이 강한 주주의 역할 강화가 해외 투자자들에게 '관치'로 비칠 경우 지배구조 개선 시도 자체가 오히려 시장의 신뢰 훼손으로 해석될 수 있다.

현실적인 제약도 있다. 금융지주 사외이사는 보수와 겸직 제한에 비해 책임과 평판 리스크가 크고, 안건 부담도 적지 않다.
이런 여건에서 전문성과 독립성을 모두 갖춘 인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금감원은 이달 금융지주들과 지배구조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할 예정이다.
TF가 이사회 독립성과 시장 신뢰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지배구조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현실적 해법을 모색하는 논의의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coddy@fnnews.com